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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이를 이야기로 설득하기

따사롭게 마음 어루만지기

by 루비

어린이를 이야기로 설득하기

따사롭게 마음 어루만지기


내 책장에는 읽다 만 <설득의 심리학>이란 책이 있다. 학교에서 선생님이나 어린이들을 설득할 때 도움이 될까 싶어 사서 봤지만, 읽다가 포기하고 말았다. 워낙에 자기 계발서를 안 좋아하기도 하고 내용이 머릿속에 쏙쏙 들어오지도 않았기 때문이다. 대신 오늘 이 글에서는 내가 좋아하는 이야기를 통해 우리반 어린이를 설득한 이야기를 적어볼까 한다.


우리반은 원적 학급에서 특별히 신청한 학생들만 특정 시간대에 수학하러 오는 특별학급이다. 지난번 체험학습과 달리 마지막 체험학습은 원적학급의 같은 반 친구들을 함께 초대하여 뮤지컬 공연을 관람하는 것으로 기획해보았다. 반 친구들은 서로서로 자기들도 가고 싶다고 환호한 모양인데, 우리반 한 아이가 자기는 많은 친구와 가고 싶지 않다고 딱 한 명하고만 가고 싶다고 했다.


원적학급 담임선생님께서는 설득하다가 포기하고 내게 그냥 한 명만 추가로 데리고 가자고 하셔서 나도 이야기해보겠다고 했다. 그리고 어떤 식으로 아이를 설득해나갈까 고민하다가 내가 주말에 읽은 토베 얀손의 연작소설집 중 <세드릭> 이야기를 소개하기로 마음먹었다. 아직 한국어에 아주 서툰 베트남 출신 학생이라 구글 번역기를 활용하여 이야기 요약본을 베트남어로 번역해주었다. 다행히 번역이 그리 엉망이지 않은지 아이는 술술 이야기를 읽어나가고 고개를 끄덕였다.

이야기의 줄거리는 이렇다. 세상의 온갖 진귀한 물건들만 수집하며 인생을 보내온 한 할머니가 고기를 먹다 뼈가 가슴속에 일자로 걸려 살날이 얼마 남지 않았다. 생각해보니 죽을 때 그동안 수집해온 물건을 하나도 가져가지 못한다는 것을 깨닫고 모든 물건을 친구들에게 나눠주기로 마음먹었다. 방안에 모든 물건을 남김없이 친구들에게 나눠주고 연회를 베풀고 신나게 웃는 과정에서 가슴속에 걸린 뼈가 툭 튀어나와 죽을 고비를 넘기고 행복해진다는 이야기다.


한국어로 소통하는 것이 쉽지 않아서 사실 아이가 얼마만큼 이해했는지는 정확히는 모르겠다. 하지만 계속해서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하는 걸로 봐서 마음속에 많이 와닿았던 것 같다. 친구를 많이 초대할수록 더 많이 행복해진다는 이야기를 곁들여줬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걱정되는 게 있냐고 물어보니 그렇다고 했다. 다문화 학생이라 짐작이 가는 것이 있었다.

“혹시 친구들이 여럿이서 가면 너만 소외시킬 것 같아 걱정돼?”

“(고개를 끄덕끄덕)”

“그건 선생님이 지켜봐 줄게. 짝을 지정해주고 따돌리지 않도록 도와줄게.”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끄덕)”

“그럼 친구 두 명만 더 데리고 갈까? 누가 좋을까?”

“00랑, 00요.”

“좋아. 가서 담임 선생님께 꼭 이야기하는 거다.”

이렇게 이야기가 마무리됐다. 결국 한 친구는 거절하고 한 친구가 더 함께 갈 수 있었다. 처음에는 완강하게 한 명만 더 데리고 가겠다던 아이가 마음의 문을 열어줘서 기뻤다. 다문화학생들은 ‘다문화’라는 구별 짓는 단어에서부터 일상생활에서까지 소외와 차별을 경험할 확률이 높다. 저학년보다는 고학년으로 올라갈수록 그런 현상이 심화된다. 애초에 ‘다문화’라는 단어도 ‘혼혈인 가족’이나 ‘국제결혼 가족’이라는 단어의 차별성에서 탈피하고자 널리 통용된 단어인데 이 역시 결국 차별을 조장하는 하나의 단어로 굳어진 것을 배제하기 힘들다.


학교생활을 하다 보면 학생도, 교사도 많은 어려움에 직면한다. 예전에는 통제와 처벌, 위협으로도 교육할 수 있었다면, 요즘처럼 인권 의식이 많이 성장한 시대에는 반발에만 부딪힐 뿐이다. 나도 내가 얼마만큼 잘하고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내가 좋아하고 잘할 수 있는 것에서부터 시작하여 학생들의 마음을 두드리고 싶다. 이야기는 내가 참 좋아하는 소재다. 일과 퇴근 후를 분리해야 숨 쉴 공간이 생긴다고 하지만, 좋아하는 것을 일에도 적용하면 일과 삶이 하나가 되면서도 즐겁게 일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든다. 앞으로 더 많이 배우고 나를 성장시켜나가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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