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홍시의 보은

창작 동화

by 루비

홍시는 수줍음이 많은 올해 10살이 된 여자아이야. 인형과 강아지를 좋아하고, 세상에서 동화책 읽는 것을 제일 사랑하는 아이지! 작은 도농복합도시에 살고 있는 홍시는 자상한 부모님, 귀여운 남동생, 친절한 학교 선생님, 누구보다 착한 친구 연두까지 곁에 있단다! 이 이야기만 들으면 홍시는 세상 누구보다도 행복한 아이일 것만 같지? 그런데 꼭 그렇지만은 않아. 아직 10살밖에 안 된 홍시에게도 가슴속에는 정말 큰 고민이 있단다. 그건 바로 홍시가 10살 생일 때부터 다른 사람의 마음을 읽는 능력이 생겼다는 거야. 눈을 지그시 바라보면, 그 사람의 마음이 머릿속에 환히 그려졌어. 그건 때론 아름답기도 때론 너무 추악하기도 해서 섬뜩하기까지 했지. 아직 10살밖에 안 된 홍시가 감당하기에는 너무 힘들었어. 혼자서 끙끙 앓던 홍시는 어느 날은 용기를 내어서 엄마에게 이야기해 보았어.

“엄마, 나는 사람들 눈빛을 보면 그 사람의 마음을 읽을 수 있어. 나를 증오해. 그래서 너무 힘들어.”

그러자 엄마가 어떻게 했는지 아니? 홍시가 요즘 힘든 일이 있는 건 아니냐며 정신병원에 데리고 간 거야. 홍시가 가슴을 치고 이야기를 해봐도 의사 선생님과 엄마는 도무지 홍시의 말을 믿지를 않았어.

“홍시가 요즈음 학교 스트레스가 많은 가 봐요.”

“매주 병원에 나와서 마음속 응어리를 끄집어내 봅시다.”

홍시는 너무나 답답했지. 그러면서 점차 마음의 문을 닫기 시작했어. 다른 문제가 아니라 바로 사람들과의 문제인데 의사 선생님과 엄마는 다른 데서 문제의 원인을 찾곤 했어. 이야기를 하면 할수록 홍시는 정말 문제아가 되는 기분이었어. 점차 마음이 만신창이가 되어갔지. 그리고 다짐했어. 자신에게 생긴 초능력은 이제부터는 절대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겠다고 말이야.

홍시가 가장 힘들었던 건, 바로 친구 연두의 마음을 읽게 되면서부터였어. 홍시는 연두를 세상 누구보다 소중한 친구라고 생각했었어. 그런데 말이야. 연두의 속마음은 전혀 그게 아니었어. 사실은 홍시가 얄밉고 불편했는데 겉으로는 세상 누구보다 아끼는 척, 둘도 없는 친구처럼 연기한 거였어. 언제 알게 되었냐고? 바로 학예회 연극을 준비하면 서였어.

“자, 우리 이번 학예회는 모둠별로 할 거예요. 수화 팀, 연극 팀, 태권도 팀, 동시 낭독 팀, 음악 줄넘기 팀! 연극 팀은 <헨젤과 그레텔>을 해보려고 하는데 누가 해 보겠니?”

홍시네 반 담임 선생님은 학예회 공연 중의 하나로 연극을 하자고 했어. 바로 <헨젤과 그레텔>을 하자고 했지. 헨젤과 그레텔은 홍시가 여섯 살 때 읽고 무척 좋아한 동화였어. 엄마와 함께 뮤지컬 공연을 보러 가기도 할 정도로 마음에 담아둔 작품이었단다. 그래서 귀여운 여동생으로 나오는 그레텔 역할을 꼭 하고 싶었지. 그런데 그건 연두도 마찬가지였어. 연두도 그레텔 역할을 무척 탐내고 있었단다. 그레텔 역할을 두고 홍시와 연두가 경쟁을 하게 됐지. 그때 연두의 눈빛을 보았을 때 홍시는 연두의 마음을 읽었어. 연두는 마음속으로 이렇게 외치고 있었어.

"재수 없는 애. 내가 오늘만큼은 너를 꼭 이길 거야."

홍시는 너무 소름이 돋았지. 집에 와서는 서러워 펑펑 울었어. 결국 선생님은 그레텔 역할을 홍시에게 맡겨주었지만 말이야. 그레텔이 화로에 마녀를 발로 처넣어 위기를 극복하는 것이 평소 홍시의 재치와 닮아있다고 말씀하시면서 말이야. 평소 선생님은 홍시 어머니에게 이렇게 말씀하시곤 했었단다.

“홍시처럼만 키우면 걱정이 없겠어요.”

홍시는 기쁨도 잠시 연두의 경멸 어린 눈빛을 잊을 수 없어서 두려웠지. 집에 돌아와서는 속상해서 펑펑 울었어. 아무에게도 이야기하지 못하고 끙끙 앓다가, 결국 밤을 지새웠지. 10살짜리 여자아이가 말이야. 다음날 아침 홍시는 학교에 가려고 나왔어.

“야옹-!”

집 앞 횡단보도에서 길을 건너려는데, 검은색 고양이가 다가와서 자꾸 앞발을 내미는 거야. 홍시는 귀엽다는 듯이 웃어주고 머리를 쓰다듬어주었어. 다시 신호가 바뀌길 기다리는데 그 고양이가 떠나질 않네. 고양이가 마치 자기를 따라오라는 것 같았어. 홍시는 호기심에 검은색 고양이를 계속 지켜봤지. 그러니깐 길 옆 아파트 단지로 뛰어가는 거야. 홍시는 왠지 따라가야만 할 것 같은 기분이 들었어. 학교 가야 한다는 생각도 있었지만, 검은색 고양이를 계속 따라갔어. 아파트 외벽을 빙빙 돌고 좁다란 길을 가로질러 고양이를 따라 도착한 곳에는 동화책에서 봤던 <헨델과 그레텔> 과자집이 있었어. 그 과자집은 드넓은 논밭 위에 있었단다. 홍시는 살며시 집 안에 들어갔어. 문을 열고 들어가자, 그 안에는 또 다른 세계가 펼쳐져 있었어. 어떤 세계냐고? 바로 홍시의 엄마, 아빠, 선생님, 남동생, 친구 연두, 그밖에 홍시의 주변 사람들이 과자인형의 모습을 하고 살아 움직이는 것이었어. 홍시가 들어가자마자 모두들,

"홍시야, 이제 오니?"

라고 하며 환히 웃는 것이 아니겠니? 홍시는 어리둥절했지. 홍시의 몸은 구름처럼 가벼웠고, 새털만큼 자유롭게 날아다닐 수 있었단다. 연두가 먼저 말을 걸었어.

"홍시야, 너도 환상의 세계에 온 것을 환영해."

뒤이어 엄마도 말을 건넸어.

"홍시야, 엄마가 너를 정신병원에 데려가서 미안해."

선생님도 말을 건넸지.

"홍시야, 학교 일은 걱정하지 말아라."

홍시는 도대체 이게 어찌 된 영문인지 알 수가 없었어. 그런데 연두가 손을 잡더니,

"내가 환상의 세계를 소개해줄게. 날 따라와."라고 했어.

홍시는 연두의 손을 잡았어. 의심하는 눈초리를 거두지 않고 말이야. 그런데 연두의 손을 잡는 순간, 따스한 느낌이 온몸에 퍼지는 것을 느꼈어. 그건, 홍시가 10살이 될 때까지 한 번도 느껴보지 못한 감정이었어. 이건 마치 따뜻한 우유잔 안에서 목욕을 하는 기분이었어.

연두를 따라나선 지 10분쯤 흘렀을까, 연두가 한 대리석으로 만든 집 앞에 멈춰 서서 말을 건넸어.

"여기가 너와 나의 환상의 세계, 인연의 방이야. 네가 천사와 놀고 있을 때, 태양에서 붉은 불빛이 네 머리 위로 떨어졌지. 나는 네가 걱정되어서 잽싸게 달려와 너를 구했고, 그 일로 난 보다시피 몸의 반쪽에 화상을 입게 됐어. 그 일로 난 줄곧 지상에서 너를 미워하게 됐단다."

연두가 옷을 펼쳐 몸 안쪽을 보이자 정말로 검게 그을린 흔적이 보였어. 홍시는 소스라치게 놀랐지. 그리고 하염없이 눈물이 흘렀어.

"연두야, 나는 그런 줄도 모르고. 내가 너에게 어떻게 보답해야 할까?" 홍시는 물었어.

연두는 대답했지.

"그건 말이야. 네 스스로 깨우쳐야 해."

라고 말하는 거야. 그런데 갑자기 사방이 어두워지더니, 모든 게 흔적도 없이 사라지고 아까 서있던 횡단보도 앞으로 돌아오게 된 거야. 옆에는 그 검은 고양이가 '야옹'소리를 내며 울고 있었지.

홍시가 손목시계를 바라보니 시간은 9시 10분 전이었어. 홍시는 잽싸게 학교로 뛰어갔단다. 교실로 들어서니 연두가 반갑게 인사했어. 여전히 눈빛에서 "흥. 고까운 계집애."라는 마음을 읽을 수 있었지. 홍시는 너무 혼란스러웠어. 홍시는 환상의 세계에서 겪었던 일을 떨칠 수 없었어. 너무나도 생생했던 그 일로 인해 홍시는 자신의 마음속에 연두에 대한 미안한 마음이 피어오르는 것을 느꼈어. 그래서 선생님한테 가서 이렇게 말했지.

"그레텔 역할은 연두에게 양보할게요. 저는 다른 역할을 주세요."

“홍시야, 갑자기 왜 그러니?”

선생님은 놀라는 표정을 지었지만 홍시는 전혀 다른 속마음을 읽을 수 있었어. '안 그래도 연두가 쌩한 게 골치 아팠는데 너라도 양보해 주니 정말 다행이구나.'하고 말이야.

그레텔 역할을 연두가 하게 되고, 홍시는 마녀 역할을 하게 됐어. 비록 마녀는 못되고 사악한 인물이지만, 홍시는 자신의 역할에 최선을 다하고 싶었지. 그렇게 생각하니 서운한 마음이 눈 녹듯 사라지고 콧노래가 절로 났어. 그런 생각을 하면서 홍시가 집으로 돌아오는데 아침에 본 검은 고양이가 또다시 횡단보도에서 어슬렁거리는 거야. 홍시는 그 고양이를 따라갔어. 이번에도 고양이는 자기를 따라오라는 듯이 재촉했지. 마치 이렇게 말하는 것 같았어.

“홍시, 넌 나와 마주칠 수밖에 없는 운명이야. 나를 믿어봐.”

홍시가 따라가니 아니나 다를까. 논밭 위에 아까 그 과자집이 또 있는 거야. 홍시는 또다시 안으로 들어갔지. 하얀 구름들이 뭉게뭉게 피어있고, 이번에도 홍시의 가족, 친구들, 선생님이 보였어. 역시나 과자인형의 모습이었어.

선생님이 다가와 말을 걸었어.

"홍시야, 오늘 정말 기특한 일을 해주었더구나. 선생님과 함께 잠깐 어디 좀 가자꾸나." 홍시는 쫄래쫄래 따라갔어.

선생님은 연두와 갔던 곳처럼 하얀 대리석 집 앞에 멈췄지. 그 방에 들어가니 선생님과의 환상의 세계, 인연이 보였어. 선생님은 대천사였고, 홍시는 어린아이였지. 연두가 홍시를 태양불에서 구해냈을 때, 대천사인 선생님은 그 모습을 지켜보다 발을 헛디뎌 낭떠러지로 추락했어. 그 일로 선생님은 날개의 반쪽을 잃었고, 홍시를 원망하게 되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단다.

“아, 흑흑. 선생님, 제가 어떻게 보답해야 하죠?”

홍시가 울면서 물었어.

"그건 말이야. 네 스스로 깨우쳐야 해."

이번에도 선생님의 대답은 연두의 대답과 같았어.

홍시는 펑펑 울었어. 홍시 한 사람을 위해 참 많은 사람이 희생했다는 것을 알게 되었어. 연두, 선생님의 희생이 있어서 자신이 지금 이렇게 행복할 수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지. 그 순간 또다시 환상의 세계는 흔적도 없이 사라지고 다시 횡단보도와 검은 고양이가 있는 곳으로 돌아왔어.

홍시는 선생님에게 너무나 미안했어. 이것을 어찌 보답해야 할까 고민했지. 일단 집으로 뛰어갔어. 현관문을 열고 집 안에 들어서니 엄마는 부엌에서 요리를 하고 계셨어.

"엄마~"

하고 부르는데, 뒤돌아선 사람은 엄마가 아니었어. 누구였냐고? 그건 모습은 엄마의 모습인데 영혼은 천상의 세계에 있는 사람 같았어. 그때 본 과자인형의 모습을 하고 있었지. 홍시는 뒷걸음질 쳤지. 그리고 펑펑 울었어. 눈물이 쉴 새 없이 흘러내렸어. 엄마가 홍시에게 다가왔어.

"홍시야. 엄마는 네가 천상의 세계에서 연두를 만난 것도, 선생님을 만난 것도 알고 있단다. 홍시는 많은 사람의 도움으로 세상에 태어날 수 있었어. 많은 축복을 받고 말이야. 그러니, 그 사람들의 은혜를 잊지 말아야 해. 더 많이 베풀고 더 많이 사랑하고 더 많이 봉사하여야 한단다. 그러면 축복이 기다릴 거야."

엄마가 그 말을 마치자마자 모든 것이 흔적도 없이 사라졌어. 그리고 홍시는 정신을 잃었지. 홍시가 눈을 떴을 땐, 병원 침대에 누워 있었어. 의사 선생님과 엄마가 하는 이야기가 들렸지.

"의사 선생님, 홍시가 마음의 상처가 깊은 것 같아요. 홍시에게 무슨 말을 해줘야 할지 모르겠어요."

"어머니, 홍시는 잘 이겨낼 거예요. 아무 말이 필요치 않아요. 그저 따스하게 안아주세요."

홍시는 두 뺨 위로 눈물이 흘러내리는 것을 느꼈어. 홍시는 일어나서 엄마를 불렀지.

"엄마, 저 이제 괜찮아요. 저는 축복받은 아이예요. 저를 태어나게 해 주셔서 감사해요. 많이 베풀며 살게요."라고 말을 건넸어. 그때, 창 밖으로 어디선가 '야옹' 소리가 들렸단다. 고개를 돌리니 검은색 고양이 한 마리가 유유히 걸어가고 있었지.

일주일 뒤 홍시는 퇴원을 했어. 홍시는 집으로 돌아와 침대 위에서 계속 궁리를 했어.

‘어떻게 연두와 선생님에게 보답을 해야 할까? 어떻게 친구들에게 고마움을 표현할까?’

그렇게 계속 궁리를 하던 끝에 홍시는 자신이 환상의 세계에서 본 과자인형의 이야기를 만들어봐야겠단 생각이 들었어. 언젠가 동화책에서 읽었던 호두까기인형 이야기처럼 과자인형 이야기도 지어보면 재미있지 않을까란 생각이 든 거야. 과자인형 이야기를 지어서 친구들과 부모님, 선생님에게 선물해주고 싶었어. 그때부터 공책에 이야기를 써 내려가기 시작했어. 제목은 <과자인형의 보은>이었어. 과자인형 나라에서 제일 약하고 쓸모없던 주인공이 주변 과자 인형 친구들의 도움으로 성장하고 모두에게 평화를 가져온다는 이야기였어. 쓰면서 점차 아픔이 줄어들고 매일매일이 즐거움으로 가득 차기 시작했단다. 이야기를 다 쓰고 제일 먼저 엄마와 아빠에게 달려갔지.

“엄마, 아빠!”

“그래, 우리 홍시야.”

“제가 쓴 이야기 한 번 봐보세요.”

“과자인형의 보은? 재밌겠는 걸.”

부모님은 무척 좋아해 주셨어. 자신감이 생긴 홍시는 연두에게도 보여주고 싶었고 선생님에게도 보여줄 생각으로 가슴이 콩닥콩닥 뛰었지. 더 이상 연두에게도, 선생님에게도 어떤 미움도 원망하는 마음도 남아있지 않았어. 그저 자신이 지은 동화제목처럼 보은 하고 싶은 마음뿐이었지.

홍시의 기대대로 연두와 선생님은 홍시의 이야기를 무척 좋아해 주었어.

“와, 정말 이 이야기를 네가 썼단 말이야?”

“홍시야, 선생님은 정말 감동받았단다.”

홍시는 고개를 끄덕거리며 한 가지 제안을 했어.

“선생님, 연두야. 우리 다음번엔 이 이야기를 연극으로 만들어봐요. 만들어보자. 무척 재밌을 것 같아.”

선생님과 연두도 좋아해 주었어.

“그래, 그거 좋은 생각인 걸.”

홍시는 이렇게 연두와 선생님, 부모님과 아름답게 화해할 수 있었어. 아니, 화해라기보다는 홍시가 마음을 치유하고 그들과 잘 지낼 수 있게 된 거지. 바로 넉넉히 베푸는 마음이 큰 힘을 발휘한 거야. 그런데 참 신기하게도 그때부터 더 이상 홍시는 사람들의 마음을 읽을 수 없게 되었어. 그저, 지긋이 바라보는 눈빛, 마주 잡은 따뜻한 손, 서로에게 보여주는 미소 하나면 충분했지. 홍시는 이제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10살 소녀가 되었어.




홍시2.jpg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