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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간제 교사 시절의 이야기

웃픈 추억

by 루비

교대생 시절 교생실습 기간을 제외하면 내가 맨 처음 교편을 잡은 것은 스물세 살이던, 기간제 교사 시절이었다. 4학년 때 임용시험에서 낙방한 나는, 재수공부할 비용을 마련하기 위해서라도 기간제 교사를 꼭 해야만 했다. 다행히 기간제 자리는 쉽게 구해졌다. 내 이력서를 보신 교감 선생님께서 매우 좋게 봐주셨기 때문이다. 난 그렇게 5학년 6반의 담임교사가 되었다. 3월 2일 개학 전, 나는 부랴부랴 학급운영에 관한 책을 사서 선배 교사들이 써놓은 노하우를 전수받기 위해 한 글자 한 글자도 놓치지 않고 읽어 내려갔다. 이렇게 노력하면 학생들은 나를 좋아하고 기뻐할 줄 알았다. 물론 처음 한 달 정도는 좋았다. 그런데 아니었다. 서서히 반이 무너지기 시작했다.


사실 나는 교대생 시절 거의 배운 게 없는 거나 마찬가지였다. 우리끼리는 교생 실습 8주 동안, 교대 4년 간 배운 것보다 더 많은 것을 배운다고 말한다. 그만큼 교대 커리큘럼은 실제 현장과 동떨어져있는 경우가 많다. 그리고 임용시험은 사설학원에서 막대한 비용을 치르고 교대 커리큘럼과 상관없이 따로 1년여간 준비하고 시험을 치른다. 국공립 초등교사가 되기 위해 교사들이 사교육을 받는 실정인 것이다. 일부 학생들은 강의를 몰래 불법으로 공유를 통해 팔다가 적발되기도 하고 임용공부 자료를 판다고 속이고 사기를 쳐서 수험생을 울게 만들기도 한다. 우리는 이런 아수라장에서 살아남아 교사가 된 것이다.


아무튼 나는 정식교사로 발령받은 건 아니지만 내 첫 반을 맡았다는 것에 기뻐서 학생들에게 정말 잘해주고 싶었다. 새파란 초임교사나 마찬가지여서 임용공부는 뒷전으로 미루고 매일 밤 10시까지 학교에 남아서 교실환경 정비며 학급운영, 수업 자료 제작, 생활지도 등을 위해서도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일부 학생들은 나를 열렬히 환호해 주었다. 그러나 일부는 점점 더 막 나가기 시작했다. 그리고 하루는 휴대폰을 하는 것을 제지하려 하자 내 손목을 때리고 도망갔다. 나는 그때 너무 아팠다. 그리고 창피했다. 교사인 내가 반 학생에게 맞다니 어떻게 이런 일이 있을 있나 자책했다. 그런데 요즘 뉴스를 보니 그 정도가 점점 심해진 듯하다. 그런데 곰곰이 생각해 보면 내가 학창 시절에도 그런 일은 있었다. 반항적인 친구들은 선생님에게 대들고 맞서 싸웠다. 선생님들은 혀를 내두르고 우리를 비난하거나 눈물을 보이시거나 아니면 더욱 거세게 우리를 혼내셨다. 특히 학생부장선생님들. 나는 학생부장처럼 카리스마 있는 외모는 아니었기에 무너지고 좌절하며 기간제 계약을 파기해야 하나 고민하기에까지 이르렀다.


이런 나를 붙잡아준 건 동학년 선생님이었다. 내 잘못이 아니라고 말씀해 주시고 더 힘들었던 시절을 이야기해 주시며 공감대를 형성하고 나에게 힘을 불어넣어 주기 위해서 애쓰셨다. 지금은 현장체험학습 한 번 가게 되면 안전문제 등 책임과 관련해서 걱정되는 게 많은데 그때 당시에는 쫄래쫄래 부장선생님들 따라 아이들과 함께 소풍 가듯 따라가는 나를 귀여워해주셨다. 내가 한 학기 기간제 교사를 마치고 여름방학식 날 마지막 인사를 건네자 교무실에서 교감선생님은 큰 박수를 쳐주셨던 기억도 난다.


그때 반 학생들 일부는 내가 1학기를 마침과 동시에 떠난다는 것을 알고 눈물을 훔쳤다. 1년 뒤에 내가 정식으로 임용고사에 합격하고 경북의 한 산촌마을에서 근무할 때는 그때 제자들에게서 여러 차례 이메일이 오가기도 했다. 그 아이들은 지금 어디서 무얼 할까? 13년이 지난 지금, 다행히 한 학생만이 지금까지 나와 SNS로 연락 중이다.


요즘의 교실붕괴 관련 뉴스를 보면 놀란 가슴을 쓸어내리곤 한다. 나도 바로 그런 교실을 겪어봤기 때문이다. 그런데 한편 이런 생각도 든다. 그렇게 망가진 학생들은 누가 만든 걸까? 순진무구하고 철없고 마냥 사랑받고 행복해야 할 아이들이 그런 무법자처럼 난동을 부릴 때는 켜켜이 쌓아온 상처도 있지 않을까 말이다. 기간제교사로 담임을 맡던 반에는 다소 폭력적인 학생이 있어서 무척 힘들었었다. 나는 1학기를 마친 후 여름방학 때부터 노량진에서 임용공부를 하고 있었는데 2학기 시작과 동시에 그 아이의 어머니께 전화가 왔다.


“선생님, 저는 다음 주에 학교에 못 갈 거 같아요.”

“네? 담임 선생님 바뀐 거 모르셨어요?”


어머니가 주말에만 집에 오시고 평일에는 서울에 일을 하러 나가계셔서 자주 보지 못한다고 말했던 아이의 말이 생각나서 안쓰러웠다. 물론 심각한 학생들의 나쁜 행동에 대해서는 책임을 물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한편 그렇게 되기까지 어른들은 무엇을 했나 묻고 싶어지는 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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