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재가 녹아가는 동안에도 남는 것

제12회 김유정문학상 수상작, 한강 작가의 <작별>

by 루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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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글에는 소설의 줄거리와 결말이 상당 부분 포함되어 있습니다. 읽는 데 참고해주세요.




무엇이 그녀를 눈사람으로 변하게 했을까? 이것은 단순한 환상이 아니라 삶의 고단함이 한 존재를 지워버리는 은유처럼 느껴졌다. 그녀는 한겨울 천변 벤치에서 잠깐 잠이 들었다가 깨어보니 자신이 눈사람으로 변해있는 모습을 발견한다. 심사평대로 흡사 프란츠 카프카의 <변신>을 떠올리게 한다. 그러나 카프카의 변신에서는 갑충으로 변한 그레고리가 흉측하고 불결하게 묘사되는 반면, 한강 작가의 <작별> 속 그녀는 서글프고 애절하게 느껴진다. 그건 그레고리는 벌레로 변신하고 가족 모두에게 버림받은 반면, 이 소설 속 그녀는 눈사람으로 변한 뒤에도 사랑해 주는 연인과 아들이 있어서이기 때문인 것 같다.


그녀의 남자친구는 7살 연하로 회사에서 만난 사이다. 그녀의 남자친구는 인턴과 회사생활을 반복하다 현재는 실업 상태이다. 그녀도 그녀의 남자친구가 인턴을 그만둔 뒤 2개월 뒤 권고사직을 당했다. 그런 힘겨운 생활 때문일까. 그녀는 집으로 돌아가는 지하철 안에서 자신이 사물처럼 느껴지기 시작했다. 이제는 자신의 노후가 걱정되기 시작한다. 이런 마음이 그녀를 눈사람으로 변하게 한 걸까?


소설이 현실감 있게 다가왔다. 그녀가 친구의 교통사고 사망 소식을 듣고 자신의 안위를 걱정한 것처럼 나도 이 소설을 읽으니 문득 나는 언제까지 일할 수 있을까? 이런 생각이 들었다. 내가 병에 걸리거나 사고가 나면 직장을 다닐 수 없을 텐데…. 그녀가 자주 악몽을 꾸는 것처럼 불안한 생각에 잠식당하고 싶지 않다. 나는 그러한 생각들로부터 원천 차단하고 싶다. 한없이 부정적인 생각에 사로잡히면 현재를 살 수가 없다. 어쩌면 자신이 내뱉은 말이 현실이 되어 돌아올지도 모른다. 그래서 나는 항상 긍정적으로 생각하고자 한다. 내가 <연금술사>란 소설을 좋아한 이유도 같은 이유다. 간절히 소망하면 온 우주가 도와줄 것 같았다.


하지만 소설의 묘미는 내가 살아보지 못한 삶을 살아보게 한다. 내가 이 소설 <작별> 속 그녀처럼 이런 어려움을 겪게 된다면 어떨까란 생각은 해볼 수 있다. 갓 돌 지난 아기의 환한 웃음을 보지 못해도, 사랑하는 연인과의 입맞춤을 하지 못하더라도, 어쩌면 아무 풍랑이 없는 지금 내 삶은 참으로 고요하고 안락한 순간이 아닐 수 없다는 생각이 든다. 이 소설처럼 결혼하고 아이가 생기고 이혼을 하고 직장이 없는 연인이 생긴 상태에서 권고사직까지 당한다면 그야말로 절망의 도가니일 거란 생각이 든다. 결국 이 소설이 건드린 것은 예측 불가능한 삶에 대한 근원적 불안이었다.


그렇기에 삶을 대비하기 위해 준비한다고 다짐해 보아도 불현듯 교통사고처럼 닥치는 불운을 피한다는 게 정말 가능할까? 그런 생각이 들었다. 우리의 앞날은 누구도 알 수가 없다. 어쩌면 저마다 모든 인생의 결과는 행운과 불운의 총합일 뿐이다. 그래서 이 소설이 더 아리게 다가오는 것 같다. 이 소설 속 그녀가 원해서 그런 삶을 살게 된 것이 아니니…. 그런데도 나는 내 인생을 희망차게 그려보고 싶다. 이 소설처럼 은은한 슬픔으로 가득 채운 삶은 거부하고 싶다.


나는 이전에도 한강 작가의 소설을 읽다가 그만둔 적이 있다. 너무 아프고 가슴이 무너져 내릴 것처럼 끔찍한 장면이 있어서다. 이번에 읽은 <작별>은 김유정 문학상을 받을 만큼 작품성을 인정받고 의미 있는 작품이다. 하지만 나에게는 너무 가슴 아픈 소설이었다. 삶의 고단함에 지쳐 눈사람으로 변해 녹아 사라진다니…. 그럼에도 이 작품은 슬픔을 묘사하는 소설이 아니라 존재가 사라져 가는 과정에서도 사랑이 마지막까지 남는다는 이야기였다.


어쩌면 내 마음을 이렇게 너무 아프게 울렸다는 것은 그만큼 굉장히 뛰어난 작품이란 것을 의미한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렇기에 소설을 읽고 나서 감정을 붙잡기가 힘들다. 현실의 사람들은 이 소설보다 훨씬 낙관적이고 행복하길 바란다.


https://youtu.be/4POtvDDCeng?si=FYdOJdSiVvQgiDI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