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방학 동안 백석 시집을 읽었다. 초판본, <사슴>을 읽으려다가 방언과 고어도 많고 이해하기 어려워서 해석이 달린 정본으로 읽었다. 참 신기한 게 그렇게 백석시집을 언젠가 다시 또 읽어야지 마음먹고 있었는데 이번에 집근처 도서관에서 백석 시인을 주제로 시울림 콘서트를 개최했다. 교육감 및 각 지역 도서관장이 참석하는 등 큰 행사였다. 나도 공문으로 받아들고 서둘러 신청했다.
시울림 콘서트의 오프닝은 피아노, 첼로, 플롯 등 클래식 트리오의 <마중>이라는 곡으로 시작되었다. 제목처럼 정말 관객들을 온 마음으로 마중하는 듯 한 선율이 전해졌다. 영화평론가와 문학 평론가의 진행은 콘서트의 이해를 도왔다. 마치 애피타이저를 먹는 것처럼, 그렇게 첫 시작은 부드러우면서도 시적 감수성을 일깨워주었다.
사제지간, 외할머니와 손녀가 함께하는 낭송은 정감이 넘쳤다. 이 낭송을 보면서 나도 언젠가 한 번 해보고 싶다는 마음이 꿈틀거렸다. 하지만 무엇보다 내가 가장 좋았던 건, 이 시울림 콘서트의 명칭이자 백석 시인의 대표작인 <흰 바람벽이 있어>를 낭송할 때였다. 백석 시인하면 떠오르는 <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보다 더 좋았다.
바로 다음 시구 때문이다.
하늘이 이 세상을 내일 적에 그가 가장 귀해하고 사랑하는 것들은 모두
가난하고 외롭고 높고 쓸쓸하니 그리고 언제나 넘치는 사랑과 슬픔 속에 살도록 만드신 것이다
겨울방학에 읽으면서도 오래도록 가슴에 남았던 시구로 다시 한 번 큰 감동을 느꼈다. <강아지똥>의 권정생도 그랬고, <미운 아기 오리>의 안데르센도 그랬듯이 하늘이 사랑하는 자들은 가난하고 외롭고 높고 쓸쓸한 게 아닐까, 천재 시인인 백석은 그걸 꿰뚫은 건 아닐까 그런 생각이 들었다.
물론 내가 가난하거나 비루한 처지는 아니지만, 주변의 쓸쓸하고 외로웠던 이들을 떠올려본다. 어쩌면 그들은 하늘이 너무 사랑해서 스스로 고독으로 걸어간 걸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모든 하늘의 사랑을 받는 자들은 고독한 운명일지도 모르겠다. <흰 바람벽이 있어>의 마지막 시구, '프랑시스 잼'과 도연명과 '라이너 마리아 릴케'가 그러하듯이처럼. 참 묘하게도 이 시구의 ‘프랑시스 잠’과 ‘라이너 마리아 릴케’는 백석 시인을 사랑한 윤동주의 시, <별 헤는 밤>에도 나온다.
백석 시인의 연인이었던 자야는 시가 1000억 원가량의 대원각을 법정 스님에게 희사했다고 한다. 1000억이 아깝지 않냐는 질문에 백석 시인의 시 한 줄만도 못하다고 답변했다고 한다.
이날 임종식 교육감님은 작년 수능 필적 시인 양광모 시인의 <가장 넓은 길>을 암송하며 무대를 꾸며주었다.
가장 넓은 길
양광모
살다 보면
길이 보이지 않을 때가 있다.
원망하지 말고 기다려라.
눈에 덮였다고
길이 없어진 것이 아니요,
어둠에 묻혔다고
길이 사라진 것도 아니다.
묵묵히 빗자루를 들고
눈을 치우다 보면
새벽과 함께
길이 나타날 것이다.
가장 넓은 길은
언제나 내 마음속에 있다
평이한 시어로 삶의 철학이 담긴 시라는 생각이 든다.
오늘의 이 시울림 콘서트는 차가운 눈 덮인 인생길을 쓸어준 또 하나의 기회이자 마음속 길이었다. 슬프고도 아름다운 시간이었다.
https://youtu.be/J1pwpDRrHi8?si=2BmXATJ5_kF5dJKc