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의 성적 호기심
9년 전, 컴퓨터로 업무를 보고 있는데 우리반 학생이 하교 후 다시 교실로 왔다. 옆에서 뭘 그리 재잘재잘 떠드는지. 대꾸해주다가 다시 컴퓨터 화면에 시선을 고정하니 칠판에 ‘선생님은 S라인’이라고 귀여운 흘림체로 써 내려갔다. 한창 사춘기에 예민한 감수성을 지닌 6학년 여자아이라 그런지 스물일곱 어린 여자 선생님의 몸매에 관심이 갔나 보다.
누군가는 예의 없는 아이라고 생각할지도 모르지만 사실 이 정도는 그리 심한 것도 아니다. 요즘 고학년 학생 중에는 더 심한 성적인 말들을 퍼뜨리는 아이들도 많고 관심도 지대하다. 빠르게 디지털화된 세상 속에서 유튜브나 온라인상에서 쉽게 무분별한 정보를 접하기 때문에 어린이들은 쉽게 걸러내지를 못하고 안 좋은 영향을 받는 경우가 많다. 이러한 상황을 인지했을 때 교사가 더 흥분해서 놀라거나 심하게 다그치면 학생은 더 어긋난다. 고등학교 교사인 친구는 남학생들의 성적인 농담에 더한 수위로 응답하며 맞받아친다고 한다. 영화 <선생 김봉두>에 나오는 순박한 아이들은 요즘 시대에 찾아보기가 힘든 것이 현실이다.
그렇다면 변화한 시대에 맞게 교육도, 교사도 변해야 하지 않을까. 다섯 살 어린 나이에 유치원에서 남자아이가 갑자기 나를 끌어안고 볼에 뽀뽀했다. 그때의 충격은 아직도 기억에서 지워지지 않는다. 그리고 초등학교 고학년 시절에는 같은 반 남학생에게 성추행을 당해 동창회는 절대 가고 싶은 마음이 없다. 대학생 시절에도 원하지 않는 접촉을 많이 당해 불쾌한 기억으로 남아있다. 사람들은 이런 피해 사실을 호소하면 여자를 꽃뱀으로 몰고 가며 죄책감을 심어주고 원인 유발자라며 2차 가해를 한다. 구구절절 공감하며 읽은 조남주 작가의 소설 <82년생 김지영>은 많은 남성들로부터 비판을 받았다. 아직도 여성들은 웅크리고 목소리를 내지 못하며 피해를 당해도 참는 경우가 훨씬 많다. 어쩌면 그 모든 문제의 원인은 유교문화의 영향을 받아 숨기기에만 급급했던 성교육의 부재가 일탈로 이어진 게 아닐까. 2년 전 나다움 어린이책의 성교육이 맹비난을 받은 것을 지켜보며 아직 우리나라는 갈 길이 멀구나 싶었다.
급진적인 것은 불편함을 갖게 한다. 과격한 페미니스트가 공격받는 이유도 그것일 것이다. 자유연애를 주장했던 신여성 나혜석이 행로병사한 것도 시대의 이해를 받지 못했기 때문이다.
중요한 것은 학생들에게도 꾸준히 타인을 함부로 침범해서는 안 된다는 것과 또한 반대로 침해를 당했을 경우 당당히 싫은 표현을 할 수 있는 용기를 길러줘야 할 것이다. 학생들의 억눌린 성적 호기심이 엉뚱하게 담임교사나 주변 친구들에게 가지 않도록 우리 사회가 개방적인 풍토로 변해야 하지 않을까도 생각하는 바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