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한 해가 저물고 새 해가 시작되었다. 영은의 나이는 서른아홉. 드라마 <서른, 아홉>이라는 드라마도 있었는데, 서른아홉이라는 숫자가 특별하긴 한 것 같다. 삼십대도 저물고 어느새 마흔을 앞두고 있으니... 스물아홉 때는 스물아홉이 지나고 서른이 시작되면 세상이 끝날 것만 같아서 덜컥 겁이 났는데 이제 서른아홉이 된 지금은 무덤덤하고 아무렇지도 않다. 그저, 이제는 정말 눈을 낮춰야하나 그런 생각이 들 뿐...
소극적이고 내성적이었기에 영은은 스무살때부터 누군가에게 먼저 다가가본 경험이 없다. 동성이든 이성이든. 언제나 먼저 다가온 사람들과 친구가 돼서일까. 대부분은 무언가 이득을 위해서, 이용을 위해서 다가온 사람들이었다. 개방적이고 포용적이었던 영은은, 그렇게 아낌없이 자신의 마음을 순수하게 내주었는데 그들은 아니었다. 여자들은 남자들 앞에서 뽐내기 위해서 친한 척 할 뿐, 정작 영은이 멋진 모습을 보이면 언제 그랬냐는 듯 이빨을 드러냈고 남자들은 순수한 호의인양 다가올 땐 언제고 뒤로는 주판알을 두드리며 먼저 다가온 주제에 다른 남자한테도 꼬리친거 아니냐는 둥 막말을 서슴지 않았다. 그러면서 영은은 세상에 환멸만 늘어갔다.
영은은 남자친구가 생기면 해보고 싶은 데이트 목록을 일기장에 적어왔었다. 하지만 그러한 남자친구는 스무살때부터 이십년이 다 되어가도 생긴 적이 없었다. 그건 누군가가 지적했듯 아마 눈이 너무 높아서일 것이다.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이상적인 사랑에 대한 기준치가 높아서이지 조건이나 배경을 따지는 건 절대 아니었다. 미의 여신 아프로디테처럼 아름다움과 추함에 대한 기준도 엄격하고 정의의 여신 디케처럼 옳고 그름, 도덕성에 대한 기준도 엄격했다. 그건 이상주의자 인프피의 대표적인 특징이기도 했다. 영은은 그렇게 담백하고 건조한 삶을 살아왔다.
영은의 독일인 펜팔 친구 지젤은 딩크부부라고 한다. 영은은 아직 그에 대한 확고한 생각이 없다. 지젤의 말처럼 인연이란 쉽게 만나지는 게 아니란 생각이 들었다. 지난 세월을 돌아봐도 순 엉터리 투성이인 사람들 뿐이었다. 인격에 결함이 있거나 사고력에 문제가 있거나 통찰력이 부족하거나 외모가 마음에 안들거나 등등. 어느 영화에서는 사랑하는 사람을 만날 기적의 확률이 60억분의 1이라는데(아마도 예전 지구인 수를 나눈 것 같다) 그건 어쩌면 당연한 게 아닐까? 사실 우리는 다 알고 있지 않은가. 대부분의 부부가 영화처럼 사랑하며 사는 경우는 드물다는 것을...
그러니 아무나가 아니고 거기서 거기도 아니고 특별한 사랑을 기다리는 건, 어쩌면 그만큼 기다릴만한 가치가 있는 것이었다. 아니 에르노는 한 남자, 혹은 한 여자에게 사랑은 느끼는 것은 사치가 아닐까라고 했는데, 그런 사치를 부리고 싶다면, 충분히 기다림의 시간을 견뎌야한다고 생각했다.
https://youtu.be/PDa1yMlB-sQ?si=Fm-IZq0-r0zJ3TCW