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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루비 Mar 04. 2023

얼렁뚱땅 강아지 일기

나 강아지로 변신했어요

 나는 사람이다. 매일 출근을 하고 밥을 먹고 잠을 잔다. 이런 내가 어쩔 땐 너무 지쳐서 삶은 왜 이리 고단하지라고 생각하곤 한다. 그럴 때마다 귀여운 내 강아지 구슬이  덕분에 힘을 낸다. 하지만 정말 어쩔 땐 하루 종일 잠만 자고 싶다.


 구슬이가 너무 부럽다. 가끔은 구슬이와 내가 바뀌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한다. 산책도 필요 없으니 집 안에서 잠만 자고 싶다. 뼈다귀 장난감만 하루 종일 물어뜯고 싶다. 이런 생각을 하고 있는데 정말 기적처럼 자고 일어나니 내가 구슬이가 되어 있었다. 그리고는 내가 된 구슬이가 나를 계속해서 쓰다듬고 있었다. 내 몸에 붙은 꼬리는 프로펠러처럼 계속 움직였다.


 당황한 기색도 잠시, 나는 이내 즐겼다. 좋아. 이왕 강아지가 된 거, 이 순간을 즐기자고. 그렇게 난 집에서 잠만 잤다. 나 대신 내가 된 구슬이가 출근을 했다. 구슬이는 강아지였던 때처럼 새벽에 일어나 아침밥을 먹고 내가 일하던 디자인 회사에 일을 하러 나갔다. 그때부터 내 세상이었다. 온 집안이 내 차지였다.


 그렇게 며칠이 반복됐다. 처음 일주일은 좋았다. 그동안 밀린 잠을 실컷 잤다. 그런데 8일째 되는 날, 나는 너무 화가 났다. 구슬이는 나한테 복수라도 하듯 나처럼 나를 산책 한 번 시켜주지 않았다. 일에 치여 바쁘다고 했다. 나는 집 안에 있는 게 너무 답답했다. 손님들 올 때마다 꼬리를 살랑살랑 대며 인사를 하는 것도 귀찮았다. 내가 온 종일 하는 일이라곤 사료와 간식을 달라고 낑낑대는 일, 그리고 하루 종일 잠을 자는 일이었다.


 나는 너무 짜증이 났다. 그래서 구슬이가 출근할 때 신는 신발, 그러니깐 원래 내 신발을 잔뜩 물어뜯어버렸다. 그리고 아무 데나 오줌을 쌌다. 똥도 갈겼다. 그리고 점점 무기력해져 결국 일어나지 못했다. 구슬이가 나를 안타깝게 바라봤다. 나는 눈물을 글썽거렸다. 구슬이가 조용히 내게 입을 떼어 말했다.


 “난, 힘들고 지쳐도 자유로운 사람이 좋아. 어디든 갈 수 있는 사람이 좋아. 스스로를 지킬 수 있는 사람이 좋아.”


 그제야 깨달았다. 내가 애지중지 아낀 반려견, 구슬이는 사람이 없으면 살아갈 수 없는 나약한 존재였던 것이다. 난 바보처럼 내가 가진 자유와 소중한 몸의 가치를 모르고 한없이 약한 존재를 부러워했던 것이다. 그런 내가 너무나 부끄러웠다. 다시 사람으로 돌아가고 싶었다. 이런 내 마음을 아는지 천장에 구멍이 뚫리더니 억수 같은 비가 쏟아졌다.


 “이 가시나, 주말이라고 또 디비 잠만 쳐 자는 구만. 퍼뜩 일어나지 못해.”

 엄마였다. 야호! 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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