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얀 눈이 소복소복 내리던 어느 날, 고요한 마을에 사는 엉뚱한 토끼 산이는 마을 산책을 나섰습니다. 소복소복 쌓인 하얀 눈을 밟고 걷는 길은 참으로 상쾌하고 신이 났습니다. 마을 어귀의 길을 걷고 또 걸어 호숫가 앞까지 도착했어요. 그런데 이상한 점을 발견했어요. 보도블록 위 맨홀 뚜껑만은 눈이 하나도 쌓이지 않은 거예요.
“어, 이상하다? 여기 맨홀 뚜껑 위에는 눈이 왜 하나도 없지?”
산이는 갸우뚱 거리며 두리번거렸어요.
그때 우아한 고니가 호숫가에서 유유히 떠나디는 모습을 보았어요.
“혹시 고니 네가 맨홀 뚜껑 위에 눈을 가져갔니?”
“아니, 나는 눈이라면 너무 차가워서 싫어. 나는 물 위가 더 좋다고.”
고니가 가져간 것이 아니었어요.
토끼 산이는 어리둥절해서 또다시 고개를 두리번거렸어요.
그때 강아지 시츄가 전봇대에 오줌을 싸고 있는 모습을 보았어요.
“혹시 시츄 네가 맨홀 뚜껑 위에 눈을 가져갔니?”
“아니, 나는 전봇대와 나무만 찾느라 맨홀이 어디 있는지는 보지도 못했다고.”
시츄가 가져간 것도 아니었어요.
“아이참, 그럼 맨홀 뚜껑 위에 눈은 누가 가져간 거야?”
토끼 산이는 맨홀 뚜껑 위에 올라가서 발을 쾅쾅 굴러봤어요.
그때 맨홀 뚜껑 아래에서 무슨 소리가 들렸어요.
“아이, 누가 이렇게 시끄럽게 층간 소음을 내는 거야?”
“여보세요. 거기 누구 있어요?”
“누구야? 나는 하수구에 사는 온기요정이야. 너는 누구니?”
“나는 토끼 산이라고 해. 온기요정아. 혹시 맨홀 뚜껑 위에 눈을 네가 가져갔니?”
“아니. 나는 맨홀 뚜껑 안을 벗어나본 적이 없다고. 내가 뚜껑 밖에 있는 눈을 어떻게 가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