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블랙독>이 남긴 질문
드라마 <블랙독>은 여러 교육 문제 – 이를테면 교사들 사이에서 교과 파트너(같은 교과목을 두 명의 교사가 협력하여 연구하고 수업) 문제, 교원평가의 병폐, 시험 문제 출제 오류, 정교사/기간제 교사의 차별, 대학 입시 전쟁, 심화반 학생과 그렇지 않은 학생간의 차별 문제 등 –을 풀어나가며 결국 기간제 교사였던 고하늘 선생님이 임용고사에 합격해 정교사가 되면서 막을 내린다. 이 드라마를 보면서 작금의 교육 현장을 사실감 있게 그려낸 점에는 깊이 공감하고 후한 점수를 쳐줬다. 그러나 한 가지 씁쓸한 기분 또한 떨쳐내지 못한 것이 사실이다. 드라마를 보면서 내내 느낀 건 드라마 <블랙독>은 현 시대의 경쟁주의 사회를 전제로 이야기를 풀어내고 있다는 점이다. 완전히 새로운 판을 써내려가기 보다는 현재의 판을 인정하고 순응적인 태도로 적응해나가는 과정을 그린 드라마라고나 할까?
이 드라마를 보면서 헤르만 헤세의 <수레바퀴 아래서>라는 소설이 떠올랐다. 이 책은 고등학생 시절 내가 학교 공부에 지칠 때 우연히 읽게 된 책이다. 소설 속 주인공 한스는 지역에서 공부를 굉장히 잘하는 수재로 길러지지만 그 과정에서 상당한 심정 고통을 겪는 인물이기도 하다. 이 소설은 헤르만 헤세 자신의 경험을 담은 자전적 소설이자 교육제도에 대한 비판을 담은 소설이기도 하다. 1906년 작품인데 지금의 교육 현실과 비교해봐도 여전히 유사한 점이 많다. 한스는 결국 의문의 죽음으로 생을 마감한다.
나는 15년 전에 고등학교를 다녔다. 약간의 수능입시체제의 변화는 있는지 몰라도 드라마 속 현실은 명문대 진학을 목표로 학생들이 내신 성적, 수능 성적을 가지고 획일화된 교육체제 아래서 경쟁한다는 점에서는 조금의 변화도 없었다. 시대는 바야흐로 4차 산업 혁명 시대로 진입하여 교사들 또한 인공지능 로봇으로 대체될지도 모른다는 이야기가 나오는데 –실제로 일본에서는 전국의 초등학교 영어교사를 인공지능 로봇으로 대체했다고 한다.(일본 AI 로봇, 영어 교사 된다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1808191033011&code=970203) - 드라마 속 교육 현실은 여전히 과거의 낡은 제도 속에서 고군분투하고 있다는 느낌을 여실히 남겼다.
교육청의 감사를 피해 <이카루스>라는 입시 동아리를 만들어 우수한 학생들만 특별 대우해주는 모습이나 웹툰 작가라는 꿈을 지닌 학생은 학교를 자퇴해야만 꿈을 찾아가는 현실이 마치 내가 그러한 차별과 낙오를 겪은 것 마냥 가슴이 아팠다. 나또한 고등학생 시절 비평준화 지역에서 상위권 학교에 진학하여 수학과 영어 과목 우열반을 오가며 우월감과 열등감을 오갔어야 했다. 하지만 그것들이 내 미래에, 내 꿈을 찾는데 도움이 되었다고는 전혀 말할 수 없다. 오로지 친구들과의 우정을 갈라놓고 자존감만 갉아 먹었을 뿐이다. 그런데 시대가 10여 년이 훨씬 지났는데 여전히 그러한 현상이 되풀이되고 반복된다는 점이 정말 의아했고 안타까웠다.
물론 드라마는 능력 있는 기간제 고하늘 선생님을 비롯한 여러 선생님의 수업 혁신으로 무언가 달라진 점을 보여주기도 한다. 그 과정에서 저항하고 반대하는 선생님들도 있지만 어쨌든 진일보한 장면이란 점에서 높은 점수를 쳐주고 싶다. 다만, 한 가지 아쉬운 건 드라마가 보여주지 못한 교육의 산재한 현 문제점 –명문대 진학이 유일한 목표인 학생들, 자신의 적성과 꿈을 살릴 수 없는 학생들, 교사들의 구태의연한 모습-들 또한 점차 개선되고 발전되는 모습도 고민해보았으면 좋지 않았을까라는 생각이 든다. 교사들의 이야기가 주가 되다보니 정작 성적 고민, 친구관계로 고통 받는 학생들의 문제는 가볍게 스쳐갈 뿐 깊이 있게 다뤄지지 못해 아쉬웠다. 분명 한국의 교육제도 안에서는 불행한 학생들이 다수 생길 수밖에 없는 구조인데 드라마는 그것에 대해서는 충분히 고민하지 않는 듯이 보였다.
학생들의 꿈이 꼭 명문대 출신 의대생이 아니더라도, 전문직이 아니더라도, 웹툰 작가를 꿈꾸든 예술가를 꿈꾸든 그 모든 꿈을 학교 안에서 선생님과 친구들과 함께 펼쳐나갈 수 있는 교육이 도래하는 날이 왔으면 좋겠다. 자유학기제, 플립러닝, 소프트웨어 교육, 프로젝트 학습, 혁신학교 등 교육계에서도 변화를 위해 발 빠르게 노력하고 있다는 것을 안다. 이러한 교육의 변화가 실질적으로 차별받는 학생, 낙오되는 학생 없이 모든 이의 행복으로 이어질 수 있도록 교육 안팎으로 끊임없이 발전하기를 기대해본다. 더는 헤르만 헤세의 <수레바퀴 아래서> 속 한스의 이야기가 되풀이되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