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왜 혼자가 편해졌을까
내가 존경하는 사람은 먼저 우리 아빠, 엄마를 들고 싶다. 그리고 정여울 작가님, 황선미 작가님, 의사 선생님을 존경한다.
남몰래 존경하는 사람은 아직 잘 없는 것 같다. 이 글을 쓰면서 느낀 건 내 인간관계가 꽤나 협소하다는 점이다. 나는 인간관계 손절도 잘하고 조금만 불편해도 관계를 잘 끊는 편이다. 그게 나의 단점인 건 알지만, 굳이 불편하고 스트레스받는 것보다 혼자인 게 더 편해서인 이유도 있다.
나를 탐색하면서 느낀 건데, 나는 자극에 민감한 유형이어서 감동도 잘하지만 상처도 깊게 받는다. 그래서 더 피곤한 인간관계가 싫었던 것 같다. 사실 새로 가입한 모임도 다시 탈퇴할까 고민 중이기도 하다. 나는 귀찮은 것보다 차라리 고독한 게 나은 사람인 것 같다. 이런 걸 괴팍하다고 하나?
한때 나는 친구들이 좋아서 물심양면으로 내가 한턱씩 자주 쏘고, 베풀고, 한없이 맞춰주었었는데 그럴수록 나는 더 함부로 대해지고 점점 설자리가 없어지고 작아진다는 것을 느꼈다. 이건 친구뿐만 아니라 거의 모든 인간관계가 그런 것 같다. 사람은 잘 대해주면 고마워하는 게 아니라 만만히 여긴다. 그런 것들이 신물이 났다.
그런데 잘 대해주면 고마워하는 사람도 있다. 바로 제자들이다. 특히 나처럼 소외되거나 상처받은 아이들은 선생님의 작은 관심에도 대단히 고마워한다. 오히려 내가 미안할 정도로. 이왕이면 투입 대비 산출이 큰 부분에 열정을 쏟는 게 좋지 않을까? 사실, 계산적인 인맥으로 돌아가는 사회에서 산출적 가치는 별로 없을지 모른다. 그러나 마음만은 정말 풍족해진다.
존경하는 사람을 떠올리려다 학창 시절 선생님들을 떠올려봤다. 분명 내게도 좋은 선생님이 많이 계셨고 찾아뵙고 싶기도 하다. 몇 년 전에는 SNS친구이기도 했다. (그런데 내가 해킹당해서 다시 끊어졌다.) 대학에 갓 입학한 새내기 시절에는 모교에 선생님을 찾아뵙기도 했다. 그런데 지금은 너무 세월이 많이 흘러 기억이나 하실지 모르겠다.
우리 아빠는 친구가 많고 동창회 모임도 활발하다. 아빠는 나에게 나이가 들면 아빠처럼 다시 모임이 활성화될 거라고 말씀하셨지만, 그건 아빠 시대의 이야기고 우리 시대 동창들은 각자의 비교의 경쟁의 늪에 빠져서 아마도 다시 만날 일은 거의 없을 듯하다. 잘 나가는 친구와 못 나가는 친구가 한자리에 모이면 잘난 체 하느라 바쁘거나 서로 질투하고 의기소침해질 게 뻔하기 때문이다.
진정한 인간관계란 무엇일까? 바로 좋은 일이 있으면 진심으로 축하해 주고 힘든 일이 있으면 기꺼이 발 벗고 나서서 도와주는 것일 것이다. 사실 그런 친구 1~2명만 있어도 인생 성공한 것이라는 말이 괜히 나오는 게 아니다. 그런 친구를 만나기 힘들기 때문에 우리는 사회적 인맥에 목숨 걸고 소속감을 느끼려고 한다. 하지만 그만큼 자신이 발품을 팔아야 한다.
어떤 대학 교수가 현대 사회에 적응을 못하면 ‘나는 자연인이다’ 프로에 나오는 사람들처럼 산다고 말하던데, 사실 그렇게 극단적이기까지는 아니어도, 나는 혼자가 좋은 것 같다. 뉴스에서 보니 요즘은 결혼식도 안 치르는 경우도 많다고 하던데, 나도 만약 내가 결혼을 한다면, 예쁘게 청첩장을 꾸며서 소식만 전하는 것으로 마무리하는 것을 상상해보기도 했다. 부모님은 결사반대하겠지만...
사람들은 뾰족한 모서리들처럼 다들 자기주장도 너무 세고 나이 들수록 자신만의 가치관이 확고하기 때문에 어울리기가 쉽지 않다. 그래서 비슷한 사람들끼리 동호회도 만들고 새로운 모임을 찾아 나서는 것 같다.
하지만 나는 결국에 가장 행복한 건, 나와의 시간을 잘 보내는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오늘 저녁은 무엇을 요리해먹을지, 자기 전에는 무슨 책을 읽을 것인지, 고민이 있을 때 누구와 이야기를 나눌 것인가 등, 삶에서의 소소한 선택을 누리는 즐거움이 나를 행복하게 만들어주는 것 같다.
사람들은 인맥이 화려하고 사회적 관계가 넓어야 정상인인 것처럼 말하지만, 나는 영화 <어바웃 타임>에서 보았던 가족중심의 문화가 더 끌리고 편안해 보인다. 그런 의미에서 완전히 닫아두지는 않되, 굳이 스트레스받으면서까지 가면 쓰며 다른 이들을 위해 살고 싶지 않다. 나는 나로서 충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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