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 본 게 너무 많을 때

by 루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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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끔, 해본 게 너무 많아서 이제 어떤 것도 하고 싶지 않다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영화도 너무 많이 봤고, 책도 너무 많이 봤고, 여행도 웬만큼 다녔고, 맛집도 많이 다녔고.

그냥, 난 이제 모든 게 심심하고 재미없고, 초월했어. 이렇게.


이건 나뿐만이 아니라 내 동생도 공감하는 포인트였다. 그냥, 사는 게 시시하고 재미없어.

물론 굳이 따지자면 안 해 본 것도 많지만.(스쿠버다이빙, 번지점프, 클라이밍 등등) 그런 식으로 따지면 세계적 천재인 일론 머스크도 당해낼 재간은 없을 것이다. 그냥 난 내 나이때 해보고 싶은 건 거의 다 해본 것 같다.


그래서 책도 읽기 싫고 영화도 보기 싫고, 어디 나돌아 다니는 것도 지겨울 때일수록, 나는 겸허히 내 마음속으로 침잠해 들어가는 것 같다. 조용히 방에 있는 필요 없는 물건들을 정리하고, 컴퓨터 파일들을 정리하고, 앨범 속 사진들을 뒤적여보는.


그러고 보니 난 다이어트에 성공해 본 적이 없다. 다이어트는 나와는 머나먼 일일 거라고 생각했다. 그도 그럴 것이 난 대학생 때 바람 불면 날아갈 것 같다는 소리 들을 정도로 빼빼 말랐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십 대 후반에 심각한 괴롭힘을 당했고 정신과 치료를 받으면서 살이 급격히 쪘다. 직장인이 되고서부터는 모든 옷을 백화점의 비싼 브랜드로 다 구입하곤 했는데 아까워서 아직도 옷장에 그대로 보관하고 있다.


난 어쩌면 그냥 땡깡을 부리고 있는 건지도 모르겠다. 사실, 내가 이 넓고 무한한 우주에 대해서 알면 얼마나 알겠는가. 아무리 책을 많이 읽었어도 못 읽은 벽돌 책이 수천 권이 넘으며 아무리 여행을 다녔어도 안 가본 나라가 수백 개가 넘을 텐데.


사실, 나는 그냥 다 필요 없고, 여행 때 가장 간절해지는 곳, 내 방 침대에서 한 몸이 되어 오래오래 쉬고 싶다. 이게 나의 가장 원초적 욕망이다. 비 오거나 눈 오는 날 밖에 돌아다니지 않고 이불 밖은 위험해라는 마인드로 집 안에서 쿨쿨 잠자는 것.


그래서 이제는 정말 SNS도 줄여보고자 한다. 시끄러운 사생활 공유는 그만하고 나만의 보금자리에서 하루하루 안온한 일생을 보내보고 싶다. 아마도 그게 바로 나답게 가장 충만한 시간을 보내는 방법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