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편소설집 <재능의 불시착> 중
단편소설집 <재능의 불시착> 중 2편을 읽고
막내가 사라졌다
막내라는 이유만으로 쏟아지는 부당한 업무 지시, 인격모독, 사생활 침해, 회식 강요 등 직장 괴롭힘으로 사직서를 제출한 강시준과 그의 직장 동료의 에피소드를 담고 있다. 나도 열아홉 살에 교대에 입학해서 임용 재수 후 스물네 살에 첫 발령받은 후 수많은 불합리한 일들을 겪어온지라 너무나 공감이 갔다. 당하는 사람은 한 사람이고 부당한 행위를 하는 사람도 가해자별로 보면 각각 1인분씩이지만 그 1인분의 가해자들이 수명에서 수십 명 모여서 한 사람을 짓밟는 돌덩어리가 되고 만다. 나는 교대생 시절부터 시작해서 직장인 학교에서 만났던 이상한 선배교사, 관리자, 진상 학부모, 막 나가는 학생들로 인해 괴로웠던 시절이 떠오르면서 초공감이 갔다. 그리고 작년에 있었던 스물세 살 서이초 선생님의 자살 사건이 떠오르면서 내가 죽지 않고 어떻게든 버텨서 살아있다는 이유만으로 갖은 멸시와 조롱과 손가락질을 당하고 2차 가해, 3차 가해를 당하는 일들이 주마등처럼 떠오르면서 결국 사람들이 피해자에게 원하는 건, ‘자살’인 건가?라는 생각이 들었다. 죽을 생각에 이를 정도로 고통받았지만 죽지 않으면 피해자가 잘못한 건가? 죽지도 못하면서 아직 살아있으면서 피해 사실을 폭로하면 쓰레기인 건가? 이 소설처럼 사직서를 내고 직장을 그만두지도 않고 어떻게든 생업을 이어나가는 사람이 잘못인 건가? 최소한의 선과 매너도 지키지 않고 단지 자신보다 나이가 어리다고 약하다고 힘이 없다고 백이 없다고 사람을 차별적으로 대하고 존중하지 않은 사람들은 아무 잘못이 없는가? 란 의문이 들었다.
가슴 뛰는 일을 찾습니다
해외의료봉사를 적극적으로 다녔던 부모님을 따라 NGO에 취업한 혜진. 그녀는 부모님을 본받아 형편이 어렵고 도움이 필요한 이들을 적극적으로 돕는 선한 일을 하고 싶었다. 그래서 국제구호단체에 입사했다. 그곳에 가면 진정으로 가슴 뛰는 일을 할 수 있을 것만 같았다. 매일매일이 보람찰 것이라 기대했다.
그러나 막상 입사하고 나니 실제로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을 위해 발 벗고 나서는 일보다 후원금 마련을 위해 머리 싸매는 일이 많았다. 상사는 직원별로 누가 후원금을 더 많이 당겨오나 실적 경쟁을 시켰고, 막상 선의의 마음으로 후원해 준다고 믿었던 거부는 후원받는 아이들이 돈가스를 먹는 것에 분개하며 화를 낸다. 자기 자식도 비싼 돈가스는 쉽게 먹는 음식이 아닌데 어디서 후원받는 애들이 돈가스를 사 먹냐며... 게다가 오래 사귄 남자친구 어머니는 아버지 병원 건물에 눈독을 들이며 벌써부터 시어머니 행세를 하려고 든다.
내가 예전에 정말 너무 힘들 때 유명한 칼럼니스트의 직장 관련 칼럼을 수도 없이 읽었던 적이 있다. 그때 인상적으로 기억하는 부분이 봉사단체 안에서도 서로 싸우고 힘들어하는 사람들이 많다는 이야기였다. 그걸 읽고 나서 조직은 어딜 가나 똑같구나 씁쓸해하던 기억이 난다. 나도 학교에서 근무하면 선생님들은 다 인성도 좋고, 열정적이고, 바른 생각과 가치관을 지닐 것 같다는 편견이 있지만, 학교도 여러 군상이 보인 하나의 직장터에 불과하다. 정말 별의별 사람들을 다 만났던 듯하다. 그래서 이 두 번째 단편도 정말 공감이 갔다. 게다가 성심성의껏 학생들을 지도하면 앞뒤 사정도 알아보지 않고 다짜고짜 자기 자식을 불편하게 했다는 이유로 전화해서 막말부터 던지는 무례한 학부모까지... 이건 비단 학교만의 문제가 아니고 어느 직장인의 공통된 문제라는 것을 잘 알기에 그러려니 한다.
이 단편의 제목처럼 <가슴 뛰는 일을 찾습니다>를 정말 실현하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정말, 소설처럼 돈과 이해가 얽힌 곳은 세상이 내 뜻대로만 움직이지도 않고 철저히 나를 위해 굴러가지도 않는다. 서로의 이해가 얽혀서 고성이 오가고 온갖 음해공작이 난무하며 처절한 전쟁터이다. 그럼에도 한 가지 희망은, 누구도 넘보지 못하는 실력을 키우면, 조금은 그러한 치열한 싸움을 잠재울 수 있다는 것. 그럼에도 너무 뛰어나서 선조와 원균한테 시달렸던 이순신 장군처럼, 꼭 능력이 앞선다고 무조건 탄탄대로는 아니기에 겁이 난다. 그러한 불합리한 세상이기에 이 소설이 수많은 독자에게 공감을 불러일으키는 것이다.
그럴 때 나는 글을 쓰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이 소설을 쓴 박소연 작가도 치사한 직장생활 끝에 이런 소설을 내놓은 게 아닐까? 나도 예전에 정말 죽을 만큼 고통스러웠을 때 언젠가 소설을 쓰겠다고 꿈꿨었다. 너무 억울하고 화가 나고 분해서 견딜 수가 없었다. 그때, 아멜리 노통브라는 벨기에 소설가가 눈에 들어왔다. 그는 일본의 직장에서 2년 가까이 왕따와 괴롭힘을 당했고 그것을 <두려움과 떨림>이라는 소설로 내놓았다. 고통스러운 경험을 유머스러운 필치로 묘사해 나간다. 우리가 사는 세상이 완벽한 세상도. 아름다운 세상도 아니기에 어딜 가나 힘든 사람들, 출근길이 무거운 사람들이 존재한다.
오늘 뉴스에서는 한 미국작가가 한국은 세계에서 가장 우울한 나라라고 이야기해서 놀랐다. 슬픈 현실이지만, 그런 세상 속에서도, 조금씩 균열을 내며 앞으로 나아가야겠다. 그 과정에 독서와 글쓰기가 큰 힘이 되어줄 것만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