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선택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루비 Jul 23. 2021

변화의 시작, 기생충

조금씩 변화해가기를

 기생충은 나에게 여러모로 충격적인 영화였다. 잔인한 장면을 좋아하지 않는 것도 그렇거니와 가난과 부에 대한 깊이 생각해보지 않았던 내 사고방식이 전면적으로 흔들렸기 때문이다.


 기생충에서 기택의 가족은 피자 상자를 만드는 일을 하며 나름 성실히 살려고 애쓴다. 그러다 우연히 기우에게 고액과외 제안이 들어오고 그와 연결되어 일가족이 박사장네 집에 취업하는 계략을 꾸민다. 가난을 뼈저리게 경험해보지 않아서인지 나는 선뜻 공감할 수는 없었지만 이해는 되었다. 매슬로우의 욕구 위계론을 보면 맨 아래층에 생존의 욕구가 자리한다. 원시 시대 살아남기 위해 먹을 것을 빼앗고 서로 죽이는 것을 마다하지 않았듯 생존이 절박한 기택의 가족은 인간적인 체면이나 도덕성을 챙길 여유가 없어 보이기 때문이다.


 반면 부자인 박사장네를 아름답게만 그리지도 않는다. 젊고 아름다운 사모님인 연교는 미술치료에 일가견이 있다는 기정의 속임수에 어리숙하게 넘어가고 박사장은 부유함과는 어울리지 않는 저속한 면모를 보이며 기택을 무시한다. 영화의 제목에서 느껴지는 불쾌감이 기택의 가족과 박사장네 가족 모두에게서 느껴졌다.


 근세와 그 부인 충숙은 또 어떠한가. 영화의 제목처럼 그야말로 기생하는 삶을 살고 있었다. 철저히 존재를 숨긴 채. 영화 끝부분에 가서는 결국 극단의 분노를 가지고 살인까지 저지른다. 물론 그들도 맺힌 한은 많겠지만 말이다.


 이 영화는 대중성과 예술성을 모두 사로잡았다고 평가를 받는다. 그만큼 대중들에게도 비평가들에게도 인정을 받은 것이다. 그 원인을 분석해보면 흔히 신파극 같은 영화에서 보여지는 전형적인 선악구도가 아닌 입체적인 인간상을 그린 점, 그리고 묵직한 문제의식을 던져준 점이 주요한 이유라는 생각이 든다.


 비록  영화는 픽션이지만 결코 현실에서 동떨어진 픽션이 아니란 점이 중요한 무게감을 지닌다. 우리나라는  세계 1위의 자살공화국이며 빈부격차가 극심하다. 물론 해외에도 빈부격차는 있지만 우리나라는 사회안전망도 보장되어 있지 않아 개인이 파산하면 바로 낭떠러지로 떨어지는 구조이다. 최근에도  모녀 자살사건이나 극빈층의 가족 살해  자살시도 등이 뉴스에 뜨는 것을 보면 정말 심각하게 고민해보아야  문제이다.


 영화처럼 극단적인 사례가 아니더라도 일상에서 만연한 가난한 자에 대한 업신여김, 부에 대한 막연한 동경 또는 분노, 또는 영화에서처럼 못 가진 자끼리의 싸움을 해소하려면 무엇보다 극심한 빈부격차를 해소해야 하며 사회 안전망이 작동되어야 할 것이다. 작년 초에 청와대에 기생충 영화 관계자를 불러 연회를 가진 것으로 알고 있다. 국내외 영화제에서 각종 상을 수상한 것은 자랑스럽지만 그에 대한 자축 못지않게 영화가 주는 메시지를 어떻게 해결해나갈 것인지 깊이 고민해보아야 할 것이다. 그리고 그 문제 해결은 사회 대다수 구성원이 합의하고 동의할 수 있어야 하지 않을까. 그럴 때 영화의 화려한 수상 이력만큼이나 그 의미가 더욱 값지게 다가올 것이다.


 열심히 살려고 해도 계속해서 파산하는 구조(대만 카스테라), 학벌이 제일인 사회(학벌 위조), 열악한 주거환경(홍수에 취약한 반지하) 등 우리 사회에는 해결해야 할 문제가 산더미라는 것을 영화를 통해서 다시금 짚어볼 수 있었다. 기택네와 근수네가 싸우는 것처럼 사회적 약자들끼리 서로를 공격하도록 내버려 둘게 아니라, 부자인 박사장네가 냄새로 대변되는 하층민을 멸시하며 모멸감을 있는 그대로 드러낼 것이 아니라 진정한 사회통합을 고민해봐야 할 것이다. 결국 이 모든 것은 우리 어른들이 만든 사회 현상일 테니 말이다.


 불행 중 다행인 것은 이 영화가 천만 영화라는 점이다. 그것은 우리나라 국민들 대다수가 이 영화의 문제의식에 깊이 공감했다는 것을 의미하는 게 아닐까? 국민 개개인의 의식 변화와 더불어 사회 지도층의 인식 개선, 정책적 변화가 맞닿아 새로운 물결을 만들어낸다면 조금씩 견고했던 문제들도 해결되어가지 않을까? 그렇다면 생존의 절박함 앞에 인간성을 상실할 필요도, 다른 사람을 업신여길 이유도, 죽음의 그림자가 드리워질 필요도 없을 것이다. 조금씩 조금씩 변화해가는 사회를 기대해본다.

매거진의 이전글 내가 바라는 이상형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