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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riter‘s Block

by 루비

Cover Image by Freepik



영재학급 강사 심층 면접 때, 면접관이 내게 질문했다.

“학생들이 글이 안 써져서 힘들다고 하면 어떻게 하시겠어요?”


“그럼 잠시 멈춰서 휴식 시간을 가져보라고 할 것 같아요. 작가들도 글이 안 써지면 잠시 여행을 다녀오고 다른 경험으로 충만히 채운 뒤 다시 영감을 얻기도 한다고 들었어요. 글이란 건 오래 묵혀두면 더 잘 써질 때도 있고요.”

이렇게 말했던 듯하다.


나도 어떤 글은 쓰다가 막힐 때가 있다. 그럼 쓴 글을 그대로 복사해서 내 블로그의 비공개 ‘습작’ 카테고리에 저장해 둔다. 언젠가 다시 써지겠지 하며 막연한 기대감을 품은 채.

토요일 수업을 마치고 한 학생이 내게 글이 안 써져서 고민이라고 다가왔다. 나는 사실 내가 제대로 대답을 못해줄까 봐 긴장되는 마음으로 어설픈 조언을 건넸다.

“선생님. 어떻게 다음 이야기를 써야 할지 잘 모르겠어요. 이야기가 안 써져요.”

“쓰고 싶은 주제는 뭐야?”

“성장소설이요.”

“그럼 처음 할머니 댁에 가는 걸 귀찮아하고 짜증 냈잖아. 그 마음이 변하고 성숙해 가는 걸 쓰면 성장소설이 되지 않을까? 다락방에서 발견한 할머니의 일기를 보고 할머니에 대해 더 애틋한 마음을 갖는다던지. 아니면 숨겨진 과거의 비밀이 드러나면서 뭔가 아련한 마음을 갖는다던지.”

“네.”


나는 흡족한 표정으로 또 궁금한 거 있으면 언제든지 물어봐하며 인사를 건넸다. 그런데 왜 지금은 한 가지 아쉬움이 드는 걸까? 정작 중요한 말을 해주지 않은 것 같다.


“선생님도 그래. 잘 안 써지고 힘들 때가 있어. 작가라면 누구나 그럴 거야. Writer’s block이라고도 하지. 너무나 당연한 거니깐 잠시 쉬면서 다른 걸 하다 보면 다시 아이디어가 떠오를 거야.”라고 학생의 마음에 공감해주지 못한 것이 후회된다.


그 아이를 위해 동화를 썼다.



*영감의 렛잇비

영감이의 손은 빠르게 타자기를 두드린다. 영감이의 머릿속엔 샘이 있어서 쉴 새 없이 이야기가 떠오른다. 타타타타 빠르게 타자기가 움직이는 소리가 들린다. 다섯 문단을 쓰고 마침표를 찍었다. 그런데 커서가 깜박깜박 움직이지만, 더 이상 어떤 글도 써지지 않았다. 아무 글도 써지지 않았다. 머릿속이 마구 엉킨 실타래 같았다.


무엇을 해야 할지 알 수 없었다. 아무 영감이 떠오르질 않았다. 그때 영감이는 노래 한 곡이 떠올랐다. 비틀스의 ‘Let it be’. 폴 매카트니가 꿈에서 어머니의 말씀을 듣고 작곡했다던 그 곡.


영감이는 문득 나도 꿈에서 이야기의 소재를 찾을 수 있을지 않을까 기대했다. 그러기 위해선 시간이 필요했다. 꿈을 꾸려면 잠에 들어야 했고 잠에 들려면 낮 시간 동안에 활발히 움직여야 했다. 차라리 내가 좋아하는 것들을 하면서 잠시 쉬어볼까. 영감이는 유튜브를 켜고 클래식 음악을 듣기 시작했다. 쇼팽의 즉흥환상곡. 2015년 쇼팽콩쿠르에서 우승을 차지한 조성진의 연주를 듣는다.(실제로는 다른 피아니스트의 연주를 들었어요) 나도 피아니스트 조성진처럼 국제무대에 설 수 있을까?” 내가 쓴 소설이 세계 여러 나라에 번역되고 큰 문학상을 받는 거야.


그러자 막혔던 머릿속이 고속도로처럼 다시 뻥 뚫린 것 같았다. 현란하게 움직이는 피아노 건반 위의 손가락처럼 영감이의 머릿속도 새로운 음률과 하모니, 영감으로 샘솟았다.


영감이는 다시 키보드 앞에 앉아 한 자 한 자 글을 써 내려가기 시작했다. 클래식이 영감이에게 마법을 부린 것 같았다. 또 글을 쓰다 막히면 다음엔 그림을 볼까? 아니면 영화를 볼까? 애니메이션을 볼까?


영감이는 더 이상 글쓰기가 힘겹지 않을 것 같았다. 그냥 세상 속으로 풍덩 뛰어들면 되었다. 조급한 마음만 버리면 되었다. 천천히 천천히. 폴 매카트니가 작곡한 곡 Let it be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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