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 적 나는 동생과 함께 매일 만화 영화를 즐겨보곤 했다. 지금은 정확한 시간이 기억나지 않는다. 저녁 먹기 전이었는지, 후였는지는 가물가물하다. 다만 만화 영화 시간이 되기 전까지는 늘 밖에서 뛰어놀았고, 엄마가 ‘밥 먹어’라고 부르면 들어가 식사를 하고 TV 앞에 앉곤 했다.
어린 시절 TV와 디즈니
나는 여자아이라 그런지 <천사 소녀 네티>, <꽃천사 루루>, <세일러문>, <오즈의 마법사> 같은 만화를 좋아했다. 지금은 내용이 전혀 기억이 안나는데 <마법 소녀 리나>도 재밌게 봤었다. <천사 소녀 네티>의 마지막 장면은 아직도 생생하다. 착한 도둑 네티의 정체가 남자친구인 셜록스에게 드러나고, 결국 둘이 결혼에 이르는 장면이 엔딩이었다. 그 장면이 나를 설레게 했다. 천사소녀 네티(샐리)가 너무 좋아서 종종 따라 그리기도 했다. 세일러문은 5명의 세일러 전사들의 화려한 의상과 매니큐어가 인상적이었다. 그러면서 나도 손톱을 매니큐어로 칠하곤 했었다.
또한 어린 시절에는 비디오방이 있어서 가족끼리 종종 빌리러 갔는데 그때 나는 디즈니 만화 시리즈를 빌려보곤 했다. 디즈니 만화를 너무 좋아해서 초등학교 3학년이던 9살에는 서점에 가서 디즈니 그림책을 사달라고 졸라서 네가 몇 학년인데 그림책을 보냐는 엄마에게 핀잔을 듣기도 했다. 결국 엄마가 사주셔서 아주 행복하게 읽었던 기억이 난다.
청소년기의 바람의 검심
고등학생 때는 <바람의 검심> 시리즈를 즐겨봤다. <바람의 검심>은 만화책으로도 보았는데 켄신의 인생을 통해서 사랑과 죽음, 인생의 허무를 느낄 수 있었다. 특히 추억 편에서 켄신과 도모에와의 사랑, 성상편에서 병들고 죽어가는 켄신을 보면서 인생의 애달픔과 허무를 온몸으로 깊이 느꼈었다.
임용 재수생 시절 보노보노
나중에 커서는 <보노보노>를 종종 보곤 했다. 일단 <보노보노>의 주제가가 너무 좋다. 멍 때리다가 가끔씩 심오한 말을 툭툭 던지는 아기 해달 보노보노가 정말 귀엽다. 너부리는 폭력적인 아버지 밑에서 커서 보노보노를 자주 괴롭힌다. 그 모습은 무섭지만 한편으론 짠하기도 했다. 너부리를 향해 “때릴거야?”라며 쫄면서 말하는 포로리는 너무 귀엽다. 보노보노를 지혜로 이끌어주는 야옹이형은 의젓한 모습이 보노보노가 사는 숲속마을의 구루같다.
대학생 시절 지브리
지브리 스튜디오의 애니메이션 중에는 <바다가 들린다>를 잊을 수가 없다. 아련한 여름의 풋풋함을 떠오르게 하는 고등학생 남녀의 사랑 이야기는 이십 대 초반 시절의 가슴을 촉촉하게 적셔주었다.
만화영화가 주로 어린이를 대상으로 한 TV 만화 시리즈를 가리킨다면, 애니메이션은 전 연령을 대상으로 한 훨씬 더 넓은 세계였다. 내가 사랑했던 작품들은 단순히 유치한 오락거리가 아니라, 인생의 슬픔과 즐거움, 철학적 사유까지 담아낼 수 있는 애니메이션이었다.
최근에는 너에게 닿기를
최근에는 <너에게 닿기를>을 두 번 반복해서 보았다. 주인공 사와코의 MBTI가 INFP로 나와 같아서 더 공감이 갔다. 사와코는 소심하고 공상을 잘하는 여고생이지만 똑똑해서 성적이 우수하다. 그리고 한 번씩 미소를 지을 때 엄청 예쁘다. 손재주가 뛰어나고 모두에게 선망받는 인기남인 카제하야와 연인이 된다. 말 그대로 만화 속에서 튀어나온 듯한 두 사람이라, 보는 내내 풋풋하고 설레는 감정을 느낄 수 있었다.
사실 모든 만화 영화(애니메이션)가 재밌는 건 아니다. 어떤 건 정말 말 그대로 너무 유치하고 지루하고 뻔해서 보다가 그만두기도 한다. 하지만 위에 적은 만화 영화들은 내가 그 시절 정말 사랑하고 공감하며 푹 빠지며 봤던 목록들이다.
결국 나는 내가 직접 그린 건 아니지만 애니메이터의 도움을 받아 손수 원고를 쓰고 아주 짧은 애니메이션도 몇 편 만들었다.
쉽게 편견으로 유치하고 해롭게만 여기는 사람들이 있다면 조금 더 열린 마음을 가졌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세상을 심각하게만 바라보면 한없이 따분하고 힘든 것이 인생이지만 열린 마음으로 모든 것에서 재미난 점을 찾아본다면 한없이 즐거운 것도 인생인 것 같다. 그 길에 애니매이션은 아주 즐거운 행복을 선사해 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