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도현 시인의 <나는 내가 누구인지 몰라>
이전에 쓴 동시집 서평이 우수서평으로 뽑혀서 선물로 받아 읽게 된 안도현 시인의 <나는 내가 누구인지 몰라>. 안도현 시인의 <연어>를 아주 감명 깊게 읽은지라 시인에 대한 기대라든지 믿음은 이미 한가득하였다. 어른들을 위한 동화라 불리는 <연어>뿐만 아니라 안도현 시인의 <너에게 묻는다>나 <스며드는 것>와 같은 시도 사람들에게 무언가 뜨거운 감정을 치밀게 하는 인생에 대한 비유가 탁월하다. 그래서 이 동시집, <나는 내가 누구인지 몰라>에서도 그러한 감정을 느낄 수 있을 것만 같았다. 그리고 나는 마음에 드는 동시로 5편을 골랐다. <리모델링>, <염전에서>, <엄마가 있다>, <귀뚜라미와의 대화>, <잠실>이다.
일단 전체적인 평을 내리자면, 이 동시집을 읽고 나면 자연과 관련된 시어들이 많이 쓰여있어서 정감이 가고 어린 시절의 향수가 느껴져서 좋았다. ‘고라니’나 ‘딱새’, ‘염소’, ‘풀잎’, ‘감자꽃’, ‘사과’, ‘청개구리’, ‘고양이’, ‘너구리’, ‘강아지풀’, ‘빗소리’, ‘물꼬’, ‘씨앗’ 등 정겨운 시골 분위기가 물씬 나는 소재들이 대거등장한다. 어린 시절, 집 안에서 창밖의 비 내리는 풍경을 보던 청량하고 시원한 기분이 물씬 느껴지는 동시집이다. 불과 몇 년 전에도 가평에서 살았는데 내가 자연 속에서 산 것은 커다란 축복이고 행운이란 생각이 든다. 지금은 중소도시의 외곽에 살지만, 근무지는 역시 시골이라 풍경이 정겹고 하늘은 아득하고 만발한 꽃들은 웃음을 준다. 나도 절로 시를 쓸 수 있을 것만 같은 자신감이 들었다.
첫 번째 <리모델링>이란 시에는 ‘까치’가 등장한다. 까치가 느티나무 위태로운 줄기에 보금자리인 둥지를 짓는 이야기가 어릴 적 우리 집 처마밑에 둥지를 짓던 새들이 떠올랐다. 까치는 아니고 제비였던 것 같다. 그 제비를 보면서 ‘흥부놀부’ 이야기를 떠올리곤 했던 기억이 났다. 그래서 참 추억 돋는 시라는 생각이 들었는데 마지막 연에서 한방 먹어서 더 극적이었다. 바로 까치가 사는 마을에 재개발 추진 위원회가 꾸려진다는 시구였다. 문득 그림책 <작은 집 이야기>도 연상이 되었다. 시골 마을이 점차 개발이 되어 자연이 사라지고 도시가 들어서는 이야기다. 도시에 살면 물론 편리하고 좋은 혜택을 누릴 수 있지만 동물들의 터전이 사라지는 건 굉장히 안타까운 일이라는 생각이 들어서 섬뜩한 감정마저 들었다. DMZ가 수많은 생태계의 보고이듯 자연과 개발의 이분법에서 공존이라는 단어를 좀 더 고민해봐야 하지 않을까란 생각이 들었다.
<염전에서>란 시는 ‘시간의 의미’가 담긴 시구가 감명 깊게 와닿았다. 염전은 직접 가본 적은 없고 사진과 영상으로만 보았지만 염전에서 소금을 만들 듯, 우리가 눈부신 소금이 되려면 시간이 필요하다는 시구가 인상적이었다. 흔히 ‘세상의 빛과 소금’ 같은 사람들이라는 표현이 쓰이는데 소금이 만들어지는 염전에서 이런 인생을 비유한 시를 써 내려간다는 게 시인의 깊은 인생의 고찰을 엿볼 수 있어서 좋았던 듯하다. 그럼에도 중간에 ‘바닷속의 맷돌이 소금을 만들어 내는 줄 알았지’ 같은 표현들이 동심을 자극해서 더 익살맞고 재밌게 느껴졌다.
<엄마가 있다>라는 시는 엄마를 다양한 동식물, 사람에게서 빌려와 엄마의 존재감을 부각한다. 꽃씨에게도 엄마가 있고, 고양이에게도 엄마가 있고, 돌고래에게도 엄마가 있고, 펠리컨에게도 엄마가 있고, 우리 엄마에게도 엄마가 있다. 엄마란 존재에 대해 사무치게 생각해 보게 만든다. 이 시를 읽고 나면 나에게도 엄마가 있고, 우리 엄마에게도 엄마인 외할머니가 있었단 기억을 떠올리게 한다. 그리고 ‘모성애’에 대해 생각해보게 한다. 모든 엄마라는 존재는 위대하다는 것을, 그건 동물이나 식물도 예외가 아니라는 것을, 엄마라는 존재가 우리에게 얼마나 각별한지를 다시금 깨닫게 한다.
<귀뚜라미와의 대화>는 내가 가평 사택에 살던 때 귀뚜라미가 집안에 들어왔던 일을 떠올리게 한다. 처음엔 귀뚜라미가 무서웠지만, 귀뚜라미는 해충도 아니고 그냥 두어도 될 것 같아서 그냥 집안에 자유롭게 기거하도록 두었다. 내가 어느 책에서 읽었는데 디즈니 만화를 그린 ‘월트 디즈니’가 미키마우스를 탄생시킨 것이 자신의 방 안에 숨어 살던 생쥐를 그린 이야기란 게 무척 인상적이었던 게 생각나서다. 피노키오를 따라다녔던 귀뚜라미도 생각나고 혼자 사는 집에 친구가 생긴 기분이었다. 나는 건드리지도 않았는데 어느 순간 사라져서 아쉬웠는데 이 시를 읽으니 귀뚜라미와 대화를 나누는 시인은 나보다 더 멋지다는 생각이 들었다. 시인은 귀뚜라미에게 ‘넌 노래방을 좋아하잖아’라고 묻는다. 그러자 귀뚜라미는 ‘나는 혼자 지내고 싶거든’이라고 대답한다. 이어서 ‘혼자 지낼 줄 알아야 어른이 된대’라고 말하기도 한다. 귀뚜라미와 시인의 대화가 퍽 철학적이어서 디즈니 만화처럼 더 의미 있고 재밌다.
마지막으로 고른 시는 <잠실>이다. 내가 잠실을 자주 가기도 하고 자연이 주 배경이 된 시에 <잠실>이 나와서 인상적이었다. 이 시를 통해 잠실은 ‘누에가 자는 방’이라는 뜻이란 것을 알게 됐다. 잠실은 누에가 뽕잎을 먹는 식탁이라는 것이다. 잠실에는 뽕밭이 아주 많았다고 한다. 지금은 내가 잠실에 가면 보는 거라곤 롯데백화점과 석촌호수와 롯데월드와 롯데월드타워 등 세련된 도시의 모습인데 뽕밭이 많았다고 하니 신기하게 느껴졌다. 요즈음의 모습은 이 동시집에 전혀 어울리지 않지만 한 때의 보물을 간직한 곳으로 생각하니 더 정겹게 느껴졌다. 그래서 사람이든 도시든 역사와 추억은 참 소중하다는 생각이 든다.
초록색의 싱그러운 표지만큼이나 시들이 초록의 기운이 물씬 느껴져서 좋았다. 내가 고른 이 시 외에도 감정을 살랑살랑 건드리는 시들이 정말 많았다. ‘상상 동시집’이라는 시리즈의 또 다른 동시집도 궁금해진다. 동시를 읽는다는 건, 마음을 순식간에 말랑말랑하게 만들고 행복하게 만드는 지름길이라는 생각이 든다. 이런 시를 더 많이 읽고 그리고 언젠가 나도 이런 시를 쓰면서 세상이 아름다워지는데 기여하고 싶다. 더불어 우리들의 소중한 자연도 아름답게 보존하고 싶다. 좋은 동시집을 써준 안도현 시인께 감사의 말씀을 남기며 이 서평을 마친다. 좋은 동시 써주셔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