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BS 다큐멘터리 K – 교육격차를 보고
3월 학부모 상담 시 우리 반 학생의 한 어머니께서 조심스레 말을 꺼내셨다.
“시내 아이들보다 뒤처질까 봐 불안해서 전학 갈까도 생각해 봤어요.”
속으로는 좀 기분이 나빴다. 교육의 질은 교사의 질을 넘지 못한다는 말도 있는데, 혹시 이 말씀은 나에 대한 염려에서 하시는 말씀일까? 라는 생각이 들어서 말이다. 하지만 보통 시내로 갈수록 교육환경이 좋다는 건 일반적인 인식이니 도시 외곽의 면 단위에 위치한 우리 학교에 대한 걱정은 당연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요즘에는 인터넷 강의도 발달하고 찾아보면 정보의 홍수나 마찬가지여서 취사선택하는 능력이 더 중요해요. 우리 학교는 방과후 수업도 잘 되어 있지만, 시내 학교는 시골 학교보다 학교폭력 발생 건수도 많고요."
독서에 대해서도 걱정하시길래 이야기를 덧붙였다.
"요즘에는 책도 종이책뿐만 아니라 전자책, 오디오북 다양하게 듣는 세대잖아요.”
여러 가지 내 경험에 기초하여 말씀드리니깐, 어느 정도 안심하고 돌아가신 것 같다.
그리고 오늘, 이 다큐멘터리를 보니깐 씁쓸한 생각을 떨칠 수가 없다. 학부모의 불안과 조바심을 자극하는 사교육 시장도, 그에 대한 대비가 거의 없는 공교육 환경도, 그리고 공부에만 모든 걸 바치거나 자신의 어려운 처지를 비관하는 학생들도 너무 서글프단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나의 학창 시절을 떠올려봤다. 돌이켜보니 공감 가는 부분도 많았다. 이를테면, 주변 면학 분위기가 중요하다는 것, 롤모델이 있느냐 없느냐의 차이, 부모의 경제력과 정보력 기반이 갖춰졌는지 여부 등등 인터뷰 대상자로 나온 학생들의 의견 중 일리 있는 말들도 많았다.
그런데 참 화가 나는 지점은 이런 고민은 내가 학창 시절에도 했었단 것이다. 그로부터 20여 년이 지났는데 아직도 똑같은 고민을 반복하고 다큐멘터리에서 심층 취재한다는 것이 우리 교육이 갈 길이 멀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도대체, 왜. 이렇게 변화가 더딘 걸까? 아니 어쩌면 20여 년의 시간은 너무 짧은 시간일 수도 있겠다. 보통 역사의 한 획을 긋는 사건은 100여 년이라는 시간의 흐름을 거쳐 오니깐.
나는 담임교사로서 우리 반 학생들이 다른 도시의 날고 긴다는 출중한 학생들과 비교해도 뒤처지지 않을 만큼 가르치는 게 목표이다. 그런데 실제로 만나본 적 없는 가상의 인물들이라 그 학생들의 실력은 어느 정도인지는 알지는 못한다. 그리고 또한 초등학교 3학년은 과목도 10과목이라 학생마다 과목별 기량도 다르다. 초등학교는 일제고사도 없어진 지 오래라 무엇을 기준으로 학생들을 평가한다는 걸까? 물론 학교에서는 과정 중심 평가 또는 성장 중심 평가가 이루어지고 있다. 일회적, 상대적 평가를 지양하고 개개인의 성장 발달 수준을 평가한다는 취지로 도입되었다. 그런 학생들이 중고등학교에 진학하면 다시 입시 체제 아래 경쟁시험에 뛰어든다. 물론 다큐멘터리에 나오는 대치동 아이들은 그 속도가 더 빠르겠지만 말이다.
하지만, 정말 그런 게 중요할까? 몇백만 원, 천만 원 단위의 사교육을 쓰며 한 가정의 생활비 대부분을 쏟아붓고 입시컨설팅을 받으며 입시시험에 최적화된, 소위 만들어진 우수한 학생이 진짜 똑똑한 학생인가? 다큐멘터리에서는 고려대 교육학과 김경근 교수가 ‘치장법’이라는 요인을 이야기한다. 실제로는 똑똑하지 않은 학생인데 부모의 경제력과 사교육으로 어려운 입시제도를 통과한다는 것이다. 막상 대학에 오면 사고력이나 토론 능력에서 딱히 우수하지 않다는 점이 드러난다는 것이다. 이 부분은 내가 평소 생각했던 부분이라 공감이 많이 갔다. 뭔가 사교육을 많이 받고, 배운 건 많은 것 같은데, 창의력이나 사고력, 또는 통찰력이 보통인 학생들, 다른 사람들이 해놓은 말을 앵무새처럼 반복하는 것 같은 사람들을 많이 봤다.
그보다는 나는 진짜 똑똑한 사람은 자기만의 논리와 주관, 사유가 있는 사람이라는 생각이 든다. 세상에는 정답이 있기도 하고 없기도 하다. 그런 세상에서 자신만의 생각으로 정답을 만들어 가는 사람, 앞장서서 세상을 이끌어나가는 사람, 주도적으로 일을 추진해 가는 사람이 진짜 똑똑한 사람인 것 같다. 만약 학생이라면, 나만의 공부 방법을 탐색하고 공부할 거리를 찾는 학생이 아닐까. EBS 다큐멘터리 K – 교육격차에 나온 학생들도 결국에는 다른 학생들과 똑같은 출발선에 서서 맹목적으로 한 곳을 향해 나아가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그러기에 다른 제반 여건들, 조건들의 차이에 자괴감을 느끼는 게 아닌가란 생각이 든다.
교육의 격차란 주제가 워낙 예민한 주제라 언급하기가 조심스럽다. 하지만, 이 영상에서 말하고자 하는 교육격차를 줄이는 것에 관해 말하자면, 환경 탓, 제도 탓, 부모 탓을 하면 결국 패배감만 더해질 뿐이라는 것이다. 중요한 것은 내가 바꿀 수 없는 조건이 아닌, 내가 바꿀 수 있는 것은 무엇부터 바꿔가면 좋을까란 생각을 해보는 것, 그 작은 차이가 결국 교육 격차라는 견고한 성을 무너뜨릴 수 있는 작은 균열을 만들어 내리라 생각한다. 앞 문단에서 이야기했지만, 자신만의 세계를 창조해 나가는 것, 자신의 강점을 꾸준히 갈고 닦는 것, 그 길 외에는 없다고 생각한다. 이에 대한 자세한 이야기는 앞으로 남은 다음 회차를 보며 더 논의해 보고자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