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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반창고

왕따 피해자를 테스트하고 2차 가해하는 모든 사람들에게

by 루비

나는 무려 19살 때부터 왕따를 당하였다. 대학 새내기 시절부터.

잘 웃고 밝고 귀엽다고 인기 많았던 나는 그걸 시샘한 여자들 무리로부터 얼마 안가 투명인간 취급을 당하였고 하는 수 없이 새로운 그룹을 사귀었고 크리스찬으로 똘똘 뭉친 그들은 얼마 안가 또다시 나를 따돌리고 나는 대학 4학년 때 임용공부는 혼자서 했다. 그때 너무 막막하고 정보가 없어서 동아리 오빠한테 도움을 요청하는 과정에서 성추행 시도를 당하기도 했다.


여기 낱낱이 다 적기에는 고통스러운 사연이 너무 많아서 다 쓰지는 않겠다.

더 충격적이고 끔찍한 건, 20여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사람들은 가해자들과 방관자들이 아닌 피해자인 나를 모욕하고 2차 가해하고 끊임없이 테스트하고 사람을 시험한다는 것이다.


대체 그들이 원하는 게 뭘까? 피해자 한 사람의 청춘을 개박살을 낸 것도 모자라서,

왜 아직까지도 괴롭힘을 그치지 않는 걸까?


난 중1때도 친한 단짝으로부터 왕따 주도로 괴롭힘을 당한 기억이 있다. 그때 담임 선생님은 출산휴가를 들어가셔서 반은 막장으로 치달았고 임시 담임선생님은 3~4번 바뀌었고 학교생활은 지옥이었다. 그때의 상처는 트라우마가 되어서 아직도 뇌리에 남아있다.

내가 현직에 나와서도 마찬가지다. 학급에는 담임 주도로 왕따를 당하는 아이들이 가끔씩 보인다. 또는 담임 주도가 아니어도 몇몇 못 된 학생으로 인해 왕따 당하는 아이들이 발생한다. 하지만 학교 교사 대부분은 무슨 대회에 나가 상을 타고 실적을 올리고 성적을 올리는 데에만 관심 있지 그렇게 숨죽여 울고 있는 아이를 살뜰히 챙기는 교사를 본 적이 없다. 하도 비협조적이어서 언제나 나 혼자 발을 동동 구르고 고군분투했던 기억이 난다. 이지성 작가도 한 프로그램에서 초등교사시절 왕따 당하는 아이를 챙기면 자신이 교사들로부터 왕따를 당한다고 말하였다.


그래서 이렇게 사회가 야만적이고 차가운 걸까?


그들이 내게 요구하는 건, 이제 그만 시끄럽게 떠들고 자살로 생을 마감하라 이건가?

자살로 생을 마감하면 대대적으로 추모를 해주고 며칠 서글픈 척 해주고, 사회에 대한 분노를 표현하고 아픔에 통감해 줄 건가? 역겹고 이중적인 사람들이 대다수인 한국사회에서,


친구도 별로 없고 인간관계도 좁지만, 딱히 아쉬운 건 없다. 굳이 스트레스 만들고 싶지 않다.


내가 지난 수십 년간, 제대로 된 사람을 한 명이라도 만났다면 이렇게 되지 않았을 것이다. 도와주는 척 다가와서 정보를 캐고 끊임없이 의심을 하고 사실 네가 문제야라고 하는 비열한 사람만 수없이 만났다. 그런 인간들 수천 명 수만 명 알고 지내는 것보다 나를 소중히 여기고 아껴주는 열 손가락 안에 꼽는 사람들이 더 소중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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