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이브 생 로랑>을 보며

영화와 책에서 위로받다

by 루비

집으로 돌아온 은지는 늦게까지 잠을 이루지 못했다. 수영장에서 오랜만에 몸을 씻자 상쾌한 기분이 들었다. 문득 엄마가 없었다면 나는 어떻게 됐을까란 생각이 들었다. 지독한 괴롭힘, 사람들의 배척, 걷잡을 수 없이 불어난 오해. 이루 말할 수 없는 절망감과 상실감. 은지는 2년 전 직장에서 사람들이 전혀 사실과 무관한 말들을 기정 사실화하며 자신에 대해 수군대고 있다는 것을 직감하고 머리가 빙빙 도는 것 같은 어지러움을 느꼈다. 레밍이 절벽 아래 바다로 뛰어들어 집단 자살을 하듯 자신도 당장 큰 도로로 나가 차에 뛰어들고 싶은 충동을 느꼈다.


그랬던 은지는 머릿속 주지화로 심각한 고통과 상처를 극복해내기 위해 애썼다. 그렇게 조금씩 조금씩 버티다가 결국 더는 버틸 수 없을 만큼 상처를 입고 무너져 내렸을 때 정신건강의학과를 찾아간 것이었다. 비록 그곳에서조차 따뜻한 위로와 쉼을 기대할 수는 없었지만 은지는 한 가지는 깨닫게 되었다. 자신은 확실히 어딘가 남다른 구석이 있으며 그것은 지금처럼 불행일 수도 있지만 커다란 축복의 원천일 수도 있다는 것을. 높은 지능, 그리고 뛰어난 감수성과 다재다능함은 사람들이 은지를 공격하는 주된 원인이기도 했지만 좋은 사람들과 함께 할 때는 능력을 발휘하고 날개를 단 듯 자유롭게 날아갈 수 있는 큰 힘이 된다는 것을.


은지는 그날로 각종 책과 영화를 찾아보기 시작했다. 은지는 천재적인 디자이너 이브 생 로랑에 관한 영화를 보며 자신처럼 사회에 부적응하는 모습을 발견했다. 하지만 그에게는 그를 수호천사처럼 지켜주는 피에르 베르제가 있었다는 것을 알고 부러움을 느꼈다. 그리고 자신에게도 이브 생 로랑의 연인이자 사업 파트너였던 피에르 베르제같은 사람이 있었으면 좋겠다는 소망을 품게 되었다. 자신의 결점을 보완해주고 함께 같은 방향을 바라보며 꿈을 향해 달려가 줄 사람. 은지는 스무 살 때부터 늘 그런 사람을 꿈꿔왔지만 기대는 번번이 좌절되어 물거품이 되었다. 은지는 자신은 물거품이 되어 사라지는 인어공주처럼 번번이 실연만 당하는 운명이냐며 세상을 저주했다. 지금도 여전히 그런 절망 섞인 우울감에 몸서리치며 괴로워하고 있다. 이런 은지에게도 정말 희망이란 게 생기기는 할까? 은지는 자신의 미래가 너무나도 궁금했다. 하지만 은지는 점쟁이가 아니니 미래를 알 수 없었다. 그런 은지에게는 언제나처럼 영화와 책이 큰 위로가 되었다.


은지는 수영장에서 돌아온 그날 밤 꿈을 꿨다. 자신이 자신을 괴롭혔던 모든 사람들로부터 박수갈채를 받는 꿈이었다. 뚜렷하진 않지만 희미한 장면 너머로 은지는 베스트셀러 작가가 되어 있었다. 어렴풋이 자신이 유명한 소설가가 되어 있는 듯 보였다. 은지는 꿈을 꾸면서도 너무나 행복했다. 은지는 눈을 감고 자면서도 미소를 띠며 입꼬리가 올라가 있었다. 행복해하는 은지를 은지 엄마는 눈물을 훔치며 바라보고 있었다. 겉은 냉정하게 쏘아붙이는 은지 엄마지만 은지 엄마는 속으로는 하염없이 울고 있었다. 어쩌다 자신의 딸이 그리 인생살이를 고달파하는지 알 수 없어서 답답했다. 하지만 이날 밤은 왠지 앞으로 잘 이겨낼 수 있을 것만 같았다. 한 치 앞도 모르는 세상이지만 은지 엄마는 직감을 믿어보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