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원 수업 때 한 교수님이 “잘 모르면서 시를 쓰는 사람들은 무식한 사람들이죠.”라는 말씀을 하셔서 깜짝 놀랐다. 내가 취미로 시를 쓰는 걸 알고 저격해서 한 말인지, 아니면 그냥 본인의 평소 생각을 말하는 것인지, 나는 교수라는 자리에 있는 사람이야말로 저렇게 무식한 발언을 한다는 것에 큰 충격을 받았다.
시를 쓰는데 자격이 있다고 생각하는 것 자체가 굉장히 권위적이고 오만하다는 생각이 든다. 자신이 시를 쓸 용기가 안 나고 열등감을 느끼는 것을 다른, 시 쓰는 것을 즐기는 사람들 폄하하면서 해소한다고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물론 시를 쓰거나 읽다 보면 잘 쓴 시와 못 쓴 시가 티가 나고 나름의 감상이 생기기 마련이다. 어떤 시는 굉장히 감동을 주며 눈시울을 붉히게 하지만, 어떤 시는 읽고 나면 어떤 느낌도 안들 수도 있다. 하지만 이건 전적으로 시인이 시를 못 써서라기보다 시를 받아들이는 개인의 경험과 생각이 다 다르기 때문이다.
최근에 사랑하는 사람과 죽음으로 인한 이별을 한 사람은 그와 관련된 시가 더 가슴깊이 와닿을 것이다. 거추장스러운 건 다 벗어버리고 어디론가 떠나고 싶은 사람은 그와 같은 종류의 시에 감동을 느낄 것이다. 팀 마이어스의 <시인과 여우>라는 그림책을 보면 이를 여실히 느낄 수 있다. 까다로운 독자인 여우들은 시인에게 멋진 하이쿠를 써주길 기대한다. 모든 시가 별로라며 고개를 절래 절래 절다가 한 시 앞에서 머무르며 극찬을 한다. 바로 그 시는 여우 자신들에 관한 시였다. 이처럼, 시는 독자가 어떻게 받아들이느냐에 따라 천양지차다.
또한 글을 쓰다 보면 무슨 상을 타는 것을 맹목적으로 좇는 사람들을 볼 수 있다. 나도 상을 타면 기분이 좋긴 하지만, 상이 그 작가의 모든 걸 대변한다는 생각은 하지 않는다. 상이란 건, 작품성을 빼고도 운과 시대성, 대중성 등이 잘 맞아떨어져야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비록 상을 타지 못하더라도, 또는 대형 출판사에서 출간되지 않았더라도 숨은 보석 같은 책들이 많이 있다. 중요한 건, 남들이 좋다고 따라 사는 게 아니라 노련한 안목이 필요한 게 아닐까.
그런 의미에서 진짜 멋진 독자는 작가의 숨은 노력과 내공을 세심하게 알아봐 주는 사람인 것 같다. 책을 처음부터 끝까지 제대로 읽어보지도 않았으면서, 자신은 한 문장도 쓰기 힘들면서 남이 공들여 쓴 책을, 평소엔 환경보호에 쥐뿔도 관심 없으면서 나무가 아깝다느니, 이런 쓰레기를 왜 쓰냐느니 말하는 사람은 내면이 심술과 고약한 악취로 가득한 게 아닐까. 멀리서 보면 하찮아 보이고 허술해 보여도 그 안을 세심히 들여다보면 많은 수고와 피와 땀이 서려있는 하나의 예술작품과도 같은 책들이다. 비난은 쉬워도 칭찬은 그토록 어려운 것이다.
무언가를 창조하고 만들어나가는데 매서운 반대자들이 길을 막아도, 내 내면의 옹호자들은 나를 지켜준다. 그들과 함께 힘을 내서 나아갈 수 있다. 용을 물리치는 기사처럼 어떠한 두려움도 이겨낼 수 있도록 돕는다. 그들은 나에게 용기와 격려를 듬뿍 쏟아준다. 그 자들을 믿으며 앞으로 나아가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