런던에서 길을 잃다

by 루비



2016년 8월에 여행을 다녀오고 써놓은 글이에요.



여행 둘째 날, 출발은 상쾌했다. 숙소에서 나선지 얼마 안 되어 만난 작은 길로 런던의 명물인 빨간색 버스가 지나갔다. 초행자의 마음으로 연신 카메라로 사진을 찍어댔다. 내가 향하는 곳은 런던 버킹엄궁. 런던 언더그라운드를 타고 그린파크역에 내렸다. 파릇파릇한 잔디가 펼쳐진 공원이 보였고 사람들이 휴식을 취했다. 군데군데 벤치도 놓여있어 시간적 여유가 된다면 한참 머물다 가고 싶었다. 아뿔싸, 근데 스마트폰 배터리가 방전될 모양이었다. 그런데 충전기까지 숙소에 두고 온 모양이었다. 여행의 기록을 남기려면 사진을 찍어야하는데 아쉽다는 생각이 들었다. 결국 다시 숙소로 돌아가기로 결정했다.


다시 부랴부랴 그린파크역을 거쳐 유스턴역 근처 숙소로 돌아갔다. 그런데 너무나도 난감한 일이 발생했다. 숙소가 어디였는지 내가 어느 길을 거쳐왔는지 도무지 갈피를 잡을 수 없었다. 분명 근처에 다 온 것 같은데 이리저리 헤매어 봐도 숙소는 보이지 않았다. 설상가상으로 이미 스마트폰은 꺼진 상태. 런던 근위병 교대식을 보려면 시간을 맞춰야 되는데 당황스럽고 짜증나고 복잡한 심정이었다. 가슴은 마구 방망이질을 쳤다. 한적한 길가에는 사람도 없고 금방이라도 울음이 터질 것만 같았다.


결국 다시 제일 가까운 지하철역인 유스턴역으로 돌아갔다. 마침 유스턴역에는 마트가 있었다. 마트에서 내 스마트폰 기종에 맞는 충전기를 사고 근처 스타벅스로 들어갔다. 그 곳에서 음료를 시키고 휴대폰을 충전할 수 있었다. 그제서야 마음이 놓였다. 아, 나는 왜이리 바보같은가. 결국 근위병 교대식을 놓치고 다음날로 일정을 변경하였다. 그리고 나는 다음 목적지로 길을 나섰다.


내가 향한 곳은 코벤트 가든이었다. 뮤지컬 영화 <마이 페어 레이디>에서 오드리 햅번이 분한 주인공 일라이자가 꽃을 팔던 거리로도 유명한 곳이다. 예쁜 꽃들이 가득했고, 앤티크 제품, 수공예품들이 즐비한 마켓이 열리고 있었다. 나는 그 활기찬 분위기에 흠뻑 젖어들었다. 거리를 걸으며 식당에서 연주하는 음악 공연도 감상하고 시장을 구경했다. 그리고 예쁜 압화 액세서리를 파는 가게 앞에 멈춰 섰다. 동그란 유리 안에 꽃잎이 박힌 액세서리가 가득했다. 이것저것을 둘러본 후에 마음에 든 팔찌 하나를 골라 얼마인지 묻고 이내 사버렸다. 그리고 기분이 좋아져 팔목에 착용했다. 영화 속 주인공이 된 것만 같았다.


코벤트 가든에서 산 팔찌

마켓 구경을 마친 후 런던의 소호거리로 향했다. 인천공항에서 먹은 CJ의 비비고가 런던 소호거리에 개장했다길래 한번 가보고 싶었다. 피카딜리 서커스를 지나 거리를 걸으며 비비고가 어디에 있는지 찾아 헤맸다. 여행 내내 구글맵을 활용했는데 도무지 이 비비고만은 찾기가 너무 어려웠다. 활기찬 사람들과 다르게 나는 이내 또 풀이 죽었다. 어디가 어딘지 갈피를 못 잡았다. 그러고 보니 배도 고파오기 시작했다. 가까운 식당을 찾았다.


​거기서는 신선한 채소와 닭고기를 함께 팔았다. 세트로 된 채소와 닭고기를 주문하고 자리에 앉았다. 주변 자리에는 음식물 쓰레기가 지저분하게 널브러져 있었다. 갑자기 내가 너무 처량하게 느껴졌다. 이제 겨우 여행 둘째 날인데 어떡하지? 한국에서 비행기로 12시간 거리에 홀로 떨어져 있는 게 이런 기분인가? 결국 힘을 내서 닭고기를 모두 해치운 후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리고 다시 길을 나섰다. 그런데 갑자기 손목 팔찌가 뚝 끊어져버리고 말았다. 이런!


세계는 한 권의 책이고 여행하지 않는 사람들은 그 책의 한 페이지만 읽는 것과 같다라고 성 아우구스티누스가 일갈하였다고 하는데 나는 지금 어느 페이지를 읽고 있기에 하루가 이다지도 힘들까? 그렇게 하루는 저물어 갔다. 최악의 하루를 보냈지만 그래도 다시 기운을 내 씻고 잠자리에 들었다. 그 다음날은 또 다른 날이 되길 바라며... 해피엔딩을 꿈꾸는 멜로 영화의 관객들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