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은 본지 오래되어서 기억이 가물가물하지만, <브루스 올마이티>라는 영화를 보면서 신도 참 고달플 거란 생각이 들었다. 전 세계 수많은 사람들이 매일같이 기도를 올리고, 저마다의 소원을 말하고 있을 테니까. 나도 가끔씩 하느님께 내 소망목록을 기도드리곤 한다. 하지만 기도에 대한 강의를 들으니 청원기도는 좋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보다는 진심으로 세상을 위한 기도가 좋은 것 같다.
그럼에도 나도 가끔 정말 신이 있는 게 맞나 의심이 들 정도로 삶이 고통스러울 때가 있다. 사랑하는 사람이 세상을 떠날 때, 지독한 상처로 괴로울 때, 내가 왜 이렇게 아파야 하나하는 생각이 들 때 주로 그런 것 같다. 또한 나를 넘어서 전 세계에 전쟁이 발발하거나 극악무도한 사건이 뉴스에 보도될 때 주로 그런 생각을 한다.
그래서 성경공부를 꾸준히 하다가 잠시 멈칫하게 됐다. 탈출기를 읽는데 모세가 홍해를 가르는 기적이나 이집트의 백성들에게 설교하는 장면에 흥미를 잃었다. 나는 창세기에서 요셉의 이야기는 너무 깊이 와닿았다. 그건 아마도 내가 비슷한 경험이 있다고 느껴서일 것이다. 어쩌면 내가 인생경험이 좀 더 풍부해져야 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결국엔 신의 존재를 의심의 여지없이 받아들이게 된다. 밤에 꿈꾸다 그리운 사람을 만나면 신이 전해주는 메시지 같다. 아름답게 계절을 물들인 봄꽃들을 보면 신이 주신 선물 같다. 세상엔 이해할 수 없는 고통도 많지만, 그 고통을 기쁨으로 바꾸게 해 주시는 것도 하느님의 존재란 생각이 든다. 예수님도 하느님의 아들로서 백성들의 죄를 대신 갚기 위해 세상에 태어나셨다. 인간들의 죄는 하느님이 계획하신 게 아니지만 그 죄의 고통 속에서도 우리들을 보호해 주고 지켜주고 함께 해주시는 건 신의 손길이다.
나는 무교 집안이라 신앙이 자주 흔들리고 배움이 쉽지 않고 쉽게 포기할 때도 있고 어려움을 겪고 있기도 하지만, 이 또한 모두 자비로운 신의 뜻이라고 생각한다. 누군가를 손쉽게 이해하는 방법은 그의 신발을 신어보고 비슷한 경험을 하는 것이다. 나는 테레사 수녀 같은 성인은 되지 못할지라도 나처럼 신앙이 없고 방황하는 이들에게 언젠가 한 줄기 빛처럼 작게나마 손을 내밀어주고 싶다. 레미제라블의 미리엘 주교처럼 잘못된 행동을 하는 이들에게 따스한 사랑을 전해주고 싶다. 이런 게 바로 신이 내 편이라는 증거라고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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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의 자녀라는 책임을 받아들인 다는 것은 삶이 당신에게 제공하는 최상의 것을 받아들인다는 뜻이다. /스텔라 테릴 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