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공연이나 전시회 관람을 종종 즐긴다. 이게 다른 사람들에 비해 얼마만큼 자주인지는 모르겠으나, 내 정신적 갈망은 수시로 채워줄 수 있을 만큼은 보는 것 같다. 그런데 내 경험상, 내 주변 사람들은 그리 즐기는 것 같지 않았다. 그래서 몇 번 무료 티켓이 생겨 같이 가자고도 해봤지만, 처음 한두 번만 좋아할 뿐, 적극적으로 호응해주지는 않았다. 그래서 결국에 혼자 다니곤 한다.
그렇기에 전시회나 공연 관람을 와서 사전에 서로 촬영 부스에서 사진을 찍어 주는 모습을 보면 부럽기도 하다. 나는 주로 혼자 셀카를 찍거나 옆에 서 있는 분께 멋쩍게 부탁하는 일이 다반사니깐. 하지만 그럼에도 공연 관람에 대한 욕심을 줄일 순 없다. 왜냐면 공연을 보는 것은 나의 자존감과 마음의 허기진 결핍을 채워주고 예술적 소양을 풍성하게 해 주기 때문이다. 그 자체로 내 삶을 풍요롭게 해주는 인생의 즐거움이기 때문이다.
예술가는 가난하다는 말이 썩 좋은 말은 아닌 것 같다. 내 남동생도 예술가였고, 뉴스에서도 종종 예술가들의 힘든 사정을 보게 되면 서글퍼진다. 나도 국가로부터 봉급을 받지 않았다면 힘겨운 삶을 살았을지도 모른다. 그렇기에 예술가의 빈곤을 당연하게 여기는 태도는 문제가 있는 것 같다. 하지만, 배고픔도 무릅쓰고 예술을 사랑하는 태도는 정말 궁극의 경지가 아닌가 싶다. 오페라 <라보엠>의 예술가들처럼, 사랑과 예술로 삶을 그려내는 일상은 한 편의 시와 같다는 생각이 든다. 물론, 당사자는 매우 고달픈 삶이지만...
이렇게 예술은 극소수의 성공한 자들 외에는 힘겨운 삶을 살아가기 쉽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삶의 결핍을 채워주는 무언가가 있다. 예술을 창조하는 자들이나 소비하는 자들이나 그들을 한 데로 묶어주는 아름다운 경지가 있다. 그건, 단테의 <신곡> 천국편에서 말하는 ‘엠피레오’ 상태와 같은 것은 아닐까. 완전한 사랑과 빛이 감싸는 세계, 궁극의 선과 아름다움의 경지. 삶의 스트레스를 해소하고, 예술의 절정에서 느끼는 카타르시스에 행복을 느끼기에 찾고 또 찾게 되는 것 같다.
뿐만 아니라 분명, 공연을 관람하거나 전시회에 참여하며 예술을 즐기는 것은, 삶의 지평을 확대하는 데 많은 도움을 준다. 몇 백, 몇 천씩 주며 명품을 소비하는 것은 일시적인 만족감을 주지만(가져본 적 없지만 왠지 그럴 것 같다. 유럽 여행 시 명품패션 본점을 몇 군데 둘러보았지만, 흥미를 잃고 말았다.), 예술로 쌓은 교양은 평생에 지속되는 만족감이란 생각이 든다. 예전부터 나는 무언가를 소비하기보다 창조하고 싶다는 생각을 많이 했다. 그건, 예술적 소양이 풍부해야 가능하기 때문에, 더 다양한 경험과 체험을 많이 해야겠다고 다짐하게 됐다. 그리고 실제로 삶의 철학이 되어 실천에 이르게 됐다.
아무리 우울하고 절망적이어도, 자신이 사랑하는 예술이 있다면, 그 예술에서 발견한 한 문장이 자신을 구원할지 모른다. 나에겐 세계 4대 뮤지컬이 그랬고, 퓰리처상 사진전이 그랬고, 빈센트 반 고흐의 그림이 그랬다.
그러므로 앞으로도 다른 값비싼 소유물을 줄이고서라도, 다양한 문화예술을 감상하는데 돈을 아끼지 않으려고 한다. 나의 인생을 지탱해 주는, 삶의 교과서이자 생명줄과 같은 것이기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