앤은 시험이 코앞인 상황에서도, 친구들이 책에 파묻혀 있는 사이 밤나무 가지에 움트는 꽃눈과 거리 끝에 피어오르는 푸른 안개를 바라보며 감탄했어요. 그 모습을 보며 저는 ‘삶을 음미할 줄 아는 여유’란 이런 게 아닐까 싶었죠.
그 후로 저 역시 바쁘게만 흘러가던 일상 속에서 잠시 멈춰 서는 법을 배우기 시작했습니다.
그때 떠올렸던 시가 있어요. 바로 윌리엄 헨리 데이비스의 「멈춰 서서 바라볼 수 없다면」이라는 시입니다.
우리는 너무도 바쁘게 살고 있어요.
하루가 어떻게 지나갔는지도 모른 채, 어느덧 한 해의 끝자락에 도달합니다.
하지만 그 하루하루를 앤처럼 꽃눈을 바라보고, 들가의 초록 잎들을 살피며, 바람 내음을 맡으며 살아간다면, 지나간 시간이 덜 아쉽지 않을까요?
그 시간들이 모두 마음속에 따뜻한 추억으로 아로새겨질 테니까요. 6학년 담임을 맡았던 어느 날, 5층 교실 창문으로 불어오는 산들바람을 아이들과 함께 느껴 보자고 말한 적이 있었어요. 그러자 아이들은 저를 이상한 사람 보듯 바라보며 웅성거렸죠. 그 모습이 왠지 모르게 씁쓸하게 다가왔어요.
시인 윤동주가 시집 제목을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라고 붙였던 까닭은, 잃어버린 하늘과 바람, 별, 그리고 ‘시’가 주는 위로를 되찾고자 했기 때문일 텐데요.
우리 아이들에겐 아직 그 풍경조차 익숙하지 않은 게 아닐까요?
요즘은 경쟁과 속도에 휩쓸려 사는 세상입니다.
하지만 그럴수록 앤처럼 조금은 천천히, 멈춰 서서 삶을 바라볼 수 있는 여유가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그런 여유가 생기면, 우리는 남을 끌어내리는 대신 배려하고, 질투보단 함께 기뻐하는 삶을 살 수 있지 않을까요?
여유는 마음을 따뜻하게 하는 힘이니까요.
얼마 전 뉴스에 실린 '영재 발굴단' 출신 백강현 학생의 자퇴 소식은 많은 이들에게 안타까움을 안겼습니다.
진실이 무엇이든, 저는 학창 시절 치열한 경쟁 속에서 친구와도 점수를 놓고 겨루며 피로해졌던 날들을 떠올렸어요.
공부를 잘하는 친구와 거리를 두거나, 반대로 경쟁자로 삼아야 했던 날들….
그런 분위기 속에서 아이들이 건강한 호기심과 우정을 유지하기란 참 어려운 일이죠.
아마 이 모든 것은 시스템의 문제일지도 모르겠습니다.
학생들이 어릴 때부터 나눔과 협력, 연대의 가치를 배우도록 돕는 교육,
그런 제도적 뒷받침이 절실하다고 생각해요.
학생 자치회 활동, 자율 동아리, 유초 연합 활동, 체험 학습 같은 것들이 아이들의 삶에 숨통을 틔워줄 수 있어요.
그 안에서 친구와 협동하며 웃고, 작은 성취에 기뻐하며, 나눔의 기쁨을 배우게 될 테니까요.
봄에 피는 라일락, 여름에 피는 장미꽃을 바라볼 여유가 있다면, 아이들은 더 따뜻한 눈빛으로 친구를 바라볼 수 있지 않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