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사람에 대하여

by 루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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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병원에 가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었다. 사실 병원에 가기 전에는 의사 선생님께 하고 싶은 말을 메모장에 잔뜩 적어 갔다. 그런데 막상 책상 앞에 마주 앉으니, 입이 쉽게 떨어지지 않았다. 메모에 적어둔 단어들과 문장들을 보는 것조차 버거워졌다. 온몸에서 거부 반응이 일어나는 것 같았다.


나는 왜 이러는지 정확히 설명하긴 어렵지만, 기본적으로 감정에 민감한 사람이다. 분위기에 약하고, 부정적인 감정을 오래 감당하지 못한다. 혼자 곱씹을 때는 억울함과 울분에 차서 꼭 이야기해야지 마음먹다가도, 막상 입 밖으로 꺼내려하면 누군가를 험담하는 사람이 될 것 같고, 그 감정에 다시 잠식될 것만 같았다. 그래서 이야기는 자꾸 엉뚱한 방향으로 흘러갔고, 그게 스스로도 답답했다.


다음 진료 때는 차라리 편지를 써서 드릴까 하는 생각도 해봤다. 하지만 그것 역시 지나간 이야기들로 가득 찰 게 분명해서 선뜻 그러고 싶지 않았다. 어떤 이야기들은 꺼내는 순간 다시 아파질 것 같아서, 그냥 묻어두는 편이 나을 때도 있는 것 같다.


진료 중에 나는 세상에는 좋은 사람이 별로 없는 것 같다는 말을 꺼냈다. 그러자 의사 선생님은 내게 “그럼 좋은 사람은 어떤 사람인가요?”라고 물으셨다. 그때는 바로 대답이 나오지 않았다. 그런데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그리고 지금 이렇게 글을 쓰면서 조금은 알 것 같아졌다.


나에게 좋은 사람이란, 아주 대단한 사람이 아니라는 걸. 오랜 시간 쌓아온 관계나 친밀함을 쉽게 저버리지 않는 사람. 타인의 말만 듣고 판단하기보다, 의심이 생기면 먼저 물어보고 대화를 시도하는 사람. 적어도 사람을 소문으로 재단하지 않는 사람. 아마도 나에게 좋은 사람이란 그런 사람일 것이다.


가만히 생각해 보면, 내 삶에도 그런 사람들이 아주 없었던 것은 아니다. 많지는 않지만, 여전히 곁에 남아 있는 인연들이 있고, 글을 쓰며 알게 된 좋은 사람들, 제자들도 있다. 트라우마는 자꾸만 나를 부정적인 기억 쪽으로 끌고 가지만, 그럴 때마다 좋은 사람도 분명히 존재한다는 사실을 자주 잊는 것 같다. 아마도 내가 관계에 대한 욕구가 큰 사람이기 때문일 것이다. 인정받고 싶고, 마음을 나누고 싶은 마음이 여전히 크다.


그래서 나는 글을 쓴다. 브런치나 블로그, 인스타그램 같은 공간이 누군가에게는 소란스럽고 피로한 곳일지 모르지만, 나에게는 마음이 숨을 고를 수 있는 창구이기도 하다. 모든 관계가 깊을 수는 없겠지만, 그 안에서도 분명히 온기와 위로가 존재한다는 것을 조금씩 배워가고 있다.


제 본 영화 〈여중생 A〉 속 미래는 현실의 고통을 피해 가상 세계로 도피한다. 한때 게임을 좋아했고, 또 문학 속으로 자주 숨어들던 나 역시 그 모습이 낯설지 않았다. 현실의 인간관계가 늘 매끄럽지 않다고 해서, 그 도피가 모두 나약함은 아닐 것이다. 어떤 세계는 우리를 다시 살아가게 만드는 안식처가 되어주기도 하니까.


대개의 드라마와 영화는 해피엔딩으로 끝난다. 아마도 그 결말이 보는 사람의 마음을 붙잡기 때문일 것이다. 내 인생은 아직 해피엔딩도, 새드엔딩도 아닌 채로 진행 중에 있다. 슬픔과 행복 사이를 오가며 흘러가는 이 시간을 통과해, 언젠가는 나만의 해피엔딩에 도착할 수 있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