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모 루덴스 되기
“선생님은 방학 숙제로 실컷 놀다 오세요!”
파이어족이 유행하고 건물주가 꿈인 시대에 치열하게 사는 건 당연한 건가 보다. 다들 새벽 시간, 잠자는 시간까지 쪼개가며 자기 계발에 목숨 거는 게 일상인 세상이 되었다. 그렇지 못하면 게으른 사람, 인생 실패자, 낙오자쯤으로 취급하는 게 바쁘게 돌아가는 현대사회의 모습이다. 이것을 즐기는 사람들도 있겠지만, 누군가는 그런 현실에 지쳐 술에 빠져 살거나 정신과를 방문하기도 한다. 이런 어른들의 모습이 아이들에게는 어떻게 비칠까.
“선생님은 방학 숙제로 실컷 놀다 오세요!”
내가 대학원에 다니고 인터넷 기자로 활동하며 바쁘게 산다니깐 우리 반 학생이 여름방학을 앞두고 내게 내뱉은 말이다. 선생님은 뭘 그리 공부를 열심히 하느냐고 한 말이었다. 그 말을 들으니 머리를 망치로 맞은 것 같으면서도 내 어린 시절을 떠올리게 했다. 그러고 보니 어린 시절엔 참 많이도 놀았다. 도시에서 떨어진 시골에서 자라서이기도 했지만 어린 시절에는 노는 게 너무나 좋았다. 봄여름에는 산이나 들로 꽃을 구경하고 바람 내음을 맡으며 쏘다니기 바빴고, 가을에는 밤나무에서 밤을 따거나 주우러 다니고 겨울에는 눈 뭉치를 뭉쳐서 얼음집을 만들어 놀았다. 그렇게 초등학생 시절 6년, 중학교 시절 3년을 실컷 놀기만 했다. 유일하게 다닌 학원이 있다면 피아노를 5년간 배웠던 것뿐이다. 그렇게 신나게 놀던 나는 어느새 어른이 되어서 늘 공부와 자기 계발로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다.
한국이 세계 최장 노동시간을 자랑하는 건 차치하고서라도 한국인은 정말 열심히 산다. 대학원 수업을 들어도 출석이나 과제에서 조금만 어긋나도 학점이 낮아지며 직장에서도 서로가 좋은 고과를 받기 위해 아등바등 최선을 다한다. 가끔 스스로 질문을 되뇐다. ‘뭘 위해서 그렇게 열심히 사는 걸까?’ 트리나 폴러스의 <꽃들에게 희망을>이라는 책에서는 꼭대기에 오르기 위해 사투를 벌이는 애벌레들이 나온다. 서로의 머리를 짓밟고 오르다가 추락하여 절규를 내지르며 죽기도 하고 아비규환이다. 흡사 살인적이고도 경쟁적인 현대 사회의 은유같다. 꼭대기 끝에 무엇이 있는지도 알지 모른 채. 그렇게 모두가 기둥을 기어서 오르고 있을 때 노랑 애벌레만은 경쟁에서 이탈한다. 그리고 한 마리의 아름다운 나비로 날아오른다.
'너는 뭔가 알고 있었지? 그렇지? 기다림이 <용기>라는 것을.'
호랑 애벌레는 새삼 깨달았습니다. 높이 오르려는 본능을 그동안 얼마나 잘못 생각했는지. '꼭대기'에 오르려면 기어 오르는 게 아니라 날아야 하는 것이었습니다. / 트리나 폴러스의 <꽃들에게 희망을> 中
놀이가 어린이의 특권이지만, 제자의 말처럼 어른이 되어서도 마냥 나태하고 게으르게 놀 수만은 없다. 하지만, 한 가지 힌트를 얻을 수는 있었다. 내게 주어진 일, 꼭 해야만 하는 의무나 과업들을 즐겁게 해 보자고. 마치 놀이하듯이 말이다. 하루하루가 고역인 사람들에게는 쉽지 않을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결국 그 길을 찾아내면 달콤한 열매가 기다리고 있다. 나는 지금은 일이 너무나 재밌다. 적당한 스트레스는 건강에도 도움이 된다고 하지 않는가. 약간의 스트레스와 희비가 엇갈리는 하루하루 속에서도 나름의 행복과 즐거움을 찾고 있다. 이것이 바로 내게 실컷 놀고 오라고 주문한 우리 반 아이에게서 배운 것이다. 그리고 언젠가는 정말 완벽한 호모 루덴스, 놀이하는 인간이 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