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매에 걸려도 변함없는 사랑

에밀 아자르의 자기 앞의 생을 읽고

by 루비


로자 아줌마는요. 세상에서 제일 못생겼구요. 내가 아는 사람 중에 가장 불행한 사람이에요. 다행히 내가 같이 지내면서 돌봐주고 있어요. 아무도 거들떠보려 하지 않으니까요. 왜 세상에는 못생기고 가난하고 늙은데다가 병까지 든 사람이 있는가하면 그런 나쁜 것은 하나도 가지지 않은 사람이 있는지 모르겠어요. 너무 불공평하잖아요.

사회 양극화는 갈수록 심해지고 그와 함께 각종 범죄, 혐오, 차별 현상도 사회 전반에 짙게 퍼진다. 이런 세상에서 가장 더러운 곳, 가장 가난한 곳, 가장 낮은 곳에 있는 자들의 삶은 더더욱 고통스럽고 힘들 수밖에 없다. 과연 그들에게도 삶을 살아갈 이유가 있을까라는 그런 생각이 들 정도로 생은 비참하고 힘들다. 그런데 이 소설 <자기 앞의 생>을 읽으면 그러한 생각은 어느새 삶이란 누구에게나 살아갈 가치가 있는 것, 슬픔도 고통도 아름다운 것이라는 생각으로 변하게 된다. 설사 죽을 것처럼 고통스럽고 힘들고 어렵다해도 사람은 서로 사랑하며 고통을 나누며 함께 살아갈 필요가 있다는 것이란 생각이 조금씩 스며들게 된다.


흔히 사람들은 가난하고 힘이 없으면 가까이 해서는 안 될 존재, 거리를 둬야 할 존재로 규정하고 배척한다. 그런데 이 소설의 주인공 모모는 그러한 삶 속에서도 강인한 생명력으로 진한 사랑을 보여준다. 감수성 많고 예민한 존재의 또 다른 존재를 향한 사랑은 감성이 메마른 독자들에게 가슴 깊은 감동으로 돌아온다. 창녀의 아들로 버려져 어머니도 아버지도 누군지 모르는 모모. 그런 모모에게 너무나도 소중했던 500프랑 받고 팔아버린 푸들 쉬페르.


나는 나의 내부에 넘칠 듯 쌓여가고 있던 그 무언가를 쉬페르에게 쏟아부었다. 그 녀석이 없었더라면 나는 무슨 짓을 저질렀을지 모른다. 그때는 정말 위기 상황이었다. 녀석이 없었다면 나는 어쩌면 콩밥 먹는 신세가 되었을지도 모른다. 녀석을 산책시킬 때면 내가 뭐라도 된 기분이었다. 왜냐하면 녀석에게는 내가 세상의 전부였으니까. 나는 녀석을 너무 사랑한 나머지 남에게 줘버리기까지 했다.


사랑하기에 500프랑을 받고 팔아버렸지만 그 돈을 하수구에 쳐넣은 모모의 마지막 자존심과 사랑에 꺼이꺼이 울게 된다. 함께하는 사랑이 아닌 더 나은 삶을 선물해주고 싶어서 떠나보내는 마음, 그 마음이 얼마나 아릿했을까, 얼마나 아팠으면 바닥에 주저앉아 송아지처럼 울었을까 말이다.


그런 그에게 또다른 상실이 찾아온다. 바로 그 누구보다도 더 많이, 자신을 버린 부모보다도 더 사랑하는 로자 아줌마의 치매로 모모는 깊은 슬픔에 빠진다. 그리고 맹세한다. 어떠한 순간에도 로자 아줌마를 떠나기 않겠다고. 버리지 않겠다고.


“하밀 할아버지, 사람은 사랑할 사람 없이도 살 수 있나요?”
...
“그래, 그래, 정말이란다. 나도 젊었을 때는 누군가를 사랑했었지. 그래, 네 말이 맞다, 우리.....”
“모하메드요, 빅토르가 아니구요.”
“그래, 그래, 우리 모하메드야, 나도 젊었을 때는 누군가를 사랑했어. 한 여자를 사랑했지. 그 여자 이름이......”
그는 입을 다물었다. 깜짝 놀라는 것 같았다.
“......기억나지 않는구나.”

빅토르 위고를 가까이 하는 하밀 할아버지는 모모의 질문에 사람은 사랑없이는 살 수 없다고 말한다. 모모가 어릴 때 같은 질문을 했을 때는 자신의 첫사랑 이름을 기억해냈지만 로자 아줌마의 병이 악화됐을 때 모모가 다시 묻자 어느새 늙어버린 하밀 할아버지는 그만 첫사랑의 이름을 잊고 만다. 모모의 가족과도 같은 사랑 로자 아줌마의 죽음과 하밀 할아버지가 잊어버린 첫사랑의 이름. 그렇게 소중한 사랑이 어느새 누군가에게서 잊혀지고 소멸되기도 하는 것이다. 하지만 기억에서는 지워졌지만 오래도록 남아있던 순간의 흔적들은 사람들의 가슴속에서 영원히 살아 숨쉬는 것이 바로 사랑이 아닌가 싶다.


로자 아줌마의 죽음. 부패해가는 시체 옆을 지키며 어떻게든 로자 아줌마를 필사적으로 지켜내려는 모모. 치매에 걸려 아무렇게나 똥오줌을 배설하며 죽어간 로자아줌마. 상상만해도 더럽고 악취나고 끔찍한, 소름끼치는 그 상황에서 모모에게는 오직 로자 아줌마에 대한 사랑밖에 없었다. 두려움, 무서움, 더러움이라는 감정은 보이지 않고 오직 가슴 깊은 곳에서 우러나는 로자 아줌마에 대한 사랑하는 마음밖에는 없었던. 로자 아줌마를 언제까지고 아름다웠던 처녀적처럼 예쁘게 꾸며주고 싶은 마음뿐이었던 모모.


이 소설 <자기 앞의 생>은 삶과 사랑에 관한 이야기다. 창녀, 트렌스젠더, 사생아, 가난한 자 등 가장 약하고 낮은 사람들의 자리에서 사랑을 꽃피우는 에밀 아자르, 로맹 가리의 필력으로 인해 묵직한 감동으로 다가오고 이 책이 고전의 반열에 오를 수 있는 것이다. 이 소설을 읽는다면 세상에 만연한 차별과 혐오를 줄이고 어디에서든 누구라도 사랑하며 살 수 있음을, 누구에게나 사랑은 아름다운 것임을 모두 이해할 수 있지 않을까라고 생각한다. 삶은... 곧 사랑이니깐.




keyword
작가의 이전글떳떳한 죽음을 위하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