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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적60분] 7세 고시, 누구를 위한 시험인가를 보고

by 루비


유튜브에서 대치키즈라는 청년의 영상을 봤다. 그의 학창시절은 자해와 자살시도의 연속이었으며 내내 우울증에 시달렸다고 한다. 그럼에도 그의 부모는 아랑곳 않고 계속해서 체벌과 학대를 가했다고 한다. 밤을 새서 벼락치기 공부를 하려고 하면 불을 끄고 자라고 했던 부모님을 뒀던 나는 꽤 충격을 받았다. 사실, 내가 처음 우리나라 학생들이 이상하다고 느낀 건 기간제 교사 시절이었다. 부모는 일하러 가느라 학생의 담임 선생님이 바뀐 줄도 몰랐고, 공격적인 아이들, 반항적인 아이들이 많았다. 힘들게 고생하고 1년 뒤 임용고사에 합격해 신규교사로 근무하고 있을 때 아이들에게 메일이 왔다. 선생님이 그립다며 1년여 가까이 메일을 주고 받은 아이도 있고, 너무 죄송했다며 사과의 메일을 보내온 아이도 있었다. 그러한 일은 지방에서 근무하다 다시 기간제 교사를 하던 지역 근처로 파견근무를 가면서 다시 겪게 되었다. 너무 이상한 아이들이 많다고 느꼈다.


그런데 오늘 [추적60분] 다큐를 보면서 조금 상황이 이해가 가기 시작했다. 내가 겪은 아이들은 자연 속에서 자라고 순수하게 공교육만 받아온 기준에서는 이상했지만 그 아이들의 입장에서는 그게 정상이었던 것이다. 내 기준에서는 과도한 사교육과 선행학습에 지치고 피곤한 아이들의 공격성과 우울증이 이해가 안가고 적응하기 힘들었지만, 그 아이들의 세계에서는 그것이 정상이고 내가 지나치게 나이브한 것이었다. 그러면서 다큐멘터리를 보는데 심장이 두근거리고 불안해서 당장이라도 그만 꺼버리고 싶었지만 대치동의 사교육 열풍이 어느 정도인지 알고 싶었다. 감히 상상도 못할 수준으로 과열된 사교육 현장을 보니 왜 그렇게 정신질환을 앓은 아이들이 많은지, 왜 세계에서 가장 불행한 아이들이라고 하는지 이해가 갈 정도였다.


공교육 교사들을 비난하는 목소리가 크지만, 가르침에 있어서는 학교 교사들이 뒤처지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학교 교사들은 학생들의 전인적인 발달과 성장을 돕는다. 그러나 사교육 시장에 학원 강사들은 오직 입시에서의 성공만이 목표다. 교과서 또한 학생들의 발달단계에 맞춰 국가수준 성취기준에 따라 단계적으로 적정화·체계화되어 있다. 학습 분량이 지나치게 많고 수준이 다른 국가에 비해 높은 것이 흠이지만, 이마저도 사교육 시장에 비하면 비교할 수준이 못된다. 한 대형학원 원장의 인터뷰에 따르면 지속적으로 학령인구가 감소하면서 고등학교 입시생을 대상으로 하던 사교육 학원가가 이제 초등에서 유아를 겨냥한 수준까지 내려왔다고 한다. 학부모들의 불안감을 자극하면서까지 말이다.


맘카페나 학부모 모임 등에서 학부모들은 여러 입시정보를 공유하며 불안감과 경쟁심을 확대재생산한다. 한창 자유롭게 뛰어놀고 오감을 발달시켜야 할 영유아 아이들이 고등학생, 대학생들도 풀기 어려워하는 수능문제에 맞먹는 문제를 풀면서 가히 학대에 가까운 입시전쟁을 치러야하는 것은 문제가 있어 보인다. 이 상황에서 교사로서 어떻게 균형을 맞춰 나가야할까? 정말 모두가 뛰어든 레이스에 함께 뛰어들어 학생들을 불안과 우울의 광기에 몰아넣어야할까? 아니면, 소신과 원칙을 지키며 건전한 인격 형성을 돕고 그 나이때만 누릴 수 있는 자유와 행복을 안겨주어야 할까?

이 다큐멘터리를 보면서 하이타니 겐지로의 <손과 눈과 소리와>라는 단편 소설이 떠올랐다. 대학생 시절 읽으면서 꽤 많은 공감을 받았었다. 교육에 대한 판단과 선택은 자녀의 학부모가 결정하겠지만, 그것이 한국 사회에 각종 정신질환과 과도한 공격성과 폭력성, 혐오 문화를 낳는다고 생각하니 아찔하다. '사교육걱정없는 세상'이란 단체에서는 끊임없이 이에 대한 반대 운동을 펼치고 있다. 나또한 조금씩 함께 실천하고자 노력하고 있으며 비슷한 생각을 가진 사람들이 모여서 조금씩 변화의 물꼬를 트길 기대해본다.



공부할 수 있는 놈은 공부를 할 수 있게 해 준 선생을 좋은 선생이라고 하지만, 슬픈 일이 하도 많아서 공부 따위가 손에 잡히지 않는 놈은 슬픈 일을 같이 걱정해 주는 선생이 좋은 선생이잖아. 우리 학교에 그런 선생 있나? <물이야기> p.14


하지만 선생님, 직접 싸우지 않은 사람이 어떻게 남의 고통을 이해할 수 있겠어요? 다들 너무나 순순히 규칙을 따르고 너무나 욕망에 약해요. 사친은 그것도 인간이라고 했지만, 저는 그런 식으로 생각하고 싶지 않아요. <손> p.72


무슨 책에선가 읽은 적이 있는데, 가장 잔혹한 고문은 오른쪽에 있는 돌 몇 개를 왼쪽으로 옮기게 하고 다 끝나면 다시 왼쪽에 있는 돌을 오른쪽으로 옮기게 하는 것이란다. 그런 일을 끝도 없이 되풀이시키는 것. 입시 공부도 고등학교나 대학에 들어간다는 목적이 없으면 이 고문과 똑같으리라고 본다. 인간이 자기가 하고 있는 일에 의미를 갖고 있지 않을 때만큼 끔찍한 건 없는데‥‥‥.<친구> p.160


유행만 좇아다니는 아이는 가장 결정적인 순간에 사물을 정확히 꿰뚫어 보지 못하는 경우가 많은 것 같다. 학교 측이나 선생님이 정한 일을 단순히 지키기만 하는 아이들이 주로 인기 가수 뒤꽁무니나 쫓아다닌다. <친구> p.184


"원숭이 우등생이라고 알아?"

"‥‥‥?"

내가 의아스러운 표정을 짓자, 이타미가 말했다.

"죽마도 타고 미니 오토바이도 타는 원숭이들이 있지. 이 녀석들은 원숭이 사회로 돌아가면 아무 짝에도 쓸모가 없는 거야. 할 줄 아는 게 없으니까. 알겠냐?" <친구> p.185

앞으로 1년은 아무리 싫어도 중학교 생활을 해야 하고, 어차피 고등학교에 가지 않으면 부모님이 가만 두지 않을 것이고, 그러고 나서 대학이라는 식으로 생각하면 아예 정신이 아찔해져 버린다.

좋아하는 음악을 듣는다든지, 마음이 맞는 친구와 이야기를 나눈다든지, 살아 있어서 즐거운 일은 한둘이 아닌데, 지금의 생활은 너무나 지긋지긋하다. 꼭 견딜 수 없는 잿빛 생활이 그 즐거운 생활을 푹 싸서 감춰 버리고 있는 듯한 느낌이다. 어떻게 그럴까 하고 멀거니 생각해 본다. 자유의 문제일까? 내 뜻대로 고생하는 거라면 얼마든지 견딜 수 있지만 억지로 주어진 고통은 너무나도 견디기가 힘들다. 지금 학교 생활이 지긋지긋할 수밖에 없는 건 우리 스스로 변하는 것을 학교가 도와 주는 것이 아니라, 일방적인 명령이나 강제로 우리를 변하라고 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친구> p.196



https://youtu.be/DysyxTqFlnY?si=GtoHmTvWkdsZMzO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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