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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반창고

내 안의 신화를 찾아서

작은 아씨들의 '조'처럼

by 루비
12. <작은 아씨들>의 ‘조’처럼 자기 안의 신화를 찾아 용감하게 떠날 준비가 되었나요? 당신 안의 ‘조’는 지금 무엇을 원하나요?
상처조차 아름다운 당신에게/정여울 저, 249쪽

<작은 아씨들>은 어린 시절 그림책으로 봤었다. 그때 메그, 조, 베스, 에이미의 아기자기한 일상을 포근한 시선으로 바라봤던 기억이 난다. 가난하지만 서로간의 우애가 돈독한 네 자매들처럼 따스한 매일매일을 꿈꿨다. 나는 비록 여자 형제는 없지만 남동생과 함께 단란한 학창시절을 보냈었다. 하루는 낮에 싸운 일이 미안해서 밤에 서로를 부둥켜안고 미안하다고 사과하며 운적도 있다. 그토록 순진무구하고 어리던 남매였다.


하지만 커가면서 ‘조’처럼 나도 내 삶을 독립적으로 이끌어나갈 채비를 해나갔다. 마냥 어리고 부모님의 품안에 안겨있는 어린아이가 아니라 내 삶을 당당하게 책임질 어른으로 성장하고 싶었다. 그리하여 대학생이 되자마자 아르바이트를 하며 생활비를 벌었다. 텔레마케팅 회사에는 단 하루 근무하고 나와는 전혀 맞지 않는다고 생각하고 그만두었다. 편의점 아르바이트, 방청객 아르바이트, 과외, 기간제 교사 등을 하며 세상으로 돌진했다. 진상 고객을 맞이하거나 과외에서 한달만에 잘리는 등 어려움도 있었지만 내 스스로 돈을 번다는 뿌듯함으로 이겨낼 수 있었다.


이번에 넷플릭스로 영화 <작은 아씨들>을 보면서 ‘조’에게 감정이입을 많이 했다. 일단 ‘조’가 작가 지망생이란 점에서 공통분모를 느꼈다. 나도 작가로 성공하고 싶은 마음이 있기 때문이다. 물론 지금 하고 있는 교사로서의 일도 성공적으로 하고 싶지만 더 강렬히 열망하는 것은 작가로서의 꿈이다. 나도 어찌하다 이렇게 흘러왔나 싶다. 그런데 <연어>를 쓴 안도현 시인, <풀꽃>의 나태주 시인, <담쟁이>를 쓴 도종환 시인, 섬진강의 김용택 시인도 모두 교사였거나 교사를 하면서 글을 썼다. 그래서 내 꿈이 마냥 허무맹랑하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유명한 아동문학가 아스트리드 린드그렌도 교사를 하면서 <말괄량이 삐삐>를 집필했다고 하니 더 말해 무엇하겠는가.


작가의 꿈을 갖게 되면 정말 알아야 할게 정말 많다. 작가란 꿈을 가진 후와 가지기 전은 세상을 보는 관점이 달라도 너무 다르다. 작가지망생의 시선으로 보는 세상은 모든 게 경이로움 투성이다. 모든 세상 만물에서 배울 것을 찾고 호기심 가득한 눈으로 바라보며 질문하고 끝없이 탐구하게 된다. 같은 사건을 두고도 자기만의 주관과 철학을 담아 재해석하고 곱씹고 자문하게 된다. 그리하여 더 겸손한 사람이 된다.


<작은 아씨들>의 ‘조’가 결국 해피엔딩의 소설을 완성해 열망하던 작가가 되었듯이 나도 나만의 글을 써서 언젠가는 이름을 알리고 싶다. 그렇게 나만의 신화를 써내려가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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