나는 한동안 꽤 많은 책의 왕따(따돌림)에 관한 책을 섭렵했었다. <양파의 왕따일기>, <내겐 드레스 백 벌이 있어>, <왕따가 왕이 된 이야기>, <미운 아기 오리>, <목소리의 형태> 등. 그건 내가 무려 19살 대학 새내기 시절부터 지독한 따돌림을 당해왔기 때문이다. 나는 아무리 일부 악독한 사람들이 헛소문을 퍼뜨리고 따돌리더라도 대다수 사람들이 선하고 이지적이면 언젠가 소문은 불식되고 내 편이 늘어날 줄 알았다. 그리고 가해자는 응당 처벌을 받으리라 믿었다. 그런데 세상은 생각보다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선한 사람들이 많지도 않았다. 청나라 시대에 끌려갔다 돌아온 여자들을 화냥년이라고 욕하듯이 피해자인 나한테 욕지거리를 하고 모욕을 주고 끊임없이 의심하고 조롱하는 지인, 절친, 친척, 가족들이 넘쳐났다. 어느 소설 속 ‘꽃매를 맞다’라는 표현처럼 그들은 ‘내가 이런 이야기를 들었는데 진실이 아닐 테니 내가 증인이 되어 너와 함께 고소해 줄게.’ 이렇게 말하는 게 아니라 투명인간 시키고 무시하고 모욕하고 같이 가해자가 되는 길에 동참했다. 그래서 난 수많은 사람들을 손절했고 지금 내 옆엔 아주 소중한 사람들만 남아있다.
그리고 그런 와중에 생각해 낸 게 소설가가 되고 싶다는 생각이었다. 동화작가의 꿈은, 창작과 예술에 흥미를 느끼고 어린이를 늘 곁에서 가까이하기에, 또한 어린 시절, 문학작품을 좋아했기에 꾸게 되었다면, 소설가는 조지 오웰이 순전한 이기심에 글을 썼다고 말하기도 한 것처럼 나 또한 나만의 이기적인 욕망에 의해 꿈꾸었다. 하지만 점차 그 욕망을 확장하여 어네스트 허밍웨이나 한강 작가 같은 노벨문학상 작가처럼 시대적 슬픔과 아픔을 조명하고 인간 본성을 고찰하고 인생에 대해 논하는 글을 써보고 싶다는 생각에 미치게 됐다. 그리스 신화의 오이디푸스 이야기는 아버지를 죽일 것이라는 신탁을 듣고 버려진 오이디푸스가 결국 예언대로 아버지를 죽이고 어머니와 결혼하는 이야기다. 신화나 영웅에 관한 이야기를 접하다 보면 인간 세상에는 우리가 알지 못하는 우연과 운명이 겹겹이 겹쳐져 있는 것 같다. 인생에 대한 결정론자와 자유의지론 자가 대립하지만, 나는 일련의 시련과 고비를 겪고 결정론으로 더 기울었다.
언젠가 될지는 모르지만, 꾸준히 글을 쓰면서 나의 이기적인 욕망을 충족하고 궁극엔 인류사의 정의를 위한 목표와 합치되는 글을 쓰고 싶다. 사람들에게는 각자에게 주어진 사명이 있는 것 같다. 세상에 던져진 순간, 사명을 깜박 잊고 살아가지만, 내면에서 울리는 벨소리를 기억하며 자신에게 주어진 사명을 완성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