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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루비 Feb 25. 2024

행복은 삶과 일의 혼연일체

미하이 칙센트미하이의 <몰입의 즐거움>을 읽고

노벨상 수상자를 비롯하여 다양한 분야에서 활동하는 창조적인 지도급 인사들과 내가 100여 차례 가까이 만나면서 가장 흔히 들을 수 있었던 비유는 가령 이런 것이다. “내가 일평생 단 1분도 쉬지 않고 일했다는 말도 옳고, 내가 단 하루도 일이라는 생각을 가지고 일한 적이 없다는 말도 옳다.”      


역사가 존 호프 프랭클린은 일과 여가가 하나로 녹아든 상태를 이렇게 표현한다. “내가 ‘기다리던 금요일이 왔구나’라는 표현을 즐겨 쓰는 것은 금요일이 되면 이틀 동안 방해받지 않고 꼬박 일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본문 80쪽
       

내가 직장생활 초년생이었을 때 읽었던 책 중에 <공병호의 소울메이트>가 있다. 그 책에서 다음과 같은 문장을 밑줄 쳐놓았었다.      

가장 풍요로운 삶은 일과 유희, 사랑이 똑같은 비율로 내적 균형을 이룰 때 얻어진다. 한 가지를 추구하기 위해 나머지를 희생하다 보면 노년에 불행해진다. 내 아이들에게 엄마가 항상 가까이 있었다는 사실은 매우 중요한 일이기 때문이었다. 결국 인생의 목표는 오직 일 하나만의 완성이어서는 안 된다. 그보다는 인생 자체의 완성이어야 한다. / 공병호의 소울 메이트, 269쪽     

잠시 멈추어 장미 냄새를 맡아보라(Stop and Smell the Roses) / 공병호의 소울 메이트, 286쪽      


그래서인지 나는 언제나 일과 여가의 조화를 이루기 위해 노력해 왔다. 일중독자가 되고 싶지도 않았고 그렇다고 방만한 인간이 되고 싶지도 않았다. 다만, 길가에 핀 장미 냄새를 맡을 여유를 즐기면서도 내 일에 최선을 다하고 싶었다. 그런 삶의 가치관을 지닌 채 살아오다 문득 미하이 칙센트 미하이의 유명한 저서 <몰입의 즐거움>을 읽게 되었다. 그렇기에 공감 가는 문장들이 참 많았다. 중요한 내용을 밑줄 그으면서 읽느라 책이 새까맣게 칠해졌다. 이 책에서는 시종일관 주인 의식을 가지고 살라, 자신이 하고 있는 일에 전념하고 몰입하라, 삶의 질은 보람찬 경험에 달려 있다, 몰입 그 자체가 배움이다라는 이야기를 하고 있다.     


마치 몰입 그 자체를 오직 방탕한 삶으로만 생각하는 사람은 한 번도 몰입을 경험해보지 못한 사람이 아닐까라는 생각이 든다. 저자는 여가를 능동적 여가와 수동적 여가로 나눈다. 취미 활동이나 독서, 운동과 같은 생산적인 활동은 능동적 여가, TV를 보는 것 같은 다소 따분한 여가는 수동적 여가로 본다. 만족감이나 행복도도 능동적 여가가 훨씬 높다고 통계자료에 근거하여 보여준다. 그런데도 대부분의 사람은 TV 보기와 같은 수동적 여가를 즐긴다고 한다. TV는 거의 보지 않고 독서를 취미처럼 여겨온 나로서는 ‘나는 Solo’ 같은 TV프로그램을 보는 것을 이해하지 못한다. 하루의 시간은 누구에게나 24시간으로 똑같이 주어지는데 허무하게 낭비되는 시간이 너무나 아깝다. 그러한 사람들일수록 삶에서 해방감과 자유, 행복감을 느끼는 사람을 자신의 관점에서 바라보기에 자신의 이해 안에서 행복은 곧 방탕한 삶이라고 생각하나 보다. 내가 보기에는 저급한 쾌락에 불과한데 말이다.     


사람은 혼자 있을 때 내면의 혼돈으로 무너지기 쉽다고 한다. 혼자 생활할 때 종종 나른함과 권태로움을 느끼기에 공감이 갔다. 그렇지만 혼자 있는 시간을 어떻게 관리하느냐는 그 사람이 어떻게 자신의 고독을 관리할 수 있는지 중요한 포인트다. 단 한순간도 혼자 있는 것을 못 견뎌서 사람들과의 만남으로 채우려는 사람은 내면이 불안하고 자아가 불안정하다는 증거다. 그러나 혼자 있는 시간이 있어야만 결국 자신을 채울 수 있고 성장시킬 수 있고, 진짜 행복이 무엇인지 발견할 수 있다.     

 

머리가 아무리 좋아도 혼자 있는 걸 싫어하면 자기가 가지고 있는 재능을 개발할 수가 없다. /본문 119쪽     


대학생 시절, 졸업연주회를 위해 피아노 연습을 하면서 혼자 하는 것이 지치고 외로울 때가 있었다. 그럴 때 내게 힘이 되어 주었던 문장이 있었다.     

 

넌 이상한 것과 혼자 시간을 보내는 걸 혼동하고 있어. 하지만 누구든 진짜 자기가 좋아하는 게 있는 사람은 혼자 시간을 보내. 지금 날 봐. 나도 혼자 농구를 하고 있잖아. 노리 클리한은 도자기를 좋아하고, 호튼은 발레를 좋아하지. 스무 명도 넘게 예를 들 수 있어. 뭐든 잘하고 싶으면 연습이 필요한 거야. 그리고 그 연습은 혼자 해야 하는 거고. 네가 혼자 시간을 보낸다고 해서 그걸 이상하다고 생각하진 말았으면 좋겠어. /사립학교 아이들, 커티스 시튼펠드     


혼자가 힘들어서 나도 차라리 관현악단을 했으면 얼마나 좋았을까라는 생각에 미칠 때 즈음, 그 당시 읽었던 소설 <사립학교 아이들>에서 주인공 소녀 ‘리’에게 친구가 건네준 말이 큰 위로가 되었다. <사립학교 아이들>은 상류층 아이들 틈에서 가난한 장학생으로 살아가는 외로운 여고생 ‘리’의 내면과 감정이 섬세한 통찰력으로 묘사되어 제롬 데이비드 샐린저의 ‘호밀밭의 파수꾼’에 버금간다고 극찬을 받은 소설이다.


물론 혼자 있는 시간뿐만 아니라 타인과 함께하는 시간과의 몰입도 행복에 미치는 중요한 요소이다. 그러한 예로 저자는 ‘대화의 희열’을 들고 있다. 좋은 대화는 즉흥적으로 이루어지는 ‘재즈 연주’와도 같다고 말한다. 대화가 남을 비방하거나 시시껄렁한 소문, 가십으로만 이루어진다면 뒷맛은 찝찝한 경우가 많은 것 같다. 그보다는 상대와 나의 관심사와 목표, 성취와 관련해서 건설적인 대화를 나눈다면 서로에게 충만한 만족감을 부여하고 대화 자체에서 행복을 느끼는 빈도가 더욱 많아진다는 주장이다.     

 

결국 삶의 질을 높이고 행복감을 올리는 일은 얼마나 삶에 있어서 일이든, 타인과의 관계(또는 대화)든, 여가생활이든 얼마나 몰입하느냐에 달려있다는 게 이 책을 관통하는 주제이다. 몰입은 곧 배움이어야 한다. 내용 자체는 이미 일상에서 깨닫기 쉬운 내용이지만 이러한 내용을 여러 통계자료와 참고 문헌에 근거하여 과학적이고 체계적으로 전문적으로 파고들어 명료한 언어로 전달했다는 점이 높이 살 만하다. 사는 게 헛헛하거나 지루하거나 일 자체가 곤욕이고 고통스러울 때는 한 번쯤 이 책을 읽어보면서 내 삶을 활력이 넘치는 삶, 매 순간 몰입하는 삶으로 만들어보자. 산다는 게 참 행복이란 게 절로 느껴질 것이다. 그렇다면 일과 삶이 혼연일체가 되는 진정한 자유와 행복의 길로 들어설 수 있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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