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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이 영그는 아이들

그리움이 추억이 되고 사랑이 되고 존경이 되었으면

by 루비

달콤 쌉싸름, 그 해의 시작은 바로 그렇게 기억될 만하다. 탐스런 빨간색에 한 입 깨물어보지만 이내 입 안에서 순식간에 오도독 소리를 내며 터져버리는 석류알처럼


때는 2013년 2월, 산골에서 처음 도시(그럼에도 외곽지역이긴 했지만)로 나왔을 때로 부푼 기대감과 함께 새 학교 새 교실을 청소하고 있을 때였다. 운동장에 세워져 있는 알록달록 놀이기구들과 잔디밭에 흡족해하며 열심히 교실 속 먼지를 청소하고 있는데 여자 아이 두 명이 교실 주위를 기웃거리고 있는 게 아닌가. 무슨 일일까 싶어 문 밖으로 나가니 선생님이 누군지 궁금해서 살펴보는 중이라고 하였다. 담임선생님이 누군지 미리 보러 온 아이들, 나보다도 커 보이는 체구에 밝게 웃는 모습이 예뻐 보여 긴장되면서도 잘해나가야지 속으로 다짐하였다. 선생님만큼이나 아이들도 새 선생님에 대한 호기심과 설렘이 강하겠구나 생각하였다. 처음 맡는 6학년이라 좀 더 어깨가 무거웠고 5학년은 해 본 적 있지만 주변 선생님들로부터 6학년의 특성을 익히 들어온 터라 시작부터 그 책임감이 남달랐다. 시작은 그렇게 긴장되면서도 한편으로는 너무나 쉽고 빠르게 지나가는 시간이기도 하다. 희미한 영사기 속 필름의 흐름처럼.


무지갯빛을 넘어온 우주의 오묘한 색을 모두 발산하는 각양각색의 아이들


첫날, 초롱초롱한 모습으로 담임선생님을 쳐다보는 아이들을 나는 한 명 한 명 모두 사진으로 담아주었다. 해맑은 미소 띤 얼굴들. 그러나 첫 만남에 대한 설렘과 기쁨도 잠시, 어느 학급이나 마찬가지겠지만 며칠 뒤부터 우리는 스스로 저마다의 색깔을 드러내며 마찰을 내기 시작했다.

"여기, 앞에서부터 쓸어야지."

"몰라요!"

나는 정말 소위 멘붕이었다. 선생님이 앞에서부터 쓸어보라 하는데 오히려 그 조그마한 남자아이가 나에게 역성을 내는 것이었다. 쉽지 않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또 다른 남학생은 정서적으로 불안하였으며 기초학력이 너무나 안 되어 있었다. 그 당시 내가 학력업무담당이었는데 교육청에서 지원해주는 학습클리닉과 연계하여 일주일에 한 시간씩 공부할 수 있도록 해주었는데 다행히 만족해하며 잘 따라주었다. 그 외에도 작은 학교에서 남아도는 교실 세 곳을 15명이서 매일 돌아가면서 청소하며 일어나는 실랑이, 그 전해부터 있었던 남학생간의 서열싸움, 여학생 사이에 있던 어디서 시작됐는지를 모를 따돌림까지 참으로 다양한 문제들이 누가 더 힘이 센가 겨루기 하듯이 고개를 들이밀고 있었다.


청소는 이 방법 저 방법 쓰다가 결국 매일이 아닌 하루씩 번갈아가며 청소하기로 했다. 어차피 유휴교실이라 매일 쓰는 건 아니어서 그게 더 낫겠다 싶었고 필요시에만 재빨리 가서 청소를 하였다. 그 외 문제들은 학급 내외 활동을 하면서 함께 하나 됨을 통해 해결해나갈 수 있었던 듯싶다. 매일 2교시 마치고 있었던 스포츠클럽 활동, 사운드 오브 뮤직 영어 동극 대회 출전, 교내 1인 1 악기 노래 대회 출전, 함께 했던 1박 2일간의 수학여행~ 그 어느 것 하나 빠짐없이 우리 반 14명과 함께 똘똘 뭉쳐 서로가 서로에게 힘이 되어 주었다. 바쁜 만큼 힘들었지만 또 그만큼 보람 있었던 시간들이었다. 영어동극 대회는 비록 아쉽게 상을 못 탔지만 교내 1인 1 악기 노래대회에서는 우수상을 받았다. 우리는 마법의 성을 함께 불렀는데 그 전해에 했던 합창 업무와 한창 듣고 있었던 합창 및 지휘 연수가 많은 도움이 되었다. 노래로 하나 되는 하모니가 참으로 뜻깊고 정감 가던 시간이었다. 다년간의 합창 연수로 배운 노래실력을 보여주자 모두들 우와 하며 쳐다보고 좋아해 주었다.


울며 웃으며 함께 했던 햇병아리 선생님과 아이들


우리 반 6학년 2반은 겨우 스물일곱 살에 만난 13살의 14명 아이들이지만 그만큼 가깝고 더 애정이 가는 그런 학생들이었다. 경기도에서 온 나는 가끔 사투리를 못 알아들을 때가 있는데 반 아이들과 누군가가 가져온 자두를 먹다가 한 아이가 시그럽다고 하는 것이다. 나는 조용한데 뭐가 시끄러우냐고 하니 시다는 뜻이라는 것이었다. 자두를 맛있게 먹으며 한참을 웃었던 기억이 난다. 하루는 학생들이 진로 문제 관련해서 고민이 많은 것 같아서 맹모삼천지교(孟母三遷之敎)에 대한 고사성어를 풀이해주었다. 그런데 갑자기 아이들이 깔깔깔 웃는 것이었다. 맹자의 이름이 웃기다는 것이었다. 고등학교 3학년 때 열심히 배웠던 윤리과목을 이럴 때 써먹는구나 싶어 나는 아는 사상가들은 다 불러보았다. 공자, 맹자, 노자, 장자, 순자. 다 모르냐고. 이 단순한 이름 나열에 아이들이 자지러지게 웃었다. 또 한 번은 영어시간이었다. 듣고 말하기를 해야 하는데 갑자기 CD플레이어가 되지 않아 내가 그냥 직접 대본을 읽어주었다. 그리고는 남녀 목소리를 바꿔서 해주었다. 그랬더니 또 신나서 웃는 것이었다. 나는 유머감각이 넘치는 사람이 아닌데도 이런 식으로 공부시간에도 재미있게 해 줄 수 있다는 게 기뻤다. 얼마나 학습에 지치고 치여 사는 요즘 아이들인가 싶어서 말이다.


이건 거의 학년 초에 있었던 일이다. 어느 날 내 책상 밑에 가방과 함께 넣어두었던 화장품 파우치가 통째로 사라지는 사건이 있었다. 말로만 CCTV가 있다고 하였지 짐작만 할 뿐 범인이 누군지 찾을 수가 없었다. 어쩔 수 없긴 하였지만 그렇게 유야무야 지나가게 되었다. 다음부터는 예방에 더 조심해야지 다짐하며! 그리고 좀 더 반 학생들과의 관계에 집중 해나가게 되었다. 우리 반 학생의 일인지, 다른 반 학생의 일이었는지는 분명한 증거가 없지만, 학생들과 사이가 좋으면 여러 가지 문제들도 많이 지워지리라 생각했으니깐. 그리고 정말 거짓말처럼 또 다른 비슷한 일이 일어났을 때였다. 우리 반 학생 두 명이 내야 할 숙제를 내지 않았고 난 이때가 기회다 싶어서 눈빛으로 다 알 수 있다고 하였다. 이미 우리들의 관계는 상당히 좋아진 후였다. 그리고 한 명 한 명 쳐다보며 눈빛을 교환하였고 그 두 명을 골라냈다. 그리고 이내 자신들 둘이 맞다면서 나를 정말 너무나도 신기하게 쳐다보던 아이들. 꺄르르르. (사실 나는 속으로 두근두근 거리며 정말 맞을까 불안해하고 있었다.) 이에 질세라 곧 나는, 교원정보소양 인증대회에서 1등 한 사실도 알려주었다. 그랬더니 우리 반에서 제일 컴퓨터를 잘하는 학생과 타자 대결을 해보라며 부추겼다. 그리고 500타~600타를 넘어서며 선생님이 이기자 모두들 인정해주는 아이들. 사실 속으로 팔씨름이 아니어서 얼마나 다행이라고 생각했는지. 그랬다면 난 그새 그 기에 눌려버렸을 것이다.


항상 웃기만 했던 건 아니다. 2학기 부반장이었던 한 학생이 다른 반과 시비가 붙어 수업 시작도 하기 전에 내내 툴툴거렸다. 책상 줄도 엉망이었고 교과서를 펴놓지도 않았다. 아주 더운 날이었는데 서로 화가 많이 난 상태였다. 그땐 나도 질 수 없다고 느꼈다. 그 학생을 위해서도 나를 위해서도. 그 학생이 책상 밑에 떨어진 책을 주워서 올릴 때까지 나도 물러서지 않았다. 그리고 몇 분이 지나서 그 학생은 책상 밑에 떨어진 책을 줍고는 죄송하다고 하였다. 사실 속으로는 우리 반 학생들이 모두 그 아이 편을 들면 어쩌지 하는 불안감도 있었다. 하지만 아이들은 언제나 선생님이 공정하게 대하면 수긍하는 착한 아이들이라는 것을 다시 한번 느끼게 되었다. 다른 반 친구와 있었던 일로 우리 반에서까지 문제를 일으키는 건 명백한 잘못이라는 걸 서로가 이해하고 받아들였던 듯싶다.


이런 일련의 사건들을 통해 버릇없이 구는 학생이 나오면 다른 학생들이 제지를 해주기도 하고 서로가 서로에게 힘이 되어주는 학급 공동체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변해갔다. 참, 그러고 보니 또 한 번은 우리 반 학생이 교실에서 공을 차다 뒷문 유리를 깨부순 일도 있었다. 난 너무나 놀라 어찌할 줄을 몰라하다가 학생들은 모두 물러서게 하고 옆반 선생님과 함께 뒷정리에 나섰다. 그리고 교감선생님, 교장선생님과 함께 이야기하여 처음인 이번만큼만 학교에서 보상해주기로 하여 얼마나 감사히 여겼는지 모른다. 그 학생도 나의 이런 노력을 알고 있을까.


그리움은 추억이 되고 사랑이 되고 행복이 되다


우리 반 여학생은 1학기에 전교회장도 하고 공부도, 영어도 곧 잘하는 등 뛰어난 면도 많았지만 친구들 관계에서는 힘들어하기도 하였다. 수학여행 때는 여학생이 홀수인 우리 반의 특성상 더 챙겨주기도 하였는데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고자 선택한 것이 단막 드라마 한 편을 함께 보는 것이었다. 바로 전해에 신규 선생님을 통해 알게 된 KBS 단막 드라마였는데 여학생 간에 일어나는 알력 싸움 및 따돌림 문제를 2편으로 나눠 집중 조명한 드라마였다. 중학년 할 때는 안 맞는 느낌이 있었는데 확실히 고학년이라 그런지 남달리 집중하여 보고 서로를 이해하려는 마음가짐을 나누는 걸 보니 잘 보여주었구나 싶었다. 그 외에도 따돌림과 관련된 이야기책 만들기 활동을 하였는데 많은 효과가 있었기를 바란다. 졸업하고도 딱 한번 그 학생에게서 울면서 힘들다는 전화가 왔었는데 다행히도 지금은 다시 잘 지내고 있다고 한다. 그런 일련의 경험들이 학생들에게 더 관심 갖고 다가가게 하는 원동력이 되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공부만큼 중요한 게 아이들이 행복하고 바르게 자라는 거니깐.


그러고 보니 빼빼로데이가 생각난다. 우리 반은 빼빼로데이를 통해 더 끈끈해질 수 있었다. 이미 국어 토론 시간에 빼빼로 데이는 나쁜가에 대해 서로 이야기를 나눈지라 우리는 흔쾌히 이 날을 기념하기로 하였고 난 근처 백화점에 들러 학생들에게 줄 사탕과 먹을거리를 몇 가지 사 왔는데 우리 반 학생 또한 친구를 위해 여러 가지 먹을 거를 사 왔었다. 그중에 기억나는 것이 김을 갖고 온 학생이었다. 무언가 주고 싶은 게 있어 가져왔나 본데 주섬주섬 꺼내는 그 모습이 어찌나 마음이 짠하던지.


또한 어느 날 갑자기 도착한 피자 10판. 우리끼리 먹기에는 너무 많아서 단 두 반이었던 동학년과도 나눠먹었다. 한 때는 수학여행에도 가지 않겠다고 했던 학생이었는데 점차 웃음을 찾고 친구들과 잘 지내는 모습마저도 부모님께서는 기특했었나 보다. 나중에 졸업식 때 다시 뵈었는데 어릴 적 추억을 상기하며 감사하다고 말씀해주시는 부모님 덕분에 교사로서 나 또한 자긍심과 부족한 나를 더 큰 사람으로 이끌어주시는 점에 큰 감사함을 느꼈다.


학예회 때는 나보다 우리 반 학생들이 더 실력 발휘를 했던 듯하다. 나는 대학 때 동아리에서 썼던 대본을 가져와 아이들과 라디오 극장을 하자고 하였고 아이들은 흔쾌히 동의했다. 한 때 인기 프로그램이었던 미녀들의 수다를 각색한 공주들의 수다. 디즈니에 나오는 동화 속 공주 옷을 입은 우리 반 여학생들의 모습이 어찌나 예뻐 보이던지. 그리고 또 다른 팀은 한창 개그콘서트에서 유행 중인 콩트를 준비해와 우리는 손쉽게 두 가지를 준비할 수 있었다. 이때만큼 우리 반 아이들이 자랑스러웠던 순간도 없었던 듯하다. 저마다 자신만의 능력을 발휘하며 실력을 한껏 뽐냈던 아이들. 평소 수업할 때는 몰랐던 또 다른 모습들을 발견할 수 있었던 좋은 시간들이었다.


훌륭하지 않았더라도

함께 묻었던 타입캡슐처럼 오래오래 기억되기를


어 느새 시간은 흘러 흘러 우리는 졸업공연을 앞두고 있었다. 여자팀 대 남자팀으로 나눠서 했는데 여자팀은 영화 써니의 주제곡에 맞춰 춤을, 남자팀은 송대관의 노래에 맞춰 춤을 추었다. 지금 생각하면 부끄러운데 질서 정연하고 매력 있던 여자팀과 다르게 남자아이들은 자발적으로 할머니 바지(일명 고무줄 바지)를 빌려와 입고 마지막까지 우리에게 웃음을 주어 슬픈 졸업식을 웃으면서 마치게 되었다. 교실에서 마지막에 꽃다발을 건네준 몇몇의 아이들에게 제대로 말을 전해주지 못한 게 아직도 못내 아쉽다. 이젠 연차도 든 만큼 좀 더 감동적인 이야기를 들려줄 수 있도록 더욱 계발해보아야겠다. 한 가지 아쉬운 점이라고 해나, 슬프고도 웃긴 이야기라고 해야 하나, 졸업식 전날 대청소할 때 아이들이 내 교실환경물품을 모두 내다 버린 사건이었다. 다시 만들어야지 생각은 했지만 내가 잠시 한 눈 파는 사이에 모두 뜯어서 버리다니. 아이들의 시각으로 봤을 땐 당연한 거겠지라고 긍정적으로 생각하기로 고쳐먹었다.


교직에 첫발을 내디딘 지 얼마 안 되었을 때 어느 책에서 읽었던 문구 중에 이런 말이 있었다. 『학생들은 등교 첫날 최상의 존경을 보여준다. 등교 첫날 학생들은 아무 조건 없이 기꺼이 존경을 표한다. 이 고마운 선물에 어떻게 답할 것인지 결정하는 것은 바로 교사 자신이다. 훌륭한 교사는 1년 내내 그 고마운 존경심에 자양분을 주며 키워 나갈 줄 안다.』- 훌륭한 교사는 무엇이 다른가, 토드 휘태커 중에서


나는 과연 어떤 선생님이었을까를 되물어보면 참으로 부족하고 배워야 할 점이 많은 선생님이다. 그럼에도 나의 제자들은 나와 함께 웃고 떠들며 1년 동안 많은 것들을 함께 이루어나갔으며 감사해할 줄 아는 고마운 아이들이다. 그에 보답하기 위해서라도 앞으로도 교사로서의 길에 부끄러움이 없도록 끊임없이 노력하는 선생님이 되고자 한다.


참으로 고맙던 2013년의 나의 6학년 첫 제자들, 어느새 중학교 3학년으로 또 최고 학년이 되었네. 20년 뒤에 함께 열어보자 했던 타임캡슐을 기억하고 있으려나. 그때는 다들 저마다의 꿈을 이루며 멋지게 살고 있겠지! 설사 이루지 못한 꿈이 있더라도 추억과 과거의 시간이 함께여서 하루하루가 행복한 너희들이 되었으면 좋겠어. 중학교 마무리 잘하고, 또다시 고등학교로의 새로운 도약 멋지게 준비해나가길! 선생님이 너희들을 응원할게! 파이팅!




*2016년에 적어두었던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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