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이타니 겐지로의 책을 읽고
2007년, 대학생 3학년 때 작성한 글입니다. 다시 읽어보고 좋아서 가져왔어요. 하이타니 겐지로는 교사를 꿈꾸던 교대생 시절의 저에게 많은 영향을 준 작가이자 일본의 초등교사이셨습니다. ^^
아이, 어른, 가난한 사람, 부유한 사람.
이들은 모두 다 똑같은 사람일 뿐인데, 사회에서는 은연중에 차별이 존재한다.
학교에서 교사와 아이 간에 존재하는 차별.
일터에서 사장과 노동자 간에 존재하는 차별.
차별받는 사람. 또 그런 분위기를 조장하는 사람.
작가의 따뜻한 시선이 물씬 느껴지는 책이다.
전혀 몰랐었던, 하이타니 겐지로의 아픈 가족사, 슬픔, 고통들을 들여다보면서,
그러한 시련들을 극복하고 아름다운 깨달음의 과정으로 만들어낸 작가가 존경스럽다.
곧 교사가 될 사람으로서, 이 책은 나에게 많은 깨달음을 주었다.
상처받는 아이들, 어른과는 다르게도 많은 순수함을 간직한 아이들, 그 아이들의 따뜻한 마음을 소중히 감싸주고 싶다.
아이들의 창의성을 짓밟지 않도록, 더욱 노력하며.
교사란, 정말 아무나 할 수 있는 게 아니란 생각이 든다.
아무 고민 없이, 물 흐르듯이 그저 그렇게 살아온 사람이라면 더더욱 아이들에게 좋은 선생님이 되기가 쉽지 않을 것이다.
반드시 그런 것은 아니겠지만.
부유하고 화목한 가정에서 아무 걱정 없이 살아온 아이들도 있겠지만,
매일매일 두려움과 배고픔에 시달리며 온갖 시련을 다 겪으며 살아온 아이들도 있을 것이다.
그 아이들에게, 정말 친구 같은 선생님으로서 마음대 마음으로 다가가 진정으로 선생님을 믿고 따를 수 있도록 해야겠다.
상냥한 사람들. 그들의 마음을 짓밟아 마음에 씻을 수 없는 상처를 준 사람들.
왜 평화란 게 유지되기가 힘든 걸까. 그렇게 꼭 자기의 잇속을 위해서, 자국의 이익을 위해서,
정말 짐승만도 못한 짓을 저질러야만 했던 걸까.
슬프다. 사람 사는 이야기는 결국 다 같은 것 아닐까.
조그만 학교든, 사회든, 전 세계든. 약육강식의 세계.
하지만 어린아이들에게 우리는 가르쳐야 할 것이다. 그래도 아직은 어린아이의 순진무구함이 완전히 무시되는 병든 사회는 아니라고.
<책 속 밑줄 긋기>
지하의 사람들은 모두 상냥했다.
눈물이 마음속에서 울고 있습니다.
->표현이 참 멋지다.
그들은 야간 고등학교에 다닌다는 이유만으로 나를 뭔가 특별한 사람으로 대했고, 거기에서 쾌감을 느낄 만큼 나는 타락해 있었다. 나는 그 사람들에게 둘러싸여 있으면서도 그들에게 동화되려 하지 않았다. 어딘가 그들과는 다른 곳을 보고 있었다.
->나도 그런 적이 있었다. 나의 거만함, 어리석음에 고개 숙여진다.
인간의 상냥함이나 낙천성이 통하지 않는 사회는 분명 어딘가 심각한 병을 앓고 있다. 인간의 죄 가운데 가장 큰 죄는 다른 사람의 상냥함이나 낙천성을 흙발로 짓밟는 일일 것이다.
『거꾸로 나라
여기가 거꾸로 나라라면 재미있을 거야
부자가 가난뱅이고
돈 한 푼 없는 사람이 엄청난 부자야
도둑놈이 들어오면
'손 들어' 하지 않고
'발 들어' 해서
엉덩방아를 찧겠지
그리고 도둑놈이 돈을 줄 거야』
->일본의 어떤 초등학생이 지은 시. 나를 크게 한번 웃겨주었다. 재밌는 발상.
오키나와 말에는 '가엾다' 같은 동정적인 표현이 없다. 오키나와에서는 남의 고통을 이야기할 때, 그 고통을 함께 나누는 뉘앙스를 가진 '치무구리사(가슴 아프다)'라는 표현을 쓴다.
->가엾다는 위에서 내려다보는 느낌. 가슴 아프다는 같은 위치에서 공감해주는 것. 이런 작은 것 하나에서도 따뜻함을 느낄 수 있는 오키나와.
"교사는 외부에서 가해지는 차별에는 민감하지만, 교사 자신이 일상생활 속에서 만들어 내는 차별에는 너무나 둔감해요."
"참된 상냥함은 절망을 헤치고 나온 사람만이 지닐 수 있습니다."
선생들이 차례차례 일어나 아이들의 악행을 늘어놓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때 선생들은 생기가 넘쳤다. 나는 등줄기가 오싹했다. 이 사람들은 어떤 생각으로 인간의 슬픔을 바라보고 있을까. 긴 인생을 살아오면서 한 번도 절망을 맛보지 않은 사람들일까.
창의성 없는 교사의 빈약한 수업이 정말로 공부하고 싶은 아이를 공부하기 싫은 아이로 만들고 있다.
->조심해야겠다. 내가 준비한 만큼의 수업이 아이들의 생각을 차단하는 일이 없도록.
소크라테스가 말하는 '선'은 오늘날 도덕적 의미에서 선이냐 악이냐 따질 때의 선과 전혀 다르다는 점이에요.
소크라테스가 말하는 선이란 인간이 진정으로 원하는 것이며, 인간은 그 선을 얻어야만 비로소 만족할 수 있고 행복해질 수 있어요. 따라서 인간은 그것이 '선'이라는 것을 알기에 원하는 것이 아니에요. 가슴 밑바닥에서 무언가 진정으로 원하는 것, 바로 그것이 '선'이지요.
소크라테스가 모든 인간은 무지하다고 말할 때, 이 '무지'는 이 선에 대한 무지를 가리켜요. 인간은 자신이 진정으로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모른다는 거죠.
->소크라테스가 말하는 무지란, 지식의 많고 적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마음속에서 우러나오는, 자신이 진정으로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모르는 사람. 그저 그렇게 시간 가는 대로 아무 생각 없이 사는 것을 무지라고 말하는 것이 아닐까.
나는 오키나와에서, 그리고 아이들에게서 생명의 의미를 배웠다. 하나의 생명을 살리기 위해 다른 무수한 생명이 그 생명을 떠받치고 있다는 사상, 내 생명 또한 다른 생명을 떠받치고 있다는 사상이 인간의 성실함을 낳고 상냥함을 만들어 낸다는 것을 배웠다.
너희가 모르는 곳에
갖가지 인생이 있다.
너희 인생이
둘도 없이 소중하듯
너희가 모르는 인생도
둘도 없이 소중하다
사람을 사랑하는 일은
모르는 인생을 사랑하는 일이다
-<외톨이 동물원>중에서
->사람을 사랑하는 일. 미워하지 말자. 내 인생이 소중하듯이, 그들의 인생도 소중하다.
슬퍼하지 말자. 사람은 누구나 외톨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