넷플릭스 드라마 <순수 박물관>
※ 이 글에는 드라마의 주요 줄거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드라마 <순수 박물관>은 오르한 파묵의 소설 <순수 박물관>을 원작으로 한다. 벽돌책이라 읽다 말고 미루고 있던 차에 넷플릭스 공개 소식을 우연히 알게 되었고, 마침 ‘독서 금지 주간’을 실천 중이던 나는 드라마를 먼저 정주행 했다. 9부작으로 압축된 전개는 다소 빠르게 느껴졌지만, 몰입감만큼은 대단했다.
이야기의 중심에는 퓌순과 케말이 있다. 그리고 케말의 약혼녀 시벨.
케말은 시벨과 결혼을 약속한 사랑하는 사이다. 둘 다 부유한 집안으로 남부러울 게 없었다. 그러나 그들의 세계에 균열이 생긴다. 케말이 시벨에게 명품백을 사주고자(사실은 가품) 우연히 들른 가게에서 종업원이던 퓌순을 보고 한눈에 반하면서다. 케말은 그때부터 시벨을 두고 자신의 마흐메르트 아파트에서 퓌순과 사랑을 나눈다. 하지만 그와 동시에 시벨과의 인연도 놓지 않고 약혼식까지 치른다. 이에 충격을 받은 퓌순은 어느 날 갑자기 사라지고 케말은 퓌순을 찾아 헤맨다.
소설에서는 케말이 퓌순과 사랑을 나누면서 얼마나 행복해하고 황홀감에 취하는지 상세히 묘사가 되어있다. 드라마는 몇 줄의 대사로 처리되어서 아쉽긴 하지만 영상이 선정적이다. 처음엔 그래서 케말이 시벨과 약혼 생활을 이어가지도 못하고 시벨과 결혼도 포기를 해서 퓌순을 진심으로 사랑하는 줄 알았다. 케말은 약혼에 충격을 받고 도망간 퓌순 곁을 8년간이나 지키면서 그녀가 이혼할 때까지 기다린다. 케말도 이제 퓌순과 결혼하겠다고 했다.
그런데 충격적인 건, 케말과 퓌순이 결혼 전 떠난 유럽 여행에서 결혼식 전에는 절대 관계를 갖지 않겠다는 원칙을 깨고 둘이 사랑을 나눈 다음날, 퓌순이 이제 나랑 결혼 안 할 거지?라고 묻는 말에 케말이 당연하지라고 말하는 장면이다. 퓌순은 바로 “죽이고 싶네.”라고 답변한다.
그 순간, 그의 8년은 사랑이 아니라 집착이었음을 깨달았다. 그는 퓌순을 원했지만, 그녀와 함께 책임질 삶은 원하지 않았다. 사회적 체면과 계급의 시선을 끝내 버리지 못한 것이다.
사실 드라마에는 안 나오지만 소설을 읽다 보면 케말이 고등학생 시절 매음굴(사창가)에 다녔다는 대목도 나온다. 나는 남성 작가인 오르한 파묵이 왜 이런 식으로 소설을 썼는지 이해하기가 힘들었다. 나는 문득, 사랑이라는 이름 아래 남성의 욕망이 얼마나 쉽게 미화되는지 의심하게 됐다.
또한, 이 소설과 드라마는 1970~80년대 튀르키예의 상류층 문화와 혼전순결이라는 엄격한 가치관을 배경으로 한다. 시벨과 퓌순은 둘 다 케말에게 처음을 내어준다. 하지만 케말은 그 둘 다 결국에 책임지지 못했다. 그러면서도 케말은 시벨과 퓌순에게 계속해서 사랑한다고 말한다. 케말뿐만 아니라 그의 아버지 또한 사랑하는 여인을 두고 집안 좋은 여자와 결혼했다.
그의 마지막 독백은 더욱 충격적이다.
“나는 지극히 행복한 남자였다고 써달라.”
아니, 본인은 행복했을지 몰라도, 두 여자의 인생이 망가졌잖아. 난 진짜 마지막 드라마 엔딩 대사를 들으며 뒷목을 잡아야 했다. 나는 격정적인 사랑 이야기를 기대했지, 타인의 삶을 무너뜨리면서도 스스로를 순수하다고 믿는 남자의 자서전을 보고 싶었던 건 아니었다.
나는 그래서 한 가지 결론에 도달했다. 퓌순과 케말이 정열적으로 사랑에 빠진 것과 달리 나는 앞으로 누군가를 만난다면 그 사람의 인품을 먼저 봐야겠다고. 사랑은 위험하고, 도발적이고, 한순간 인생을 뒤흔들 만큼 강렬할 수 있다. 《안나 카레니나》의 안나처럼, 사랑은 삶을 파괴할 만큼 치명적이기도 하다.
아무리 뜨겁게 사랑한다 해도, 그 사람이 나를 어떻게 대하는지, 무엇을 선택하는지, 어떤 책임을 지는지가 더 중요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한 번뿐인 생을 사랑에 목숨 걸기보다 잔잔하고도 편안한, 모두에게 축복받는 사랑을 해야겠다는 마음이 들었다.
"오르한씨 잊지 마세요, 소설은 꼭 이렇게 끝나야 합니다.
모든 사람이 알아주었으면 합니다.
내가 아주 행복한 삶을 살았다는 것을."
https://youtu.be/vyX2652ALn0?si=B1jPDFR1vIGKxlrj