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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의 두 여인

신사임당과 성춘향

by 루비

*한국사 과정에 포함된 인물 중에서 두 사람을 선택하여 비교하여 설명하시오.


비교 대상으로 조선시대의 유명 여류 인물 신사임당과 판소리 소설 춘향전의 성춘향을 선정하였다. 이 둘은 여성 또는 기생이라는 지위와 사회적 제약에 아랑곳 않고 자신의 입지를 다지고 당차게 한 시대를 풍미했다는 점에서 귀감이 될 만하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먼저 신사임당은 그 업적과 품행이 본받을만하여 오늘날의 오만 원권에 초상으로 실릴 만큼 대단한 인물이라고 할 수 있다. 흔히 신사임당하면 현모양처의 이미지로 많이 대변되고는 하는데 이 강의를 통해 현모양처의 이미지는 오히려 신사임당의 예술가적 재주와 뛰어났던 삶의 행적을 여성이라는 나약한 틀 안에 축소시키는 한계였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물론 현모양처로서 자식을 잘 교육시키고 남편을 잘 받들어 행복하게 산 점도 높이 살만하지만 글과 그림과 같은 뛰어난 예술적 재능을 선보이며 당대 평범한 여성들과 다르게 자신의 독자적 삶과 자유, 예술을 추구했다는 점에서 굉장히 당차고 멋지게 보인다.


이것은 조선 전기 시대의 분위기, 시대상과도 맞닿아 있다. 조선 후기와 달리 조선 전기는 여성의 지위가 높았으며 농업사회의 특징으로 재산균분상속이 가능하였고 종교적으로도 여성들의 출가를 인정하는 불교의 영향을 많이 받았기 때문에 더욱 신사임당의 재능이 빛을 발하는 데 유리하였다.


다음으로 성춘향을 살펴보겠다. 성춘향은 비록 허구의 인물로 기생 출신이지만 양반 이몽룡과 신분을 초월한 사랑의 결실을 맺었다. 이는 평범하고 힘없는 민초들의 욕구를 대리실현한 인물로 주목할 만하다. 신분이 다른 결혼은 실패할 수밖에 없는 구조를 타파해 냈다는 점에서 많은 이들의 사랑을 받아 이야기로 전해져 내려오는 것이다.


신사임당처럼 성춘향 또한 조선후기의 시대상에 많은 영향을 받았음을 알 수 있다. 성춘향이 살던 시대인 조선 후기는 상공업이 발달하여 납속, 족보 위조와 같은 방법으로 양반들의 수가 기하급수적으로 늘었다. 이와 더불어 동학 농민 운동과 갑오개혁 등을 거치면서 신분제가 붕괴되던 시기였다. 그로 인하여 사람들은 신분이 다른 성춘향과 이몽룡의 해피엔딩적 이야기에 열광하였고 오래오래 구전으로 전해 내려올 수 있었던 것이다.


그 당시 사람들이 얼마나 신분제 폐지를 원했는지, 자유와 평등 등을 소망했는지 춘향이와 이몽룡의 사랑 이야기를 통해 알 수 있다. 기생 신분으로서 탐관오리인 변학도의 수청 요구도 거부하고 이몽룡과 백년가약을 맺으며 신분의 한계를 뛰어넘은 성춘향은 신사임당만큼이나 실로 대단한 인물이라 할 수 있다. 성춘향은 자신의 신념과 의지로 일반 백성들의 염원을 모두 실현한 여인이었다.


이와 같이 신사임당과 성춘향은 각기 다른 방식으로 조선 시대 사회에서 중요한 의미를 지니는 인물로 평가할 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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