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 그리고 변화되길 갈망하는 것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부정적인 정체성 세 가지는 다음과 같다.
1) 쪼그라드는 정체성 (Shrinking Identity): 열등감을 자주 느끼며 자신감이 부족한 형태. 부정적인 상태일 때 스스로 움츠리거나 말 그대로 쪼그라들 때가 많으며 삶으로부터 회피하기도 한다. 사랑받지 못하는 느낌을 자주 받으며 스스로에 대한 의심도 많고 생각을 표현하는 데에 어려움을 겪는다.
2) 파괴적인 정체성 (Destructive Identity): 지배적이거나 공격적인 형태. 끊임없이 본때를 보여주려 애쓰고 어떤 기회이던 놓치려고 하지 않는다. 자기 자신을 내보이려고 하는 경향도 있으며, 늘 일 혹은 무언가에 중독되어 있다. "화"라는 감정이 중심이 될 때가 많다.
3) 무기력한 정체성 (Inert Identity): 삶으로부터 회피하고 부정적인 상태일 때 가장 무기력한 모습인 형태. 무엇이 되던 말던 모르겠다고 생각한다. 늘 할 일들을 미루고 책임의식이 부족하다.
누구나 이 세 가지 형태의 정체성을 가지고 있으나, 가장 지배적인 정체성이 있을 것이다. 이러한 부정적인 아이덴티티가 형성되는 이유는, 사건들은 종료되지만 끊임없이 계속 생각하다 보니 특정한 아이덴티티가 형성이 되고 흔히 우리의 "성격"이라고 단정 짓게 된다. 하지만, 오와에서는 이런 부정적인 정체성에서 충분히 벗어날 수 있으며 나 스스로와 조화를 이루며 살아가기 위해서는 나의 정체성을 알고 이해해야 한다고 말한다.
내게 가장 지배적인 정체성은 2번, 파괴적인 정체성이다. 파괴적인 정체성에 대해 설명하기 위해 선생님은 여러 특성들을 나열하셨었는데 나는 그 모두에 해당되는 것 같았다. 지배적이고 공격적이며, 끊임없이 나 스스로의 정당함을 보여주려 애를 쓴다. 나는 옳고 나 스스로에게도 옳은 행동들을 하기를 강요하며, 그렇게 나를 내보이려 애쓴다. 일상적인 계획들, 시간에 대해 강박이 있고 시간 약속이 파괴되거나 계획이 흐트러지는 것에 불안해하며 그것이 분노로 이어질 때가 잦다. 분노의 상태이거나 무언가에서 벗어나고 싶을때 자신을 혹사시키며 일을 하거나 끊임없이 할일을 찾는다. 나는 이러한 나에 대해 알고 있는데, 그런 내가 혐오스럽다고 느껴서 인도에 갔다. 나를 바꾸고 싶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실 수업이 없던 첫째 날, 다이닝 홀에서 수업이 진행될 명상 홀까지 나의 걸음걸이로 몇 분이나 걸릴지 재보았다. 수업에 늦는 일이 있어서는 안되기 때문에.
2월부터 인도에 가기 직전까지 아침에 일어나면 세수를 하기도 전에 하던 일이 있다. 컴퓨터를 키고, 전날 봐두었던 구직광고에 다시 들어가보거나 구직포털 사이트에서 원서를 넣어볼 만한 곳을 찾는 일. 그리고 원서를 넣는 일. 그렇게 원서를 넣고 시작하는 하루는 나에게 "평화"이다. 그래서 원서를 넣지 못하고 시작한 날들은 "지옥"이었다. 원서를 넣지 못하고 시작한 어느 날, 스타벅스 의자에 앉아서 왜 우는지도 모른채 눈물을 흘리며 어찌할 바를 몰랐을 때 '이런게 공황장애인가' 싶을 정도였을때도 있었다. 인도에 와서 제발 그 지긋지긋한 강박에서 벗어나고 싶었다.
하지만 역시 습관은 무섭다. 인도에서의 둘째 날, 프로그램을 마치고 방에 들어가 이메일을 체크하는데 눈에 띄는 이메일이 있었다. 뉴욕에 있는 방송국에서 인터뷰를 하자는 제의였다. 기뻐서 팔짝 뛰어도 모자를 판이었지만, 순간 짜증이 몰려왔다. 로밍 서비스도 신청하지 않았는데 전화인터뷰를 어떻게 하지? 시차는 어떻게 맞춰야하나? 하루종일 수업인데 인터뷰 준비는 어떻게 해? 다 잊고 여기 왔는데 이건 무슨 인터셉트? 생각이 생각을 몰고 왔다. 내 안의 폭력성이 폭발할 지경이었다. 마그마가 머리 끝까지 끓어오르는걸 느껴본적이 있는가?
긴 얘기를 간추리자면, 인도 선생님들의 도움으로 캠퍼스 소유의 휴대폰을 24시간 내가 사용할 수 있게 되었고, 인터뷰어의 시간 조종으로 시차도 나의 편의대로 하게 되었고, 1차 프로그램을 마친 이후 남은 시간에 인터뷰 준비를 충분히 할 수 있었다. 결론적으로 미국에 돌아와서는 2차 인터뷰 제의를 받았고 나는 인턴십에 합격되어 매일 출근을 한다.
습관은 쉽게 바뀌지 않는다. 23년 밖에 살지 않는 나조차 지난 23년간 쌓아온 습관들을 하루아침에 바꿀 순 없고, 세상은 자극 투성이다. 다만, 나쁜 습관들은 훗날 후회를 낳는데, 후회만 말고 이 경험들을 생생하게 기억하기로 했다. 자꾸자꾸 뒤돌아보면서 나의 어리석음을 기억하고, 어리석은 나를 보듬어주어서 앞으론 어리석지 않도록 타이르기로 했다.