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와 나의 판타지 ③ - 왕자는 없다

by 루비

집에 와서 미니홈피에 접속했다. 내 미니홈피의 배경음악은 스위트박스의 Cinderella다. 그림 형제의 신데렐라는 너무 잔혹하고 샤를페로의 신데렐라는 어린 시절 읽던 소녀들의 로망이지만, 스위트박스의 신데렐라는 자신의 삶에서 벗어나고 싶은 간절한 외침이다. 이건 마치 나의 심정을 담은 곡이다.


대체 왕자님이 어디 있단 말이야? 나를 구원해 줄 왕자나 찾을 거면, 왜 고등학교에 와서 밤늦게까지 수학의 정석과 고전시가와 씨름을 하느냐 말이다. 참, 한심하지.


왕자를 자처하는 남자들은 겉멋 제대로 들었을 뿐이야. 그보단, 우리 자신으로 서는 게 낫지 않을까? 하녀의 남편은 하인이지만, 왕비의 남편은 왕이니깐. 내가 왕비가 되면 된다!


어, 그런데 방명록에 보람이가 글을 남겼다.


「연우야, 넌 오늘도 참 깜찍하더라.」


뭐지? 나랑 친해지고 싶은가. 어째, 난 좀 두렵다. 나와 결이 맞는 것 같진 않아서. 난 외로워하면서도 왜 이렇게 재는 게 많은 건지... 난 가끔 내가 다른 별에서 온 외계인이 아닐까 싶다. 나와 주파수가 맞는 친구를 찾는 게 어렵다. 그래도 답방은 가야겠지?

「고마워. 보람아. 우리 내일 학교에서 만나면 반갑게 인사하자.」

너무 싱거운가. 에잇. 몰라.


「너 오늘 좀 귀엽더라.」


지훈이는 나와 말도 몇 번 안 해봤는데 왜 저런 글을 남기지? 부담스럽다.


메신저에나 들어가 봐야겠다. 나는 네이트온에 로그인을 했다. 중학생 때까지만 해도 버디버디를 썼었는데 어느새 대세가 바뀌었다.


「아직까지 안 자고 뭐 해?」 성훈이에게 쪽지가 왔다.

「과제도 하고. 이것저것 쉬느라고.」 그래도 답은 보내야지.

「선생님들 진짜 너무 하지 않냐? 수행평가는 왜 그렇게 많고 공부할 건 왜 그리 많은지.」


나는 성훈이의 쪽지에 더 이상 답을 하지 않았다. 뭐라고 보내야 할지 모르겠다. 수행평가도 과제도 많은 건 사실인데, 공부할 것도 많고. 그게 우리의 운명인 걸 투정한다고 뭐가 달라지나.


대한민국의 고등학생들이 밤늦게까지 야간자율학습에 시달리고, 꼭두새벽부터 등교하고 학교 급식은 맛대가리 없고, 선생님들은 매일 군기나 잡고. 이거 누구나 다 아는 사실 아닌가? 그나마 난 장거리통학생이라고 친구들보다 30분 일찍 하교해서 여유로운 버스를 타고 집에 온다. 이럴 때 보면, 나도 은근 요령을 잘 부리는 것 같아. 하긴. 그러니깐 벼락치기로 여기까지 온 거겠지만... 한수이북의 명문고.


오늘은 시 한 편 쓰고 싶다.


<의자놀이>

우리는

어린 시절

선생님이 가르쳐준 대로

의자놀이를 했다.


음악에 맞춰

빙빙 돌다가

노래가 멈추면

재빨리 의자에 앉는 놀이


자리에 앉지 못하면

술래가 되고 벌칙을 한다.


놀이는 놀이일 뿐인데,

인생에서 의자놀이를 한다면,

의자를 못 차지하면,

그때도 술래가 되고 벌칙을 서면 되는 걸까?


대학입시표의 점수를 보면,

내가 앉을 의자가 있을지 두렵기만 하다.

의자를 뺏기는 아이들은 어떻게 되는 걸까?




휴. 머리가 터질 것 같다. 그나저나 내일은 또 누구와 쉬는 시간에 이야기를 하고 점심을 같이 먹을까? 맞다. 세라한테 연락해 본다는 걸 깜박했다. 내일 교실로 찾아가야지. 세라네 담임 선생님은 참 좋으신 것 같다. 우리 담임 선생님도 좋으시지만... 공교롭게도 두 분 다 수학 선생님이시네.


아, 잠이 안 온다. 아론 카터 노래나 듣다 자야지. I'm Gonna Miss You Forever!


띠리리링


아니 밤 12시에 누구야. 민준오빠?


“여보세요?”

“뭐 하니?”

“아니 지금이 대체 몇 시예요?”

“그게 무슨 상관이야?”

“아니 예의가 있죠.”


내일 동아리 모임에 꼭 오라는 얘기를 왜 밤 12시에 전화한단 말인가. 그냥 받지 말걸 그랬다. 나도 참, 답답하다. 아, 너무 이상한 사람들이 많아서 미치겠어. 아론 카터를 닮은 왕자는 존재하지 않아. 이건, 다 헛된 망상이야. 꿈이야. 다 꿈이라고.







https://youtu.be/CGwDZV4R5Zk?si=ASXkoqf_yL2Hmfc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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