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이 막혔다면 담을 넘자

세상의 차별과 관습에 맞서 싸우는 이야기, 동화 <담을 넘은 아이>

by 루비



‘문이 막히면 담을 넘어라.’
본문 150쪽

대학생 시절 친구와 함께 학교 담을 넘었다. 기숙사 살던 그때 아마 동아리 저녁 모임에 참가하기 위해 나갔던 것 같다. 저녁 11시만 되면 교문을 잠갔고 우리는 그렇게 담을 넘었다. 그러고 보니 고등학생 시절에도 담을 넘은 기억이 있다. 매일 밤 10시까지 했던 야간 자율학습이 하기 싫던 날, 담임 선생님께 아프다는 핑계를 대고 교문 가까이 나왔는데 문은 굳게 잠겨 있었다. 그때 나와 비슷한 처지로 보이는 어떤 여학생이 담을 넘는 모습을 봤다. 그래서 나도 따라 담을 넘었다. 무언가 짜릿한 해방감을 느꼈다. 이 두 가지가 내 인생의 유일한 담을 넘은 기억이다.


아마 이런 연유에서 책 제목이 마음에 들었나 보다. 몇 개월 전부터 이 책을 읽어봐야겠다고 생각했고 우연히 이 책을 손에 쥐게 되었다. 책은 첫 장부터 흥미진진했다. 가난하고 허름한 집안의 첫째 푸실이와 어머니, 남동생 귀손이, 그리고 언제 죽을지 몰라 이름마저 지어주지 않은 막내 아기. 먹을 것은 언제나 귀한 아들 귀손이의 차지다. 이 이야기는 가난과 차별과 싸우다 끝내 그 벽을 극복하는 이야기, 바로 담이 있으면 그 앞에 멈춰서 굴복하는 게 아니라 바로 담을 넘는 이야기이다.


푸실이는 우연히 산에 놀러 갔다가 <여군자전>이란 책을 가져오게 된다. 가난한 하층민으로서 글을 깨우친 적도 없고 더더구나 여자이기에 더욱 차별받던 푸실이는 산에서 만난 효진 아가씨의 조언으로 글을 배우기 시작한다. 글을 배우고 <여군자전>이란 책을 통째로 암기해버린 푸실이. 비록 아버지가 책을 불태워버리지만 이미 머릿속에 생생히 남아있어 온 몸으로 체득해버린 후였다.


“군자는 학식과 덕이 높은 사람을 말한다. 그러니 군자는 학식과 덕이 높다면 사내든 여인이든 다 쓸 수 있는 말이지. 헌데 우리 조선에서는 여인에게 쓰지 않는다.”
“여군자”
푸실이는 가만가만 입속말로 되뇌었다.
“헌데 이 책은 제목을 여군자전이라 하였구나.” 본문 34쪽

<여군자전> 책의 첫 장에는 ‘너는 어찌 살 것이냐. 여군자가 물었다.’라고 쓰여 있다고 한다. 푸실이는 이 물음에 삶으로서 보여주었다. 죽어가는 아기를 살리기 위해 가족들을 벌주려고 하는 양반 대감에 맞서 당당히 목소리를 높였다. <여군자전> 책에서 읽은 진정한 군자의 삶을 양반 대감에게 설득할 수 있었다.


작가는 말한다. 남녀차별, 계급 차별이 있던 조선시대만큼이나 현대의 우리 사회도 많은 차별과 혐오가 만연하다고. 이제는 그러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행복한 세상을 꿈꾸며 이 글을 썼다고 말이다.

“나는 네 어머니가 바꾸지 못할 일에 왜 그리 애를 쓰는지 알 수 없었다. 하지만 이 아이가 아버님께 참군자에 대해 말하는 것을 보고 알았다. 아무것도 바꾸지 못한 것이 아니었다. 당장 나도 바뀌고, 이 아이도 바뀌지 않았느냐?”
선비가 아가씨에게 물었다. 아가씨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네, 저도 문이 막히면 담을 넘으라는 이 아이의 말에 많은 생각을 했습니다.” 본문 150쪽

언젠가 읽은 장강명의 <한국이 싫어서>라는 책에 보면 이런 대목이 나온다.

한국에서는 수도권 대학 나온 애들은 지방대 나온 애들 대접 안 해 주고, 인서울대학 나온 애들은 수도권 대학 취급 안 해 주고, SKY 나온 애들은 인서울을, 서울대 나온 애들은 연고대를 무시하잖아. 그러니까 지방대 나온 애들, 수도권 나온 애들, 인서울 나온 애들, 연고대 나온 애들이 다 재수를 하든지 한국을 떠나고 싶어 하지. 아마 서울대 안에서는 법대가 농대 무시하고 과학고 출신이 일반고 출신 무시하고 그러겠지. 본문 186쪽


끊임없이 무시와 차별의 도미노를 견디며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 코로나 19로 민심이 흉흉한 요즈음 얼마 전에 들려온 미국 증오 범죄로 인한 총기 사고는 다시 한번 충격과 슬픔을 금치 못하게 한다.


‘그럼에도 우리는 살아가야 한다’라고 이 동화는 말해주는 거 아닐까? 굳게 닫힌 문 앞에 좌절하지 말고, 차별과 배척, 혐오와 싸우고, 기어코 담을 넘으라고. 포기하지 말라고 그렇게 내 등을 두드리며 응원해주고 있는 것만 같다. “어떻게 살 것인가.” 그 물음을 가슴속에 간직하며 나 또한 푸실이처럼 당당하게, 그렇게 생을 살아가야겠다.


동화 속에서 <여군자전>이 푸실이와 그 주변 사람들을 변화시킨 것처럼 이 창작동화 <담을 넘은 아이>는 이 책을 읽은 독자를 변화시킬 것이고 결국 세상을 바꾸는 데 힘을 보탤 것이다. 그러고 보면 ‘불가능이란 없다’라는 말이 딱 들어맞는다. 포기하고 싶고 주저하고 싶을 때 이 동화 <담을 넘는 아이>를 읽어보기를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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