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흔에 다시 펼친 먼 북소리

서른과 마흔 사이에서 다시 읽다

by 루비


서른 살이 되던 해, 유럽 여행을 가기 전에 <먼 북소리>를 조금 읽다가 말았다. 책을 들고 진료실에 들어가니 의사 선생님께서 “무라카미 하루키 책이네요?” 하고 말을 걸어주셨다. 나는 뭔가 의기양양한 마음과 반가운 마음이 뒤섞였지만 한 편으로는 불편한 마음도 있었다. 아무 생각 없을 땐 당당하게 들고 다니던 책도 무언가를 의식하게 되면 숨기게 된다. 그 후로도 몇 번 비슷한 일을 겪고 나서 나는 책을 들고 다니는 걸 꺼리게 됐다.


나는 언제부턴가 ‘몰입’이란 단어를 아주 좋아하게 됐다. 미하이 칙센트 미하이가 주창한 ‘몰입’이란 개념이 정말 와닿았다. ‘몰입’은 몬테소리 교육의 핵심 철학이기도 하다. 억지로 끌려다니는 삶을 살기보다 내가 좋아하는 것을 즐기면서 푹 빠져서 산다면 무얼 하든 부스터를 단 기분일 것이다. 그런 면에서 책도 읽다가 재미없으면 덮고 다른 재밌는 책을 읽는다. 그럴 때 이해도 쏙쏙 되고 더 책장을 빨리 넘기게 된다.


책꽂이에서 다시 이 책에 손이 가서 꺼내고 보니 1/4 지점에 읽다만 표시가 있었다. 그런데 다시 읽어보니 거의 10년 만이라 그런지 내용이 생소했다. 그리고 오늘은 무라카미 하루키의 감정이 진하게 느껴졌다. 일본을 떠나기 전 ‘피폐’란 단어를 계속 느끼며 머릿속에 벌 두 마리가 붕붕 날아다니는 것 같다고 말하는 하루키. 얼마나 지쳤으면 모든 게 부정적으로 보일까 싶을 정도로 에세이 한 편에서 피로감이 역력히 느껴진다.

첫 챕터는 로마에서 시작해 로마에서 끝난다. 유럽 여행 시 로마에 1박 2일 머물렀기에 이 편이 더 생생하게 와닿았다. 여행지의 나열은 아니어서 나의 짧은 체류기간은 크게 책을 읽는데 방해가 되지 않았다. 그저 로마에서의 느낀 답답함과 피로감이 깊이 느껴질 뿐이다. 그리고 이런 감정의 이야기가 한 편의 에세이가 된 점이 신기하게 느껴졌다. 어쩌면 독자들도 비슷한 감정을 느낀 게 아닐까. 지금 있는 현실이 답답해서 그 탈출구로 외국에 나가고 싶은 마음. 무라카미 하루키처럼 해외에 체류하고 싶은 마음에 동화되었을 것만 같다.

하루키는 1986년인 서른여덟에 일본을 출국해 3년 동안 해외에서 머물렀고 마흔 무렵에 이 책을 출간했다. 내가 올해 마흔이라 이 책을 읽는 의미가 더 크게 와닿았다. 나는 지난 3년 간 무엇을 했을까? 무엇을 이루었을까? 그리고 어떤 고민을 안고 살아왔나?라고 되돌아보게 되었다. 다시금 펼쳐든 이 여행기를 찬찬히 넘기며 나의 마흔이라는 나이와 여행, 인생에 대해서 되돌아보고자 한다. <먼 북소리>는 여행기 이전에 하나의 인생 여정기라는 생각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