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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화 <긴긴밤> - 네 몫까지 살아갈게

by 루비

Cover Image by Freepi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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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밤은 너무 길 때가 있었다. 이 동화의 제목 <긴긴밤>처럼. 외로움이 뼈에 사무치던 순간, 하염없이 울고 싶었던 순간, 앞날이 걱정되어 두려움에 떨던 그 밤은...

그럼에도 아직 인생이란 게 무엇인지 잘 모르던 시기였던 것 같다. 그 시절은... 그저 막연하고 막막하게도 내 삶은 왜 이리 어렵고 힘들까, 정말 나만 이리도 고통스러운 걸까? 하며 절망적인 울음을 흘렸었던 것 같다...

불혹이 얼마 남지 않은 나이가 되니 조금씩 인생이란 게 선명해지는 것 같다. 삶이란 건, 원래 잠깐의 반짝이는 순간과 끝없는 고통과 지루함, 슬픔이 이어지는 나날이라는 걸. 우리는 그 잠깐의 반짝임을 위해 그 길고도 긴 밤을 견뎌낸다는 걸. 어떤 이는 그렇게 내일에 대한 기대로 또 하루를 견뎌내고 어떤 이는 더는 가질 수 없는 희망 앞에 스스로 생을 포기하기도 한다는 걸 말이다.


“죽는 것보다 무서운 것도 있어. 이제 나는 뿔이 간질간질할 때 그 기분을 나눌 코뿔소가 없어. 너는 매일 아침 눈을 뜰 때마다 오늘은 바다를 찾을 수 있을지, 다른 펭귄들을 만날 수 있을지 기대가 되겠지만 나는 그런 기대 없이 매일 아침 눈을 떠.” / 본문 87쪽

이 책을 세상을 떠난 동생에게 선물해 주었다면, 살릴 수 있었을까? 자책하는 마음으로 괴로워진다. 동화 <긴긴밤>의 주인공 노든은 세상에 하나 남은 흰바위코뿔소다. 노든과 함께 바다를 향해 여행한 펭귄은 어쩌다 노든이 혼자가 됐는지 이야기를 듣는다. 인간들의 횡포로 사랑하는 아내와 딸, 친구까지 잃게 된 노든이 복수심에 불타있다는 것도. 그런 노든에게 펭귄은 소중한 존재였다. 세상이 아무리 무너져 내리고 외로워도 누군가 곁에서 지지해 준다면 인생을 헤쳐나갈 수 있지 않을까란 생각이 드는 부분이었다. 난 동생에게 그런 존재가 되어주었나라고 생각하니 너무 마음이 아린다.

노든은 나의 유일한 가족이자 친구였다. 우리는 한시도 떨어진 적이 없었다. 내가 바라보는 풍경을 노든도 보았고, 내가 있는 풍경 속에는 언제나 노든이 있었다. 나는 커다란 노든이 곁에 있어 주는 것이 좋았다. 노든 옆에서는 마음이 놓였다. /본문 83쪽

어쩌면 노든이 펭귄에게 한 말처럼, 나는 동생 대신 살아남은 건지도 몰랐다. 내가 동생 몫까지 최선을 다해 살아야 하는 것이었다. 모든 순간을 되돌릴 수만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고 수없이 되뇌었다.

“네가 어떤 기분일이 알아. 내가 그렇게 살아왔거든. 나는 항상 남겨지는 쪽이었지. 내가 바보 같지만 않았어도, 용감하게 가족을 지킨 내 아내를 구할 수 있었을지 몰라. 내가 다리를 절지만 않았어도, 마음씨 고운 앙가부를 살릴 수 있었을지도 몰라. 내가 조금만 더 일찍 알아차렸으면, 유쾌한 치쿠는 죽지 않았을지도 몰라. 이런 생각들이 항상 나를 괴롭게 해. 차라리 살아남은 게 내가 아니었으면, 하고 말이야.”
...
“그런데 포기할 수가 없어. 왜냐면 그들 덕분에 살아남은 거잖아. 그들의 몫까지 살아야 하는 거잖아. 그러니까 안간힘을 써서, 죽을힘을 다해서 살아남아야 해.” /본문 81쪽

이렇게 슬픈 인생에도 분명 기적 같은 순간은 있기 마련이다. 치쿠와 윔보가 펭귄 알을 품어준 것, 치쿠와 노든이 만나 함께 탈출한 것, 치쿠가 끝까지 알을 품어준 것, 치쿠가 죽고 나서 노든이 펭귄 곁에 함께 있어준 순간들... 우리 인생도 마찬가지다. 삶에는 비극도 분명 있지만 반대편에는 항상 기적이 있었다. 아무리 슬프고 절망적이어도 콘크리트를 뚫고 나온 새싹처럼 기적의 순간은 항상 존재했다.

슬픈 면만을 바라보면 하염없이 슬퍼지고 울적해지는 게 인생인 것 같다. 하지만 노든과 펭귄이 그동안 자신들을 해치려고 했던 인간들이 아닌 좋은 인간들도 만났던 것처럼, 세상에는 분명 어둠의 저편 밝은 면도 존재하기 마련이다. 희망이 없으면 모든 것이 무너져 내리지만 내일에 대한 희망과 기대가 있으면 살아갈 수 있듯이 우리는 계속해서 좋은 사람들과 좋은 일들을 기대하며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게 아닐까. 어쩌면 이러한 동화를 읽고 감동을 받고 인생을 되돌아보는 것도 하나의 희망이자 기적일 수 있다. 슬프고 아린 인생이지만, 그 너머의 기쁨과 희망을 바라보며 또 하루를 견뎌내야겠다. 펭귄이 결국엔 그토록 고대하던 바다를 만난 것처럼!


나에게 소중한 사람들을 떠올리며 그렇게 또 하루하루를 살아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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