풀꽃 동산에 해바라기 공주가 살고 있었어요. 해바라기 공주는 어쩐 일인지 저만치 떨어져 있는 해바라기 꽃밭에서는 살기가 힘들었어요. 그건 아마도 어린 시절, 해바라기 꽃밭을 가꾸던 아주머니가 바깥 부분에 있는 해바라기 공주에게만 물을 주는 것을 깜박 해서였던 것 같아요. 그렇게 해바라기 공주는 조금 다른 듯 홀로 떨어져 지내다가 아주 풀꽃 동산으로 이사를 와버렸어요. 풀꽃 동산에서 해바라기 공주는 처음으로 따스함과 환대를 느꼈어요.
그런 해바라기 공주에게는 사랑하는 임이 있었어요. 그건 바로 매일 동쪽에서 떠올라 서쪽으로 지는 태양 왕자였어요. 태양 왕자는 다른 모든 해바라기도 좋아했지만, 해바라기 공주는 특히 더 강렬하게 끌렸어요. 그건 태양 왕자가 서쪽으로 진 후에 달밤의 뒤편에서 보여준 쓸쓸함을 눈치챘기 때문이에요. 자기도 꼭 그런 쓸쓸함과 외로움을 겪어봤기에 태양 왕자의 마음을 더 잘 이해할 수 있었어요.
그런 해바라기 공주를 태양 왕자도 많이 사랑했답니다. 하지만 태양 왕자는 해바라기 꽃밭의 또 다른 해바라기 여인도 만나고 있었어요. 태양 왕자는 사랑은 사치라고 생각하면서 시간과 열정을 쏟는 것을 끔찍해했어요. 태양 왕자는 지구가 개기일식에 빠졌을 때 어머니 태양 여신으로부터 사랑을 거절당한 상처와 아픔을 오래도록 간직하고 있었어요. 그리하여 해바라기 공주에게서도 거리를 유지하면서 상처를 주었죠. 왜냐면 어머니에게 버림받았던 것처럼 또다시 버림받을까 봐 두려웠거든요.
하지만 해바라기 공주 또한 꽃밭에서 떠나온 상처로 불안과 슬픔을 간직했어요. 결국 둘은 상처와 오해로 헤어지고 말았어요. 그런데 이 광경을 지켜보던 바람의 신이 둘을 도와주기로 마음먹었어요. 바람의 신은 해바라기 공주가 매일밤 태양 왕자를 그리워하며 기도하는 모습을 지켜봤거든요. 바람의 신이 도와준 덕분에 해바라기 공주는 태양 왕자의 두려움을 이해했고 태양 왕자도 해바라기 공주의 쓸쓸함을 이해했어요. 그건 마치 헤라가 제우스를 이해하는 것과도 같은 기적이었어요.
해바라기 공주는 태양 왕자에게 속삭였어요.
-당신의 빛이 어둠 속에 웅크리던 나를 환하게 밝혀주었어요.
태양 왕자도 해바라기 공주의 꽃잎을 쓰다듬으며 속삭였어요.
-당신도 내 인생에서 유일한 빛이었어.
바람의 신은 두 사람을 부드럽게 쓰다듬으면서 그들 내면의 두려움과 상처를 날려주었어요. 그렇게 기적적으로 마음이 닿은 해바라기 공주와 태양 왕자는 서로의 상처와 아픔을 사랑으로 채워주며 조금씩 극복하였고 해바라기 공주는 평생 태양 왕자를 바라보면서, 태양 왕자는 해바라기 공주에게 온화한 사랑을 내려주면서 행복하게 살았답니다. 풀꽃 동산은 이전보다 더 따스한 사랑과 밝은 빛, 생동감으로 넘쳐났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