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선택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루비 Nov 02. 2023

좋아하는 애가 안경을 깜박했다

애니 리뷰 <좋아하는 애가 안경을 깜박했다>

<스포 있습니다-!>






#1. 덜렁거리고 자존감 낮은 여자아이와 그런 그녀를 좋아하는 남자아이

 9화 <좋아하는 애랑 현장학습을 갔다> 편에서 미에는 자주 덜렁거리고 안경을 깜박하는 자신을 비하하며 자기혐오에 빠진다. 이런 미에에게 코무라는 “나는 네가 자주 안경을 깜박했으면 좋겠어.”라며 개의치 않아 하며 도와주고자 한다. 자주 덤벙대고 자존감이 낮은 여자들은 이 장면을 보면서 큰 위로를 받았을 것이다. 코무라도 늘 아즈마와 자신을 비교하며 자신을 하찮게 여기는데 너무 자존감이 낮은 것 같아서 안타까웠다. 이런 둘이 서로를 좋아하고 도와주고 지지해 주면서 즐거운 중학생 시절을 보내는 것이 이 애니의 잔잔한 재미다.     

 나도 종종 미에처럼 나 자신이 싫어지는 기분을 느끼곤 한다. 사람은 깊은 우울감에 빠지면 타인을 해치거나 자신을 해치거나 둘 중 하나라는데 나는 공격성의 방향이 나 자신에게로 향하는 사람이었다. 그래서 미에에게 더 공감이 갔다. 그리고 이런 미에를 미워하거나 모자란 아이로 바라보지 않고 귀여워해주며 늘 설레는 마음으로 대해주는 코무라도 대견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의 중학생 시절은 어땠나 되돌아보면서 이렇게 의지되는 이성 친구가 있으면 학교생활이 참 행복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자존감이 문제가 있는 것 같아서 윤홍균 정신과의사의 <자존감 수업>이라는 책을 여러 번 읽었다. 다음의 구절이 인상적이었다.     


 세상의 모든 사랑은 관심에서 시작된다. 집이 어딘지, 무엇을 했는지 등 사소한 관심이 번져 존경과 사랑이 싹튼다. 자신을 사랑하는 것도 똑같다.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 어떻게 살아왔는지 관심을 가져야 한다.   
 참으로 재미있지 않은가. 누군가를 사랑하는 능력이 결국 내가 누구인지 알아가는 능력에서 시작된다니 말이다. 나를 아는 만큼 사랑 능력도 커진다. <자존감 수업- 윤홍균, p.35>     


 나는 나 자신에 대해 잘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세상이 정해진 규칙대로 살아왔다는 생각이 들었다. 한 번도 제도권 밖을 건너본 적 없는 내가 처음으로 세상의 벽을 마주했을 때, 쉼 없이 에고를 위한 삶을 살아왔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진정한 나의 모습, 셀프를 마주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그것은 내가 가장 편안하고 안전하다고 생각되는 모습에서 자유로울 수 있다고 믿게 되었다.     


 미에는 코무라에게는 자신의 결점, 실수투성이 모습을 다 보여준다. 물론 잘 보이기 위해, 코무라를 위해서 겉으로는 괜찮은 척할 때도 있지만, 기본적으로 코무라와 함께 있을 때 편안한 모습을 보인다. 그래서 아마 2학년 때 이어서 3학년 때도 코무라 옆자리를 군말 없이 반겼을 것이다. 이런 둘을 보니, 이런 게 바로 진짜 우정이고 사랑이 아닐까란 생각이 들었다. 둘을 바라만 보아도 잔잔한 미소가 번진다.     


 미에와 코무라는 둘 다 자존감이 낮지만 천성만큼은 너무나 귀여울 만큼 소심하고 착한 학생들이라서 서로를 위하는 마음이 더 예뻐 보였다. 게다가 엉뚱한 매력에 개근상을 받을 정도로 성실한 모습까지 갖춘 멋진 학생들이다. 이 둘의 우정, 그리고 알콩달콩한 묘한 설렘의 감정까지, 달달한 연애 스토리를 보고 싶은 독자들에게는 최고의 선택이 될 것이다.


#2.         “널 도와서 기뻐.”라고 말하는 코무라

 나는 “네가 내일도 안경을 깜박했으면 좋겠다고 매일 생각하고 있어.”란 대사를 듣고 심쿵하고 말았다. 물론 현실적으로 생각하면 안경을 매일 깜박하고 찡그린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면 시력이 급속도로 안 좋아질 것 같지만, 만화적 허용을 차치하고, 매일 도울 수 있다는 사실에 기뻐하는 코무라가 너무 고맙고 순수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요즈음에 이렇게 계산하지 않고 어떤 사심도 섞지 않고, 순수하게 오직 좋아하는 마음으로 타인을 돕는 사람들이 있을까? 이렇게 누군가를 순수하게 좋아하는 사람이 있을까란 생각이 들어서 말이다.  

   

 사실, 이 애니 <좋아하는 애가 안경을 깜박했다>를 보면서 ‘음, 요즘 학교가 정말 저렇게 평화로운가?’란 생각이 들었다. 당장 내가 학창 시절만 해도 담임 선생님이 세 번씩 바뀐 해도 있고, 왕따와 학교폭력, 체벌로 얼룩진 지옥 같은 생활을 했기 때문이다. 물론 요즘은 학생인권조례 등 많이 상황이 나아졌지만, 뉴스에 보도되는 학생들의 여러 폭력 문제 등을 보면 내 걱정이 기우가 아닌 것 같다. 이 애니가 제작된 일본도 <목소리의 형태> 등 학교폭력 문제를 다룬 애니가 나온 것을 보면 말이다.     


 그러나 바로 그런 점에서 이 애니는 무언가 꿈꾸고 소망하게 해 준다. 아주 잔잔한, 고향 같은 포근한 나날이 이어졌으면 좋겠다고. 그리고 그런 와중에 이렇게 소박하고 풋풋하게 누군가를 좋아하고 싶다고 말이다. 강렬한 자극만을 추구하는 세상에서 병원에서 먹는 식단처럼 굳이 어떤 조미료를 치지 않아도 아주 담백하고도 향긋한 관계를 맺어나가고 싶다고. 바로 미에와 코무라의 관계처럼 말이다.



 코무라는 방학을 맞이하여 미에를 더 이상 볼 수 없게 되자 꾹꾹 눌러왔던 자신의 마음을 고백한다. 추억으로 만드는 건 싫다고. 앞으로도 매일매일 보고 싶다고. 미에는 안경을 자주 깜박해서 흐릿한 눈으로 세상을 보니깐 자신도 기억에서 지워버릴까 봐 너무나 걱정이 되었던 것이다. 표현하지 않으면 미에는 그 마음을 몰랐을 텐데, 코무라의 용기에 나까지 마음이 콩닥콩닥거린다. 내가 미에라면 참 많이 행복하고 기뻤을 것이다.  

   

 미에와 코무라는 서로의 얼굴을 기억하기 위해 손으로 뺨을 부여잡고 서로를 빤히 쳐다본다. 열렬히 구애하여 결혼한 후에 소 닭 보듯 하는 사이도 많은데 이 둘은 왠지 정말 오래갈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백년해로란 말은 이 둘에게 잘 어울릴 것 같다. 받으려고 하기보다 주고자 하는 마음이 더 큰, 서로를 위하는 진심이 뒷받침되어 있기 때문이다. 나 또한 이런 사이를 만나고 싶다. 그리고 고백해야겠다. “내일도 모레도 계속해서 네 얼굴을 보고 싶어!”


#3. 미래의 내 신랑은...

 마지막 씬은 운명의 붉은 실 이야기를 떠올리게 한다. 바로 자신의 베필은 이미 운명으로 점 지어져 있다는 이야기... 어렸을 때 이미 미에와 코무라가 만난 적이 있던 사이라는 것이 대단히 전율을 일으켰다. 그리고 그때 미에와 코무라는 이미 서로에게 큰 호감을 느낀 듯하다.     


 미에는 코무라에게 말한다. “다정하구나. 우리 아빠 같아. 내 신랑은 너처럼 다정한 남자애가 좋겠어.” 미에의 안경을 뺏어가는 남자아이가 아닌, 코무라처럼 아이스크림 가격을 다정하게 알려주는 남자아이가 좋다는 미에. 그리고 그런 코무라가 자신의 아빠를 닮았다고 말하는 미에. 이때부터 인연은 시작되었다.    

 

 중학생 시절에 도덕 선생님이 이상형을 적어보라고 하셨다. 그땐 난 당돌하게도 다른 친구들과 달리 수많은 조건들을 나열했었다. 그걸 발표하면서 순간 나 자신도 쑥스러워졌었다. 내가 이렇게 바라는 게 많았던 건가 하고 말이다. 생각해 봐도 나는 정말 눈이 높은 것 같다. 적은 나이가 아님에도 여전히 좋아하는 마음이 쉽게 생기는 것 같지는 않으니...     


 그럼에도 나도 미에처럼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아빠처럼 다정한 사람, 기본 인성이 바른 사람, 나를 정말 많이 사랑해 주는 사람이라고 말이다. 그런 사람과 결혼하면 행복할 것 같다. 그리고 어딘가에 나와 붉은 실로 연결된 운명의 상대가 기다리고 있지 않을까 그런 상상을 해본다. 그리고 정말로 그런 운명이 있어서 나는 그저 하루하루에 충실히 살면 될 것만 같다.     


 윤동주 시인의 시에 나오는 ‘순이’처럼 나도 누군가에 그런 순이 같은 첫사랑의 상대라면 얼마나 행복할까? 설사 첫사랑이 될지 못하더라도 ‘순이’처럼 아주아주 소중한 마지막 사랑이 되어도 좋을 것 같다. 미에와 코무라는 어린 시절을 뛰어넘어 중학생 시절에 다시 만났으니 아마 순수하게 첫사랑이자 마지막 사랑으로 결혼에 골인할 것 같다.     


 요즘 한국 사회에는 장벽이 많다. 대입, 취업, 군대, 유학 기타 등등. 사랑을 지키기 어려운 세상이어서 그런지 그만큼 만남과 이별의 반복도 많다. 이런 시대에 첫사랑과 결혼하고자 하는 건 어쩌면 욕심일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이것만큼은 확실히 하고 싶다. 첫사랑은 못될지라도 영원한 마지막 사랑은 되어야겠다고. 검은 머리 파뿌리 될 때까지 오직 서로만을 바라보며 행복하게 살아가겠노라고. 붉은 실로 연결된 나만의 연인을 만나고 싶다.




매거진의 이전글 아무도 이해 못 하더라도, 너만은 이해해 주길!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