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존재의 특별함
“낭창하다.”
대구에서 학교를 나온 나는 과 동기 언니로부터 이 말을 처음 들었다. 경기도 출신인 나는 처음엔 사투리인 이 말을 당연히 못 알아들었다. 그리고 사실 여전히 무슨 뜻인지 잘 모르겠다. 인터넷을 검색하니 여유롭고 한가해 보이는 가운데 4차원 같은 얄미운 사람한테 하는 말이라고 한다. 좋은 말은 아닌 듯하다.
친구를 만나러 가는 길에 주얼리샵에서 산 노란색 나비 모양 귀걸이를 하고 나갔다. 그런데 마침 친구도 오리 모양 귀걸이를 하고 나온 게 아닌가? 그래서 나는 “어, 이거 오리 모양이네.”라고 말을 건넸고 나는 친구가 “응”이라고 말하면 “나는 나비 모양 귀걸이를 하고 왔어. 뭔가 비슷하네.”라고 말할 참이었다. 그런데 예상 밖의 대답. “이거 백조인데.” 아뿔싸. 나는 명품 주얼리 스와로브스키의 귀걸이구나라고 퍼뜩 떠올렸다. 이런 게 바로 낭창하다는 말을 표현하는 상황일까? 다행히 친구는 별 신경 안 쓰는 눈치였다.
실제로 나는 살면서 특이하단 말도 많이 들었고 남과 다름에서 오는 부대낌에 힘겨워했다. 왜 나는 이렇게 사람들과 불협화음을 일으킬까 고민하고 또 고민했다. 그러는 사이 내 자존감은 사정없이 닳아 문드러졌고 날개 잃은 독수리처럼 힘없이 축 처져 생의 의지마저 잃고 말았다.
그렇게 한없는 우울로 침잠했을 때 내가 기운을 차릴 수 있었던 건 문학 속 주인공들, 영화 속 예술가들을 만나면서였다. 루시 모드 몽고메리의 <빨강머리 앤> 속 앤 셜리가, 진 웹스터의 <키다리 아저씨> 속 주디가, 그리고 영화 <이브 생 로랑>의 이브 생 로랑이 나와 참 많이 닮았다고 느꼈다. 앤셜리에게서는 총명한 지성과 풍부한 감성을, 주디에게서는 어떤 불행에서도 굴하지 않는 강인한 정신력을, 이브 생 로랑에게서는 섬세하고 연약한 내면과 예술성에 공명하고 가닿았다. 현실에서는 나와 비슷한 사람을 자주 볼 수 없어 외롭고 쓸쓸했지만, 문학 세계, 예술 세계에서는 얼마든지 나와 비슷한 사람을 만날 수 있었다. 그리고 그것은 다시 우울과 절망에서 회복과 희망으로 나를 인도했다.
오늘 공덕역에 볼 일이 있어서 갔다가 전광판에서 크고 굵게 쓰여있는 강렬한 문장을 발견했다. 그것은 바로 “가슴속에 별을 품은 사람은 어둠 속에서도 길을 잃지 않는다”라는 문장이었다. 며칠 전 엄마에게 같이 가평으로 별 보러 가자고 했다가 “누가 별 보는 것을 좋아해. 넌 정말 특이하다.”라고 타박을 들었다. 그런 일이 있고 얼마 후 이 문장을 만나니 더 내 마음을 들뜨게 했다. 이 문장 속 별은 어쩌면 글자 그대로의 star이기보다 dream, goal과 같은 의미로 쓰인 게 더 맞을지 모르겠다. 하지만 우주의 무한한 별들을 바라보면서 그 모든 꿈과 목표가 한 곳으로 집중하고 생의 의지를 더욱 불태우게 해 준다. 그렇게 해서 길을 잃다가도 다시 앞을 향해 내디딜 수 있는가 보다.
나는 사람들에게 앤셜리와 주디가 작가의 꿈을 불태운 것처럼, 이브 생 로랑이 혼신의 힘을 다해 예술가의 열정을 불태운 것처럼 각자의 가슴에 별 하나씩 심어주고 싶다. 사실, 내가 뭐라고! 그렇다. 내가 뭐라고! 그렇지만 내가 별거가 아니기에 더 의미 있지 않을까? 우리 시대의 평범하고 소외된, 어딘가 이상한 취급을 받는 모든 사람에게도 그들만의 특별함, 존재의 의미가 존재한다고, 토닥토닥 토닥여주며 살며시 함께 마주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