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꿈 많은 시골 중학생
“난 말이야. 꿈이 있어.” 연우가 아련한 목소리로 나직하게 말했다.
“무슨 꿈?” 호영이가 놀란 토끼 눈을 하고 묻는다.
“응. 행복해지는 꿈.”
“행복이라고? 그럼 지금은 행복하지 않다는 뜻이야?”
“그런 건 아닌데... 뭐랄까... 지금의 내 꿈은 약간 무지개 같다고나 할까? 아름다운 빛깔로 멀리서 내 마음을 요동치게 하는 데 닿을 수 없는...”
“뭐야. 시적이네... 하지만 지금 당장 행복해야지...”
호영이는 짐짓 어른인 체 말한다.
“지금은... 행복하지 않은 건 아니지만, 나는 더 큰 물에서 놀고 싶어. 내가 있는 곳은 너무 좁아. 답답해.”
“욕심쟁이!”
“욕심쟁이라니?” 연우가 얼굴을 씰룩거리며 말한다.
“나는 네가 지금도 충분히 행복할 수 있다고 생각해. 그런데 너는 마치 후 불어버리면 날아가 버리는 민들레 꽃씨처럼, 너무 가냘파 보여. 그런 네가 큰물에 가겠다고? 서울로 가겠다는 뜻이야?”
호영이가 시무룩해져서는 말한다. 연우의 얼굴에 이내 슬픈 빛이 아른거린다.
“응... 물론 너와 헤어지는 건 슬퍼. 그렇지만 지금은 충분히 행복하지가 않아. 내 가슴속에서 어릴 때부터 자란 꿈들이 용솟음치는 거 같아. 자꾸만 내 몸을 간질여. 나는 내 꿈들을 펼칠거야. 너도 같이 가자.”
“그건 안돼.”
“왜? 여기가 내 터전이고 내가 살아온 곳이야. 나의 가족들이 있고 친구들이 있는 곳이야. 이곳을 떠나서는 나는 살 수가 없어. 그건 물고기가 물속을 떠나서는 살 수 없는 것과 같아.”
“너와 헤어지고 싶지 않아. 하지만 내 꿈도 포기하고 싶지 않아.”
“우리는 아직 어리잖아. 우리에게 어떤 미래가 펼쳐져 있을지는 아무도 몰라. 나는 그저 네가 지금에 만족하며 살았으면 해.”
호영이의 말에 연우는 흘러내린 눈물을 닦으며 자리에서 일어섰다.
“나 그만 가볼게. 생각이 많아졌어.”
연우는 바지에 묻은 흙먼지를 털어내며 곧장 자기 집 쪽을 향해 걸었다. 그런 연우를 호영이는 하염없이 애처로이 쳐다볼 뿐이었다. 그 옆에는 맑은 시냇물이 소리 없이 조용히 흐를 뿐이었다. 호영이는 괜스레 시냇물을 향해 돌멩이를 던졌다.
연우는 집에 가자마자 방에 있는 피아노 뚜껑을 열었다. 그리고 유키구라모토의 <로망스>를 연주했다. 연우가 초등학생 때부터 즐겨 연주하던 곡이다. 어딘가 슬퍼보이는 음악이 자신이 마음을 더욱 어지럽혔다. 조금 밝은 곡을 쳐볼까 하고 이번에는 이루마의 <키스 더 레인>을 연주했다. 비를 맞다라는 뜻의 피아노곡이 문득 호영이와 함께 빗속에서 장난을 치며 놀던 시절로 데려갔다.
“우산을 던져버려...”
“뭐라고?”
“우산을 던지라고...”
“아... 와!!!”
둘은 하교 후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우산 하나를 같이 쓰고 돌아오고 있었다. 지나가던 차가 튀긴 빗물에 옷이 다 젖어버리자 이내 우산을 집어 던졌다. 그리고는 그렇게 홀딱 비를 맞고 집으로 걸어왔다. 쉴 새 없이 깔깔거리며. 그 시절을 생각하니 웃음이 나다가도 이제 얼마 후면 호영이와 헤어질 생각을 하니 눈물이 멈출 생각을 안했다.
“연우야 집에 왔니?” 엄마였다.
“어, 엄마. 나방에 있어.” 연우가 눈물을 얼른 소매 깃으로 닦으며 대답했다.
“오늘 이사 갈 집에 다녀왔다. 사진 볼래?” 연우가 방문을 열고 밖으로 나왔다.
“와. 정말 근사하다. 이게 우리 집이야?”
“응. 연우와 엄마와 둘이 살 집. 서울 가서 공부 열심히 해야 한다.”
“응. 맹모삼천지교라고 나를 위해서 이사도 가주는데 당연히 그래야지. 정말, 우리 엄마 최고!”
“사랑해. 연우야.”
“아이참.”
“친구들에게는 이야기 했니?”
“응. 오늘. 호영이가 나보고 욕심쟁이래. 많이 서운한가봐.”
“그렇겠지. 너희 많이 가까웠잖니... 그래도 자주 놀러오겠다고 해...”
“응. 그런 식으로 말하긴 했는데... 나를 이해 못하는 것 같아서 먼저 와버렸어...”
“아유, 저런...”
“괜찮아... 잘 이야기 해볼게...”
“그래. 엄마는 엄마 딸을 믿어. 엄마 피곤해서 먼저 씻고 잘게.”
“응.”
연우는 어린 시절 엄마와 아빠가 이혼을 해서 지금은 엄마와 단둘이 산다. 연우가 기억하는 엄마와 아빠는 끊임없이 싸웠다. 엄마가 아빠에게 잔소리를 하고 그러면 아빠는 엄마에게 폭력을 휘두르고. 그런 엄마와 아빠를 지켜보면서 연우는 무서움에 떨며 소리죽여 울곤 했다. 그러다 지쳐 연우 엄마와 아빠가 이혼을 하고 연우는 이리로 이사를 온 것이다. 아빠는 어린 시절 살던 시골 마을에서 목수 일을 하고 살고 계신다. 지금 사는 마을도 시골이지만 연우가 살던 마을은 더한 깡촌이었다. 마을에는 오직 집 밖에 없는 곳. 슈퍼에 가려면 한참을 걸어 나와야 하고 그마저도 일찍 닫으면 버스를 타고 한참을 나가야 하는 곳. 아빠는 그런 곳에 산다. 가끔 오늘처럼 슬프다가도 행복하다가도 기분이 복잡 미묘할 때는 아빠 생각을 하곤 한다. 아빠는 뭘 하고 있을까? 아빠와 엄마가 다시 만나 행복해졌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한다. 엄마만큼 아빠도 나에게 참 소중한 가족이니깐.
이런 생각을 하고 있는데 수진이에게서 전화가 왔다.
“어. 수진아.”
“너 이 계집애. 다 들었어. 뭐 꿈이 어쩌고 어째? 지금까지 우리를 감쪽같이 속였단 말이지. 대체 서울은 왜 가는데...”
“야. 서울이 무슨 하루 넘게 걸리는 곳도 아니고... 그저 조금 멀 뿐인데 뭘 그리 놀래. 우리 주말마다 만나면 되지.”
“주말은 무슨. 여기서도 공부한다, 피아노 친다 자주 만나지도 않았으면서.”
“휴... 잘 모르겠어... 우리 서로를 응원해주자.”
“됐어. 모르겠고. 내일 점심 12시에 카페 <무지개>에서 만나자. 호영이와 진호랑 다 같이 너 송별파티 해주기로 했어.”
“아, 정말... 얘들아... 너무 고마워... 나는 너희한테 해주 것도 없는데...”
“큰물에서 놀고 싶다고 했으니 성공해서 꼭 우리한테 크게 한턱 쏘는 거다. 네가 말하는 행복이란 게 도대체 뭔지 모르겠지만...”
“응 고마워. 내일 보자.”
그렇게 연우는 전화를 끊었다. 뭔가 가슴속에서 이상한 기분이 느껴졌다. 슬프고 아릿하면서도 뭔가 기대해보고 싶은 마음... 연우는 이런 자신이 미우면서도 금세 새로운 희망으로 가득 차는 듯 한 기분이 들었다.
다음날, 낮 12시, 연우는 송별파티 장소로 향했다. 그곳에는 이미 호영이, 진호, 수진이가 와서 기다리고 있었다. 친구들을 보자마자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너무나 소중해서 닿기만해도 부서질 것처럼 마음 한쪽 구석이 아려오는 소중한 친구들이었다. 연우가 새로 이사 와서 적응을 힘들어할 때도 옆에서 응원해주고 힘이 되어준 친구들이었다. 만화방은 어디에 있는지, 노래방은 어디에 있는지 알려주며 그렇게 서로가 친해졌다. 그런데 그런 친구들하고 다시금 헤어질 시간이 온 것이다.
“호영아, 진호야, 수진아... 정말 미안해... 이제야 말해서...”
연우가 조심스럽게 입을 뗐다.
“어서 앉아... 네가 좋아하는 홍차 시켰어. 치즈케이크랑 같이 먹고 가.”
호영이가 얼굴도 쳐다보지 않고 말을 건넸다.
“야, 임마. 너 어떻게... 그동안 한마디도 없다가 갑자기...”
진호마저도 서운한 기색이 역력한 낯빛으로 말을 걸었다.
“그러게 말이다. 쟤는 참... 우리 다 한 충격 받은 거 어떡할래?”
늘 호들갑스럽던 수진이도 오늘따라 차분해진 목소리로 이야기를 이어 나갔다.
“얘들아... 이렇게 한자리 모이니깐 더 말을 못하겠어...”
친구들의 한 마디 한 마디에 절대 울 것 같지 않던 연우는 결국 눈물을 터뜨리고 말았다.
“우리 그래도 꼭 자주 보면 되잖아. 그렇지? 자주 보자.”
송별 파티는 금세 끝났다. 수진이와 진호가 어차피 헤어질 거 그냥 빨리 헤어지자며 간단히 선물하고 편지만 주고 가버린 것이다. 덤덤한 듯 어깨를 툭툭 치며 괜찮은 척했지만 애써 눈물을 참는 게 눈에 보였다. 둘은 뒤도 한 번 돌아보지 않고 그대로 그렇게 집으로 가버렸다.
그리고 호영이와 단둘이 남았다. 연우는 호영이에게는 다른 특별한 선물을 준비했다. 다비드 칼리의 <나는 기다립니다.>라는 그림책이었다.
“인연이라면 이 실타래처럼 결국엔 이어진대. 아무리 각자의 삶이 바쁘더라도 종종 연락하고 만나고 지내자. 그리고 대학생이 되면 더 자주 보고. 그러면 되잖아.”
호영이는 그 말에 고개를 저었다. 그저 눈물을 뚝뚝 흘릴 뿐이었다. 연우도 더는 할 말이 없어서 “나 간다.”라고 말하고 집으로 돌아왔다. 그 이후로 몇 년간 다시는 만나지 못할 줄은 꿈에도 생각하지 못한 연우였다. 그렇게 넷의 우정은 연우의 이사로 인해 점점 옅어져 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