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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변인물의 재해석을 통해 살펴보는 이야기의 치유효과

심청전과 뺑덕 비교 분석

by 루비

Cover Image by Freepik

배유안 뱅덕.jpg


주변인물의 재해석을 통해 살펴보는 이야기의 치유효과

- 심청전과 뺑덕 비교 분석


Ⅰ. <심청전>과 <뺑덕>의 내러티브 비교
Ⅱ. <뺑덕>에서 병덕의 자아정체감 완성
Ⅲ. <심청전>에 대한 재인식과 이야기의 치유효과
Ⅳ. 나가며

Ⅰ. 심청전과 뺑덕의 내러티브 비교

1) 내러티브 비교


배유안의 청소년 소설 『뺑덕』은 뺑덕의 아들 병덕을 주인공으로 내세워 심청과 심봉사는 주변인물로 물러나고 뺑덕어미를 아들 병덕의 시점에서 이해해 보려는 시도를 하고 있다. 그리하여 ‘희생’과 ‘효’가 주제였던 심청전과 달리 소설 뺑덕은 작가가 맺음말에서 이야기했듯 ‘가족에 대한 이해’, ‘자아정체감 형성’이 주제라고 할 수 있다.

“뺑덕 어미의 아들을 작품으로 불러냈다. 『심청전』 어디에도 뺑덕 어미만 있고 뺑덕이는 없다. 하지만 나는 그 아이 이야기를 해야 했다. 뺑덕 어미 같은 사람을 어머니로 둔 뺑덕이가 온전히 누군가의 아들이 됨으로써 자신의 삶을 세워 가는 모습을 보여 주고 싶었다. 이제 심 봉사가 아니라 뺑덕이와 우리들이 눈을 뜨는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 (뺑덕 –작가의 말-, 배유안)


또한 여러 가지 면에서 차이를 보이는데 이를 표로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심청전 뺑덕.png

특히 『심청전』은 전지적 작가 시점으로 상황을 서술하여 뺑덕에 대해 다소 부정적인 인식을 형성하게 하는 데 비해 소설 『뺑덕』은 아들 병덕의 입장에서 행실이 나쁘다고 소문난 자신의 어머니, 뺑덕 어미를 이해해 가는 내러티브로 전개되고 있어서 또 다른 관점에서 바라볼 여지를 준다.

2) 각 작품의 줄거리 및 주요 사건 및 주제의식

①심청전:

-줄거리:

어머니를 일찍 잃은 심청, 맹인 아버지 밑에서 어렵게 성장하다

지금의 황해도 황주 도화동이라는 마을에 심학규라는 맹인이 있었다. 그는 아내 곽 씨 부인과 함께 오손도손 살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곽 씨 부인이 딸을 낳고 7일 만에 죽게 된다. 심학규는 딸에게 심청이라는 이름을 지어주고 동네 사람들에게 젖동냥을 해가며 극진히 심청을 키운다. 이렇게 어머니를 일찍 잃고 자란 심청은 아버지를 매우 소중하게 여기는 착한 아이로 성장한다.


심학규, 눈을 뜰 수 있다는 말에 공양미 300석을 부처님께 바치기로 하다

어느 날 심학규는 다리를 건너다가 물에 빠지고 만다. 물에 빠져 죽을 고비에 처한 심학규, 그를 지나가던 몽은사 스님이 구해준다. 몽은사 스님은 맹인으로 살아가는 심학규를 불쌍히 여겨 공양미 300석을 부처님께 바치면 눈을 뜰 수 있다고 말해준다. 이 말을 들은 심학규는 덜컥 공양미 300석을 절에 시주하겠다고 약속해 버린다.


아버지의 눈을 뜨게 할 공양미 300석을 얻기 위해 심청이 인당수에 몸을 던지다

이 사실을 알게 된 심청은 남경 상인들에게 자신의 몸을 팔고, 공양미 300석을 받기로 한다. 인당수라는 곳에 몸을 던진 심청. 그러나 심청은 그녀의 지극한 효심을 알아본 용왕에 의해 구출된다. 그리고 심청은 용궁 속에서 일찍 돌아가신 어머니 곽 씨 부인과 다시 만나게 된다. 어머니와의 재회를 마친 심청은 연꽃 속으로 들어가 다시 인간 세상으로 돌아가게 된다.


용왕에 의해 살아난 심청, 천자의 눈에 띄어 황후가 되다

심청을 태운 커다란 연꽃은 곧 바다 위로 떠오른다. 이것을 본 뱃사람들은 연꽃을 천자에게 갖다 바친다. 천자가 커다란 연꽃을 신기해하며 바라보고 있을 때, 연꽃 속에서 심청이 나온다. 천자는 연꽃 속에서 나타난 심청의 신비한 아름다움과 착한 성품에 매료되어 그녀를 황후로 맞아들인다.


심청과 심학규의 재회, 딸을 다시 만난 기쁨에 심학규가 눈을 뜨다

황후가 된 심청은 아버지를 찾기 위해 큰 맹인잔치를 연다. 이 소식을 들은 심학규는 늙고 병든 몸을 이끌고 궁으로 향한다. 멀고 고된 길에 몇 번이고 주저앉을 뻔 하지만 결국 궁에 도착한 심학규. 그곳에서 그는 심청과 다시 만나게 된다. 심청을 다시 만난 놀라움과 기쁨으로 심학규는 눈을 뜨게 된다.

-주요 사건: 심청이가 공양미 300석을 받고 인당수에 몸을 던지는 일

-주제의식 및 비판:

☺심청이 절대 이룰 수 없을 것 같은 일을 이루고 세상에 대한 승리를 거둔 것은 희생과 효심을 바탕으로 한 것이기 때문에 더욱 감동을 주고, 선한 마음의 힘을 일깨워 준다.

☹심청이 아버지를 위해 자기를 팔아 제물로 끌려가는 것을 보면서도 주위 사람들은 말리지 못했다. 심청의 행동이 숭고한 선택, 본받아 마땅한 것이라는 생각이 깔려 있었기 때문이다. 자식의 희생을 효의 기준으로 여겼던 사고방식이 '산 제물'이라는 결과를 가져왔는데도 '효'라는 이름으로 슬며시 인정한 것이다. 나라에서는 의도적으로 효자, 효녀 이야기들을 모아 백성들에게 알렸는데, 나라가 나서서 효를 강조한 데에는, 유교 가치의 확립을 통해 지배 계층의 위치를 단단히 하려는 의도가 있었다. 부모와 자식 간의 철저한 수직 관계를 당연시하는 윤리적 가치를 가르쳐서 임금과 신하, 양반과 상민의 수직 관계를 단단히 하려고 했던 것이다. 효의 가치가 인간의 기본적 도리로서의 가치를 넘어서, 국가 통치와 유지를 위한 수단으로 활용된 것이라 할 수 있다.(역사로 통하는 고전문학 - 효의 길을 묻다, 심청전, 2011., 이민아)

☹자칫 효의 실행을 위해서는 어떤 고난도 극복하고 목숨을 희생하고서라도 지켜야 할 만큼 숭고하다는 그릇된 인식을 심어줄 가능성이 있다. 심청이의 지극한 효심은 감동할 만하지만 목숨을 바쳐 이룬 효가 진정한 효인지 숙고해 볼 필요가 있다.

②뺑덕:

-줄거리:

동네에서 ‘뺑덕’이라는 이름으로 통하는 병덕은 남동생이 태어나면서 자신의 생모가 따로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하지만 병덕은 이내 그 사실을 떨쳐 내려 애쓰는데, 행실이 나빴다는 어미의 존재가 고통스러웠기 때문이다. 아버지가 돌아가신 뒤 새어머니의 서슬 퍼런 눈빛을 견디다 못한 어느 날, 병덕은 “제 어미 사는 동네가 어디예요?”하고 불쑥 묻고 만다. 새어머니는 이 말을 병덕이 집을 나가겠다는 신호로 받아들이고, 결국 병덕은 열다섯 살에 집을 떠나 뱃사람으로서 새 삶을 시작한다. 그러나 함께 뱃일을 하는 친구 강재는 병덕에게 어머니를 찾아갈 것을 끈질기게 설득한다. 강재가 불의의 사고로 세상을 뜬 후 병덕은 마침내 그토록 잊고 싶던 어머니, 즉 ‘뺑덕 어미’를 찾아 나선다. 물어물어 도착한 곳은 어느 허름한 주막, 병덕은 묵어가는 손님으로 가장한 채 어머니를 만난다. 어머니는 과연 어떤 사람일까? 병덕은 꽁꽁 얼어붙은 마음을 녹일 수 있을까?

-주요 사건: 병덕과 뺑덕어미와의 만남과 대화(주막에서 일하는 뺑덕어미를 병덕이 관찰하는 일, 뺑덕어미가 다리를 다쳐서 병덕이 업고 데려온 것, 병덕이 주지스님을 폭행하고 옥에 갇히자 병덕어미가 국밥을 가져온 일 등)

-주제의식 및 비판:

이 작품은 기존 『심청전』에서 그려지지 않았던 ‘뺑덕’이라는 인물을 창조하고 그와 어머니의 관계를 역동적으로 엮어 냄으로써 효의 가치를 현대적으로 재해석한다. 특히 청소년이 품는 ‘정말 우리 엄마 맞아?’와 같은 보편적 고민이나 불만, 가족에 대한 부끄러움의 감정을 실감 나는 이야기로 구체화했다. (뺑덕 출판사 해설 중)

☺병덕이 소문이 좋지 않은 자신의 어머니에 대한 불만과 부끄러움을 극복해 나가고 성장해 가는 이야기로 진정한 효에 대한 이야기, 자아정체감 형성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다.

☹뺑덕어미를 아들 병덕의 입장에서 관찰하고 서술함으로 인해 뺑덕어미의 나쁜 행실이 미화되는 한계도 보인다.


Ⅱ. 뺑덕에서 병덕의 자아정체감 완성

심청전과 청소년 소설 뺑덕은 각기 다른 방식으로 주제의식을 풀어나간다. 먼저 심청전은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고전 소설로 판소리계 소설이기도 하다. 눈먼 아버지의 눈을 뜨게 하려고 자기를 희생하는 심청의 지극한 효성 이야기로, 사람을 제물로 바치는 내용의 인신공희설화, 부모에게 효도하는 내용의 효행설화 등과 같이 예부터 전해 내려오는 설화를 바탕으로 형성된 소설로 본다. 뺑덕은 배유안의 청소년 소설로 주인공 병덕이 스스로 어미의 행적을 쫓고 이해와 사랑으로 자아정체감을 형성해 가는 이야기다..

1) 각 작품 속 뺑덕의 역할

『심청전』과 『뺑덕』 속 뺑덕이 보여주는 성격, 언행, 역할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심청 뱅덕2.p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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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존의 심청전에서 뺑덕은 어딘가 눈살이 찌푸려지는 인물이다. 행실도 나쁘며 심봉사의 재산을 탕진하고 야반도주하는, 사람들이 손가락 질만하다고 생각되는 인물로 그려진다. 하지만 소설 뺑덕에서의 뺑덕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럴 수밖에 없었던 이야기를 하고 있다. 병덕의 관점에서 어머니인 뺑덕어미를 관찰하고 간간히 속마음을 드러내 보이면서 독자는 뺑덕의 처지를 안타까워하고 진정으로 이해할 수 있게 한다. 그리고 뺑덕의 아들 병덕도 그러하리라는 것, 그렇게 어머니의 처지를 이해하고 사랑으로 껴안아 한 단계 부쩍 성장할 것임을 알아차리고 독자 또한 공감하며 성장하고 내면이 치유되는 힘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심청전에서는 주인공 심청의 희생적인 효가 중심주제였다면 뺑덕은 병덕이 주인공이 되어 희생적 효가 아닌 부족해 보이고 못마땅한 자기 부모를 극복한 자신을 완성해 가는 또 다른 차원의 효를 그리고 있는 것이다.



2) 병덕의 자아정체감 완성

병덕은 자신의 아버지가 죽고 나서 친어머니라고 믿고 자랐던 아버지의 정실부인에게 씨받이자식, 첩년아들이라는 둥 갖은 구박을 당한다. 그러면서 끊임없이 자신에 대해 묻고 고민한다.

“제 어미 사는 동네가 어디예요?”

라며 분김에 내뱉은 말에 어머니는 어서 집을 나가라는 듯 떠민다. 그에 가막동을 박차고 뱃길에 오르지만 어머니를 찾아가라는 강재에게는 툭하면 주먹질이다. 아직까지 친어미를 만날 준비가 안되어 있는 것이다. 한번 도화동에 다녀오긴 하지만 서둘러 뱃길로 되돌아온다.

‘확인을 하고 나면 차라리 마음이 편해질지도 모른다...’라는 이유로 어미를 찾아 나섰지만 “내가 그런 천박한 여자의 심정을 어떻게 알아? 억지로 갖다 붙이는 내 꼴도 우습다, 우스워.”

라며 어미를 찾고자 했던 자신을 자책하고는 돌아와서 울음을 터뜨린다. 끊임없이 어미에 대한 부끄러움, 불만족, 애증이 뒤섞여 감정의 소용돌이에서 벗어나질 못한다.

그러던 병덕이 폭풍우로 강재를 잃고 도화동 주막으로 아주 눌러살면서 어미와 내내 같이 시간을 보내게 된다. 여전히 마음에 안 드는 것 투성이지만 주막 할머니의 툭툭 내뱉는 말속에, 어미의 울음 섞인 한탄 속에, 주막에 들르는 남정네들의 행패를 보면서 점차 어미를 이해하게 된다.


참하다고도 곱다고도 할 수 없는 여자였다. 하지만 한때는 곱고 착한 적도 있었단다. 나를 낳았을 무렵에도 고왔을까? 오라비에게 돈을 빼앗긴 걸 보면 그때까지는 바락바락 악쓰는 사람은 아니었나 보다. 아니면 오라비라는 자가 훨씬 더 우악스러웠거나.
나는 소리 죽여 울었다. 바락바락, 그거 애쓰며 산 거 맞아요. 나는 어미가 산 세월을, 어떻게 해 볼 힘이 없어 혼자 버둥댄 흔적을 보듬어 안았다. 그러자 내가 어미에게 안기는 것 같았다. 아가야, 귓전에 나를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어머니, 어머니, 내 안의 응어리가 조금씩 녹아내렸다.


뺑덕어미와 주막에서 동고동락하며 점차 응어리진 마음이 풀어지는 병덕. 하지만 다시 배를 타러 떠나고 병덕은 심청이 떠난 자리에 연꽃이 피어올랐다는 소식을 듣고는 다시 도화동 주막으로 돌아갈 채비를 한다.


도화동에 가 봐야겠다. 귀덕이가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지금쯤 어미도 아들을 기다릴 것이다.
바다가 보낸 소식이 거기에도 와 있을 것이다.


이렇게 이야기는 끝이 나지만 난 행복한 뒷이야기를 상상할 수 있었다. 병덕이 도화동 주막으로 달려가 자신의 어미 뺑덕어미와 포옹하고 오열하는 장면. 서로를 진심으로 이해하고 사랑으로 받아들이는 장면. 그렇게 병덕은 자신의 어머니와 화해하고 자신과 화해하고 진정한 내면의 성숙을 이룰 수 있을 것이다. 자신의 자아정체감을 완성하는 것이다.


Ⅲ. <심청전>에 대한 재인식과 이야기의 치유효과

작품 속 같은 인물도 어떤 사건과 배경 속에서 재구성하느냐에 따라 다양하게 재해석될 수 있음을 알게 되었다. 이와 관련하여 꼭 여러 작품을 비교하지 않더라도 한 작품 안에서도 한 인물의 여러 측면을 생각해 보며 좀 더 입체적으로 인물을 이해할 필요가 있음을 깨달았다.


또한 나는 이 이야기를 통해 무엇보다 나 스스로가 치유되는 기분이 들었다. 나도 한때 부모님을 부끄러워하는 학생이었다. 부모님이 남들처럼 번듯한 직업을 갖고 있지 않고 힘들게 노동을 해가며 일을 하는 것이 부끄러웠다. 학력이 짧은 것도 교양이 부족하다고 느낀 것도 병덕이 어미에 대해 마음에 안 드는 것투성이야 했던 것과 비슷한 마음을 지녔다. 심청전만 읽었을 때는 심청의 효심과 희생정신이 나를 부끄럽게만 만들었는데 심청전을 재해석하여 재창조된 뺑덕을 읽고 나서 주인공이 아닌 주변 인물들의 아픔과 인생 서사가 보이기 시작했다. 우리는 누구나 주인공이 될 수 없지만 누구나 가슴으로 이해받을 수 있다는 것, 각자에게는 다 그럴 수밖에 없는 인생 사연이 있다는 것을 새삼 깨닫게 되었다. 아마 이것이 이야기가 가진 힘이 아닐까?


작가가 맺음말에서 부모가 부끄러워 정신병원에 입원한 친구를 위해 소설을 썼다는 말처럼 이야기는 단순히 재미나 정보만을 위한 것이 아닌 치유효과도 있음을 이 소설 <뺑덕>을 통해서 보여주고 있다. 세상의 모든 불효자, 뺑덕의 병덕 같은 사람도 진정으로 부모를 이해하는 효자로 나아갈 수 있음을 깨닫게 해주는 것이 소설 <뺑덕>의 힘이다.


Ⅳ. 나가며

유교적인 효사상을 담고 있는 판소리계 소설 심청전과 새롭게 재해석한 청소년 소설 뺑덕을 보니 이야기란 게 얼마나 다채로운지 우리에게 얼마나 다양한 아름다움으로 다가올 수 있는지를 느꼈다. 심청전의 뺑덕과 뺑덕의 뺑덕어미처럼 한 인물도 어떤 관점에서 바라보느냐에 따라 다르게 다가올 수 있음을, 단편적인 사람은 없음을 느끼게 되었다. 주인공이 아니더라도 주변 인물이더라도 그들만의 살아온 인생 서사가 있다는 것, 그 사연을 진정으로 이해하고 받아들일 수 있을 때 진심으로 그와 연결될 수 있음을 깨달았다.


또한 옛이야기의 매력을 다시 한번 느꼈으며 우리 삶을 좀 더 생생하고 풍부하게 채워주는 이야기를 더욱더 사랑하며 이야기의 소비자뿐만 아니라 생산자로서도 의미 있는 역할을 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기 위해 옛이야기를 더욱더 사랑하며 더 가까이 접하고 새롭게 재창조된 작품들도 많이 접해봐야겠다. 그리하여 오래도록 이야기의 힘을 사람들과 함께 나누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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