웃다가 울다가
은지의 얼굴로 은은하게 햇살이 비추었다. 늦은 시간까지 잠을 잔 은지는 따스한 기운을 느끼며 조용히 기지개를 켰다. 어젯밤 꿈이 은지를 들뜨게 만들었다. 기분 좋은 행복감이었다. 꿈을 일기에 적어야겠다고 생각한 순간, 베스트셀러 소설가만 어렴풋이 기억에 남고 나머지 장면은 흔적도 없이 희미해졌다. 무슨 색 옷을 입었는지, 소설의 제목이 뭐였는지, 팬 미팅에서 무슨 말을 했는지 하나도 기억이 나질 않았다. 폴 매카트니는 꿈에서 들은 멜로디를 기억해내 렛잇비를 썼다던데 자고 일어나면 다 잊어버리는 나는 소설에 재능이 있기는 한 거야? 라며 의구심이 든 은지였다.
은지는 오랜만에 서울에 가고 싶어졌다. 왜일까. 그냥 그러고 싶었다. 그리고 어딜 갈까 고민하다가 지난번 KTX 잡지에서 본 윤동주 문학관이 떠올랐다. 은지가 제일 좋아하는 시는 윤동주의 <서시>였다. 암기를 못하는 은지도 <서시>만큼은 정확히 외우고 있었다. 성찰적이고 반성적인 고백을 담고 있는 시. 게다가 아름다운 시어들의 나열. 이상과 순수함이 당긴 정갈한 언어들이 마음을 울렸다. 어떻게 함축적인 시어의 나열만으로 이런 아름다운 내면세계를 표현할 수 있는 거지 놀라워하며 감탄했다. 은지가 식민지 시대에 태어났다면 이런 삶을 살 수 있을까 몇 번이고 생각해보았지만 자신은 그 시절에 태어나지 않음에 몇 번이고 감사할 따름이었다.
“일어났어? 아침 먹자.” 엄마가 불렀다. 엄마는 어려서부터 아침밥만큼은 절대 거르지 못하게 했다.
“오늘 메뉴는 뭐야?”
“은지 네가 좋아하는 순두부찌개.”
“역시 엄마야.”
은지는 매콤한 순두부가 아닌 멸치 육수로 맛을 낸 맑은 순두부를 좋아한다. 포슬포슬하고 부드러운 식감이 입 안에서 감돌 때면 세상에서 제일 행복한 은지였다.
젓가락으로 계란말이를 집어 입으로 가져가는데 갑자기 눈물이 났다.
“엄마…”
“왜 그래. 또…”
은지는 정말 자꾸만 왜 이럴까. 요즘 은지는 스스로가 확실히 제정신이 아님을 알 것 같다. 행복하다가도 서럽고 서글프다가도 날아갈 것 같다. 그냥 인생이 왜 이런지 잘 모르겠다. 실패한 인생 같다가도 무한한 축복이 기다리고 있을 것만 같기도 하다. 그러다가 다시금 한없이 추락한다.
막막하다. 두렵다. 딱 이 두 단어가 적확하게 들어맞았다.
그때 티브이에서는 드라마 예고편이 흘러나왔다. 가정폭력으로 정신병을 앓고 있는 유명한 작가와 역시 명의로 소문난 정신과 의사의 사랑 이야기를 담고 있다.
“어. 내가 좋아하는 노희경 작가의 드라마잖아.”
“노희경이 누군데…”
“왜 송혜교가 주연한 <그들이 사는 세상>과 <그 겨울 바람이 분다>를 쓴 작가.”
“아, 엄마가 젊은 사람들 드라마를 아나.”
풉. 이번에는 다시 웃음이 터져 나왔다. 은지는 그냥 이런 소소한 일상이 좋았다. 식탁에서 번지는 가족 간의 정담. 사랑. 친척간에도 왕래가 적고 피붙이라고는 엄마가 전부인 은지는 이런 엄마에게 더는 민폐를 끼치고 싶지 않았다.
‘내가 만약 일찍 결혼했다면 병에 걸리지도 않고 지금쯤 화목한 가정을 꾸려서 행복하게 잘 살았겠지?’
이런 생각이 들었지만 곧 도리질을 했다.
‘그렇다면 분명 또 다른 어려움들이 있었을 거야. 영화 <나비효과>처럼. 지금은 앞으로 어떻게 살아갈 것인지가 중요해.’
은지는 잠시 시큰둥해졌지만 서둘러 옷을 갈아입고 윤동주 문학관으로 갈 채비를 마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