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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루비 Jun 04. 2019

마음의 울림소리, 여행

유럽 여행에서 보고 듣고 느낀 것

 여행은 잠시 멈춰 서서 나를 되돌아볼 수 있는 시간을 안겨준다. 일상 속에서는 빠르게 지나쳤던 무의식의 세계가 여행지에서 비로소 의식의 영역으로 빠르게 전환된다.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강인하다는 것, 낯선 곳에서도 쉽게 잠을 잘 수 있다는 것, 불완전한 영어지만 의사소통이 가능하다는 것들……. 


 아시아권만 주로 여행하던 내가 처음 유럽에 가서 여행하고 왔을 때 그 깨달음은 절실히 다가왔다. 긴 긴 나날을 그것도 혼자서 무리 없이 잘 여행하고 돌아올 수 있을까 많은 걱정을 하고 출발하였지만, 여행 중에도 가끔씩 두려움이 엄습해오곤 했지만 결국엔 무사히 돌아올 수 있었다는 게 나에겐 엄청난 수확이자 인생의 보물이었다. 그것은 스위스의 아름다운 청록빛 호수만큼이나, 이탈리아 로마의 고대 유적지만큼이나 값진 것들이었다.


 사람들은, 또는 세상은 우리를 주저하게 만든다. 그만큼의 시간과 비용을 감당할 수 있겠느냐고. 세상은 위험으로 가득 차 있다고. 언제든지 나아가려는 우리의 뒷덜미를 잡고 놓아주지 않는 방해꾼들이 넘쳐난다. 그럴 때 정말로 그들의 손에 이끌려 털퍼덕 주저앉아 버린다면 우리의 생은 다소 안전할지는 몰라도 생의 기쁨과 충만함을 누릴 기회를 놓쳐 버릴지도 모른다. 자신의 조그마한 울타리 안에서 멀고 먼바다 밖을 향해 돛을 올릴 기회를 잃을지도 모른다. 


 런던에서의 여행은 런던이라는 녹색 도시를 천천히 산책하는 한 마리 사슴이 된 기분이었다. 발길 가는 곳마다 보이는 푸르른 공원들과 사람들은 내 마음을 편안하게 해 주었고 곳곳에서 무료로 입장할 수 있는 미술관과 박물관은 나에게 새로운 지혜의 장을 열어주었다. 교과서에서만 보던 고흐의 그림을 내 눈으로 직접 보았을 때 그 번뜩임이란. 아름다운 그림을 감상하면 눈물이 흐른다는 그 말의 뜻을 그 순간 아! 하고 이해할 수 있었다. 그뿐만 아니라 평소 뮤지컬을 좋아하던 내가 뮤지컬의 본고장, 웨스트엔드에서 위키드 공연을 보았을 때의 감동이란 이루 다 말로 표현할 수 없었다. 마음 같아선 그곳의 모든 뮤지컬을 한 편씩 다 휩쓸고 오고 싶은 심정이었다. 런던에서의 5박 6일간의 시간은 쏘아 올린 우주선처럼 너무나 빠르게 지나가버렸다.


 런던에서의 5박 6일간의 여행을 마치고 도버해협을 건너 파리로 넘어갔던 날은, 내 인생에 다시 오지 못할 두근거림의 연속이었다. 삼면이 바다로 둘러싸인 한반도에서는 한 번도 해보지 못했던, 버스와 페리를 타고 바다를 건너는 일! 장장 9시간 동안의 이동 끝에 도착했던 파리 새벽 공기의 신선함. 얼굴을 스치는 서늘한 공기가 그때만큼 나 자신을 뿌듯하게 했던 적이 또 있던가. 캐리어를 힘겹게 끌고 다니면서도, 길을 잃었음에도 두려울 것이 없었던 왠지 모를 용기가 솟았던 그날의 새벽. 그렇게 여행의 한 토막은 나에게 잊을 수 없는 추억의 에피소드를 남겨주었다. 자신감과 강인 함이라는 선물과 함께.


 파리 세느강변을 걷는 일은 영화 속 주인공이 되어볼 기회를 안겨주었다. 루브르 박물관에서부터 시작하여 에펠탑을 향하여 걸어갔던 길은, 혼자임에도 불구하고 쓸쓸함과 외로움을 떨쳐버리고 낭만의 호수로 빠져들게 해 주었다. 강변 옆 늘어선 고색창연한 옛 건물들, 서로에게 입맞춤을 하고 있는 연인들의 포옹, 한가롭게 독서 삼매경에 빠진 사람들의 모습을 지켜보는 것은 내리쬐는 햇살만큼이나 마음까지도, 기분까지도 한결 따스해지고 포근해지는 그런 시간이었다.


 스위스에서의 여정은 또 어떠했던가. 파리에서 장장 6시간을 걸려 도착한 스위스 인터라켄의 낮 풍경은 나에게 여기가 지상낙원이구나라는 실감을 느끼게 해 주었다. 푸르른 청록빛 호수는 너무나 아름다워 눈이 부실 정도였고 저 멀리 보이는 알프스 산의 만년설 또한 더위를 날려버릴 만큼 시원하게 다가왔다. 하룻밤을 묵고 떠났던 융프라우 정상으로의 여행은 한 스위스인의 도움과 내려올 때 우산을 건네준 일본인까지 국적을 넘어 다양한 사람들과 함께 했던 즐거움과 교류의 시간이었다. 그린델발트에서 보이는 여러 스위스 전통 가옥들과 풀 뜯는 소들의 목가적인 아름다움, 폭포수처럼 쏟아져 내리는 빙하수들, 이 모든 것들 또한 마음을 충분히 설레게 했다. 얼마나 그 모습을 눈에 오래 담고 싶었으면 이탈리아로 출발할 때 인터라켄 서역에서 타도 되는 걸 동역까지 되돌아가서 타고 갔을까. 나에겐 지상천국의 휴양이나 다름없었다.


 스위스의 다음 여정 지였던 이탈리아 베네치아에서 만난 오색찬란한 가면들은 여행이라는 작은 일탈에 축제와 같은 시간을 선물해주었다. 여러 가면 가게를 둘러보며 하나하나 가면을 써보고 사진을 찍고 선물해 줄 가면들을 고르고 사갔던 일. 한국에서는 볼 수 없는 또 다른 매력에 마음속 깊이 두근거리게 해주는 시간이었다. 피렌체에서는 동화책에서만 보던 피노키오 목각 인형을 직접 보니 동심으로 돌아간 기분에 설레었고 영화 냉정과 열정사이의 배경인 두오모 성당은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영화 속 장면으로 다시 들어간 기분이었다. 콜로세움, 스페인 광장, 트레비 분수, 바티칸 시국 등 여러 유적지가 자리한 로마는 하루라는 일정이 너무나 야속할 만큼 볼거리, 먹을거리, 즐길 거리들이 다양했다. 더불어 중간중간 만난 외국인, 한국인 너나 할 거 없이 너무나 소중하고 친절했다. 


 물론 여행은 위험한 순간들과 맞닥뜨리기도 한다. 파리 지하철에서 소매치기를 당하기도 하였고 로마 트레비 분수 근처에서 치근대는 남자와 부딪히기도 했다. 하지만 그런 면에서 여행이 더욱더 의미 있게 다가오는 것이 아닐까. 비록 예상치 못한 순간들을 경험하고 손해를 입기도 두려움에 빠지기도 하지만 그것을 잘 견뎌내고 극복함으로써 인생을 살아갈 힘을 얻는 것. 인생의 축소판으로서의 여행을 헤쳐 나가고 오는 일. 로마 어느 골목길에서 만났던 아름다운 소프라노의 노랫소리처럼 여행은 여러모로 사람에게 아름다운 울림을 주는 값진 무언가가 아닌가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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