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와 나의 판타지 2화

집을 잃은 민달팽이

by 루비

혜윤이는 소은이, 민지, 예은이와 같이 다녔다. 혜윤이 못지않게 민지도 나를 싫어하는 티를 팍팍 냈다. 예은이는 생각 없이 휘둘리는 스타일이고 소은이는 혜윤이 말대로 뭔 생각하는지를 당최 알기 힘들었다. 그럼에도 혜윤이는 소은이와 단짝처럼 지냈다. 주로 소은이의 부유함을 마치 자신의 일인 양 과시하는 낙으로.


민지는 처음엔 세상에 둘도 없는 단짝처럼 나를 생각하더니, 성훈이가 자꾸만 나에게 말을 거는 걸 못마땅해했다. 그러면서 성훈이 험담을 나에게 정말 많이 했다. 걔 수석으로 입학했다더니 그렇게 안 보이지 않냐? 다른 반 남자애들이 엄청 욕하더라 뭐 이런 이야기를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으려니 나도 점차 성훈이에 대해 색안경을 끼게 되었다. 처음엔 좀 흔들리는 마음이 있었는데... 아무래도 질이 좋지 않은 아이라는 느낌이 강했다.


우리 학교는 급식이 정말 맛이 없기로 유명하다. 점심은 그런대로 어쩔 수 없이 먹지만 석식은 매점에 가서 빵을 사 먹거나 라면을 먹거나 아니면 교문 밖으로 나가서 분식집에 간다. 그날도 석식은 나가서 먹을 생각이었다. 그런데 민지가 오늘은 성훈이와 같이 먹자고 하는 것이다. 나는 좀 의아했다. 민지는 성훈이 험담을 그리하면서, 나를 싫어하면서 왜 같이 먹자는 거지... 난 어떻게 거절해야 할까 고민하다가 일단 교문까지는 같이 가기로 마음먹었다. 그리고 교문에서 Say goodbye~하기로.

성공! 성훈이의 당황한 표정. 흥~ 나는 처음부터 건들거리는 네가 맘에 안 들었어. 민지랑 둘이 맛있게 먹으렴. 하고 나는 종종걸음으로 내가 자주 가는 서점으로 향했다. 서점 아저씨는 나를 반갑게 맞아주었다. 따스한 책들은 나를 기분 좋게 한다.


“요즘 인기 있는 책은 어떤 거예요?”

“요즘 귀여니의 인터넷 소설이 인기가 많지. <늑대의 유혹>이라고 한 번 읽어볼래?”

“오. 그런데 이거 인터넷 용어가 그대로 있네요?”

“응. 그래서 더 센세이션 하단다. 한 번 읽어보면 푹 빠질 거야. 요즘 10대 사이에서 화제야.”


음... 고전소설만 보다가 이런 소설은 좀 신기한데라고 생각하며 바로 구매를 했다. 학교 앞에 이런 서점이 있어서 좋다. 중학생 땐 학교 바로 앞에 도서관이 있더니, 고등학생 땐 학교 바로 앞에 서점이 있다니... 나는 아무래도 책과 인연이 깊은가 보다.


이런 생각을 하고 있는데...


‘꼬르륵’


아, 그러고 보니 저녁을 안 먹었지? 오늘은 주먹밥을 먹어야겠다. 주먹밥을 다 먹을 때까지 계속 내 생각은 내일은 또 누구와 저녁을 먹지 생각뿐이었다. 나는 왜 이렇게 인간관계가 서툴까? 불안한 마음이 밀려왔다. 아무래도 내일은 중학교 때 친구 세라한테 가봐야겠다. 세라는 착하다는 말을 듣는 나보다 더 착하고 순수한 친구다.

석식을 먹고 교실로 돌아오니 혜윤이, 소은이, 민지, 예은이, 성훈이가 서로 모여서 무언가 재미난 이야기를 하고 있다. 흠... 나도 끼고 싶은 마음이 없진 않으나 조금 내가 비굴해진 기분이다. 친구들은 처음엔 우리를 ‘강연우 패밀리’라고 불렀다. 그런데 어느새 나는 밀려나고 넷하고, 성훈이 모임이 된 건가? 그럼 이제 뭐라고 부르려나? 혜윤이 패밀리? 소은이 패밀리? 아니면 성훈이 패밀리? 나는 애꿎은 종이에 볼펜으로 계속 낙서만 해댔다. 어서 석식 시간이 끝났으면...


그런데 보람이가 자꾸 나를 보며 웃는다. 아직 서먹서먹한데 왜 자꾸 날 보며 웃지? 영 어색하다. 나는 마치 집을 잃은 민달팽이처럼 허허벌판에 홀로 기어가는 기분인데. 아 어떡하지? 보람이의 웃음이 내게 무슨 의미일까. 나를 놀리는 건가? 친해지고 싶은 건가? 아직은 잘 모르겠다. 다만, 오늘은 그 웃음이 내 마음을 조금 덜 외롭게 해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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