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와 나의 판타지 1화

2004년 봄, 낡은 교실에서

by 루비

2004년 봄, 경기도 변두리의 낡은 교실에서 나는 늘 눈에 띄지 않으려 애쓰고 있었다

.

“또 멍 때리냐?”


성훈이의 낮은 속삭임이 귀에 스며들자 나는 그제야 정신을 차렸다. 칠판 위에 분필이 부서지는 소리가 아득하게 들려왔다. 한참 동안 멍하니 생각에 잠겼던 나는 그만 선생님의 말씀을 놓치고 말았다. 아뿔싸, 우리 둘의 모습을 보신 선생님이 놓치지 않고 나를 일으켜 세우신다.


“강연우. 내가 방금 무슨 얘기를 했지?”

“네…? 그…. 그건….”

“뒤에 가서 서 있어라.”


성훈이는 뒤돌아보며 키득키득 웃는다. 그때 혜윤이의 눈빛이 차갑게 나를 꿰뚫는다. 혜윤이는 항상 저런 식이다. 나만 보면 눈을 흘기지 못해서 안달이다. 처음부터 그런 건 아니었다. 혜윤이는 3월 달 초만 해도 나에게 친해지자고 말했었다.


“나는 너랑 있으면 마음이 편해지는 것 같아. 사실 소은이는 뭔 생각 하는지도 모르겠고 답답해.”


난 혜윤이의 말에 그래도 소은이를 험담하는 건 아니라는 생각에 맞장구치지도 호응하지도 않았을 뿐인데…. 그 이후로 저리도 나를 흘겨보지 않고는 못 배기나 보다. 그래서일까. 그 이후로 혜윤이뿐만 아니라 다른 친구들도 은근히 나를 따돌리는 분위기가 형성됐다. 그럴수록, 나는 내가 좋아하는 소설을 끼고 학업에만 열중할 뿐….

오늘 자습 시간에 나는 도스토옙스키의 <죄와 벌>을 읽고 있었다. 그때 담임선생님께서 와서 이런 책도 읽느냐며 놀라워했다. 엣헴. 뭐. 저도 잘은 모르지만, 그냥 읽는 중이에요.라고 말하고 싶었지만, 꾹 참았다. 어쨌든 살인과 구원이란 주제에 끌린 건 나도 좀 놀라우니깐…. 왜 이런 심오한 생각들을 하는 걸까? 난….


아무튼 관심 가져주는 선생님이 좋아서 수업을 더 자주 듣고 싶은데, 선생님은 A반, 나는 C반이다. 1학기에 수학 시험을 망쳐서 C반으로 가게 됐다. 매번 교실 이동하는 게 여간 귀찮은 게 아니다. 그나마 교실에서는 자리가 지정되어 있어서 괜찮은데 교실을 이동하면 자유롭게 앉기 때문에 누구와 앉을지 심하게 걱정된다. 수업 내용보다 누구와 앉을지가 더 걱정이라니…. 그럴 때마다 내 배는 살살 아파져 온다. 이런 내 맘을 아는지, 혼자 자리에 앉아있는데 성훈이가 내 옆에 와서 앉는다.

“여기 앉아도 되지?”

“음…. 응.”


성훈이도 C반. 우수한 성적으로 입학했다더니 어쩌다 C반으로 오게 된 걸까? 개인 사정은 말한 적 없어서 잘은 모른다. 그런데 가끔 소풍 갈 때 보면 날티나게 입고 오는 것이 조금 나랑은 결이 다른 것 같다. 나는 좀 범생이 스타일이 좋은데….

이런 생각을 하는데….

“야, 나 숙제 좀 보여줘….”

“그…. 그건 안돼….”

“왜?”

“숙제는 스스로 하는 거잖아. 초등학교 때 안 배웠어?”

“야. 넌 참 융통성도 없구나. 숙제는 그냥 선생님이 열심히 가르치는 척 흉내 내는 것일 뿐이야.”

“그래도 안 돼.”

“야, 됐다 됐어.”


뭐지? 내가 잘못한 것도 없는데 왜 잘못한 사람이 되어있는 기분 같은…. 아 진짜 윤성훈. 재수 없어. 그냥 옆에 자리 없다고 할걸….


결국 성훈이는 소은이의 숙제를 베끼고 아무렇지 않은 척 검사를 받았다. 선생님은 감쪽같이 속았다.


문득 초등학교 시절이 떠올랐다. 초등학생 때도 반 애들은 너도나도 숙제를 베끼곤 했다. 하루는 담임선생님이 눈치채시곤 모두를 일으켜 세웠다. 그리고 정말 아는지 모르는지 한 명 한 명 문제를 물어보셨다.


“서 있어.”

“서 있어.”

“서 있어.”


라는 불호령 다음에 드디어 내 차례. 나는 선생님이 가르쳐주신 대로 대답했고 자리에 앉을 수 있었다. 그때부터였는가. 아 나도 선생님이 되고 싶다는 막연한 꿈을 꾼 건. 그런데 사실 지금은…. 잘 모르겠다…. 하고 싶은 게 너무 많은데 학교에서도 선생님도 친구들도 오로지 학벌이 제일 중요하다고만 말한다. 대학입시를 잘 쳐야 한다고 치열하게 공부해야 한다고 말한다.

그래서 그만 담임선생님이 “꿈은 뭐니?”라는 질문에 “잘 모르겠어요.”라고 대답했다. 그냥 너무 혼란스러워서 그렇게 대답했을 뿐인데…. 선생님은 혀를 끌끌 차셨다. 난 이렇게 항변하고 싶었다. “학교에서는 시험만 잘 치면 장땡이라면서요. 내 꿈을 탐색할 기회를 주셨나요? 온통 영어, 수학, 시험, 성적, 점수. 그게 전부잖아요.”라고.

그나마 나에겐 학교에서 국어 시간과 음악 시간이 있어서 숨통이 트였다. 국어 시간에 읽는 문학들이 나를 상상의 나래로 이끌었고, 음악 시간엔 다양한 악기와 여러 클래식을 비롯한 하모니의 세계로 이끌었다. 그런데 이번 고1 음악 시간은 완전히 망했다. 이건 정말 절망이었다. 그때 옆에서 성훈이가 무심히 연필을 돌리며 자꾸 쿡쿡 찌르고 있었다. 그런데 왜 자꾸 난 성훈이가 싫으면서도 마음 한구석이 신경 쓰이는 걸까? 내게 국어와 음악이 있다면 그다음은 성훈이인 것만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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